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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화이트칼라에만 치솟는 보석 인용률…‘법 앞의 평등’ 무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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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승현 기자

승인 : 2026. 05. 2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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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서울남부지법은 보석 인용률이 48.9%인데 서울북부지법은 22.7%일까."

'2025 사법연감'을 들춰보다가 마주한 의문이다. 같은 서울 지역 법원임에도 보석 인용률이 두 배 가까이 벌어져 있었다. 보석은 '보증금 납입 조건부 석방'의 준말로 일정한 조건을 전제로 구속 집행을 정지하고 피고인을 석방하는 제도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방어권을 보장하고, 불필요한 장기 구속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숫자를 곱씹을수록 의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남부지법은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부 관할 사건이 대거 몰리는 곳이다. 이러한 범죄에만 보석이 더 많이 인용되는 것일까. 법원 측에 범죄 유형별 보석 인용 현황 자료를 요청했으나 "이런 통계는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쉽게 이해가지 않는 해명이었다. 심지어 서영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더불어민주당·서울 중랑구갑) 의원실 협조 하에 자료를 요청하자 며칠 지나지 않아 자료를 받아볼 수 있었다.

2024년 재경지법 보석 인용 현황을 보면, 인용 사건의 절반 이상은 사기·자본시장법 위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 이른바 화이트칼라 범죄였다(5월 14일 <[단독] '금융·증권 전문' 남부지법 보석 76% 화이트칼라…돈 많고 복잡한 범죄 '석방문' 더 넓었다> 기사 참조). 법원은 통상 피고인의 주거 안정성,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 등을 기준으로 구속 필요성을 판단한다.

경제범죄 피고인 상당수가 보석으로 석방된 상태에서 재판받는 현실. 법은 과연 누구에게나 동일한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1심 구속 기간인 6개월 만료 직전, 일부 기업 회장들이 보석으로 풀려나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선 장면이 아니다. 법원 출입 기자로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을 지나다 보면 대규모 금융·투자사기 피해자들이 엄벌을 촉구하며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피고인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 동안, 피해자들은 같은 자리에서 수개월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셈이다.

취재 과정에서 '피해자 회복이 이뤄지지 않은 사건에서 보석이 피해자 보호와 충돌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여러 변호사에게 던졌다. 이에 변호사들은 "물론 피해자 보호도 중요하지만, 보석 역시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절차적 권리"라며 "석방 이후 피고인이 피해자 회복을 위해 합의금을 마련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화이트칼라 범죄의 경우, 피고인의 사회적 영향력이 수사와 재판 전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엄격한 판단 기준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불구속 재판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가 자칫 '가진 자의 특권'으로 비칠 수도 있다.

'법불아귀(法不阿貴)'는 법이 귀한 자에게 아첨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신분과 지위에 관계없이 법이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원칙을 담고 있다. 헌법 11조 역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국민이 체감하는 법의 온도가 반드시 같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듯하다. 법이 강자에게만 관대하다는 인식이 굳어진다면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법이 지위와 재산에 따라 달라지지 않아야지만 국민은 비로소 법의 공정성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손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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