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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은 조금 달라졌다. 북한 핵과 미중 갈등, 대만해협 위기 속에서 한일관계의 중심축은 안보협력으로 이동했다. 윤석열 정부 시절부터 시작된 안보 공조 흐름은 이재명 정부와 다카이치 사나에 정권 들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안동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역시 일본 언론이 주목한 것은 역사도 아니고 의전도 아니었다. 바로 에너지 안보였다.
일본 언론들은 "한일이 좋아져서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국제정세가 됐다"고 해석했다. 그 분석은 맞다. 그러나 일본 현장을 직접 다니며 느낀 것은 안보협력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변화였다.
기자는 최근 몇 달 동안 고베와 삿포로, 하코다테, 이즈 등 일본 지방도시를 취재했다. 주제는 모두 달랐다. 고베는 도시재생이었다. 하코다테는 수산업과 관광이었다. 삿포로는 재생에너지 산업이었다. 이즈는 경륜과 올림픽 유산을 활용한 스포츠 산업 전략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지방정부 관계자들과 기업인들의 고민은 놀라울 정도로 같았다. 그리고 한국과 닮아있었다. 인구가 줄고 있다. 젊은 사람이 떠난다. 지역경제가 늙고 있다. 어떻게든 외부 인구를 끌어와야 한다. 어떻게든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야 한다. 듣고 있으면 일본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 지방도시 이야기 같았다.
한국이 실제로 그렇다. 부산도 그렇고 대구도 그렇고 강원도도 그렇고 전북도 그렇다. 일본이 먼저 늙고 있을 뿐, 한국 역시 같은 길 위에 있다. 그래서 일본 지방정부와 기업들이 최근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일본인들에게 한국은 관광객이었다. 혹은 역사 문제를 둘러싼 상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한국은 투자자다. 기술 협력 파트너다. 관광객 공급원이다. 인재 교류 상대다. 함께 시장을 만들어야 하는 존재다. 고베에서 만난 사람들도 그랬고, 삿포로에서도 그랬고 하코다테에서도 그랬고, 이즈에서도 그랬다. 한국기자라고 신분을 밝히면 일본인들은 긴장했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한국의 위상과 존재가 그만큼 수직상승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기자가 만난 일본인들은 한국 관광객 숫자를 이야기했고, 한국 기업과의 협력을 이야기했고, 한국 젊은 세대의 움직임을 이야기했다. 예전의 일본 지방이 "한국인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면 지금의 일본 지방은 "한국과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최근 일본 주간지들이 잇따라 다루는 한일 국제결혼 기사들도 비슷한 흐름을 보여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일관계는 정치가 민간교류를 흔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민간교류가 정치를 끌고 가고 있다. 일본 청년과 한국 청년은 같은 드라마를 보고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취업난을 걱정한다. 서로에 대한 심리적 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짧아졌다. 이런 변화는 도쿄의 정치권보다 지방 현장에서 더 선명하게 보였다.
그래서 지금의 한일관계는 대략 세 단계로 정리된다. 첫 번째는 과거사 단계다. 갈등을 관리하는 것이 관계의 목표였던 시대다. 두 번째는 안보협력 단계다. 북한과 중국, 국제정세 변화 속에서 함께 대응하는 시대다. 그리고 지금 시작되는 세 번째 단계가 있다. 바로 '전략적 보완관계'다.
전략적 보완관계가 된 한일 두 나라는 지금 상대가 없으면 자신의 성장전략도 완성되지 않는 단계에 와있다. 한국 반도체는 일본 소재와 장비가 필요하다. 일본 AI 산업에는 한국의 메모리와 제조 역량이 필요하다. 한국 지방은 일본의 고령화 대응 경험이 필요하다. 일본 지방은 한국 관광객과 소비시장이 필요하다.
에너지 안보도 마찬가지다. 공급망도 마찬가지다. 관광도 마찬가지다. 한일간에는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안동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언론이 읽어낸 것도 결국 같은 이야기였다. 일본 언론은 한국과 일본이 좋아서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도했다. 서로 필요해서 협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필요는 이제 안보에만 머물지 않는다.
산업과 지방경제, 인구와 관광, 공급망과 기술까지 확대되고 있다. 도쿄에서 보면 이것은 외교 이야기다. 하지만 고베와 하코다테, 이즈에서 보면 생존 이야기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일본의 현재는 한국의 미래다. 한일 양국은 이제 과거를 관리하는 관계도, 안보만 논하는 관계도 아니다. 서로가 없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어려운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한일관계는 지금 '전략적 보완관계'라는 새로운 단계의 문 앞에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