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그치, 파키스탄·오만 셔틀 후 러시아행…호르무즈·봉쇄 해제 등 4개 조건 제시
호르무즈 통항 급감·유가 상승…핵·봉쇄 쟁점 속 협상 교착 장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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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파키스탄·오만을 경유하는 셔틀 외교 끝에 러시아로 향했다. 이처럼 미국과 이란이 종전 협상에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전쟁도 평화도 없는(No War, No Peace)' 교착 국면에 진입했다고 분석했다.
◇ 트럼프 "이란, 전화하라" 협상 전환…특사 파견 취소·수송기 2대 철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폭스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는 모든 카드를 쥐고 있다"며 "그들(이란)이 협상을 원하면 우리에게 오거나 전화하면 된다. 보안이 갖춰진 전화선이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석유 파이프라인이 저장 공간 부족으로 약 3일 내 폭발 위험에 처해 있고, 한번 폭발하면 예전처럼 복구할 수 없다. 그들은 압박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소셜미디어(SNS) 플랫폼 트루스소셜에 "이란이 많은 것을 제안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며 스티브 윗코프 중동 특사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의 파키스탄 방문 일정을 취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 직후 미국 공군 C-17 수송기 2대가 파키스탄에서 미국 관리 경호용 장비·차량을 싣고 철수했다고 로이터통신이 파키스탄 정부 소식통 2명을 인용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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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그치 장관은 24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를 방문해 파키스탄 측에 이란의 종전 입장을 전달한 뒤, 25일 오만으로 이동, 하이삼 빈 타리크 알 사이드 술탄과 호르무즈 해협 안보와 역내 안보 체제를 논의했다. 이어 26일 이슬라마바드를 3시간 동안 재방문해 아심 무니르 파키스탄 육군 참모총장(야전 원수) 등을 면담했다고 이란 국영 IRNA통신이 전했다.
이란 반관영 타스님통신은 이번 재방문의 목적이 △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새로운 법적 체제 시행 △ 전쟁 피해 배상금 수령 △ 교전 당사국의 재침략 금지 보장 △ 해상 봉쇄 해제 등 4개 종전 조건을 중재국에 명확히 전달하기 위한 것이며, 이번 협의는 핵 문제와 별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라그치 장관은 엑스(X)를 통해 파키스탄 방문이 "매우 유익했다"고 평가하면서도 "미국이 외교에 진정으로 진지한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와의 통화에서 "위협이나 봉쇄 아래 강요된 협상에는 응하지 않겠다"며 미국이 해상 봉쇄를 먼저 해제해야 협상 기초 작업이 시작될 수 있다고 밝혔다고 이란 정부가 전했다.
이슬라마바드 재방문을 마친 아라그치 장관은 러시아 모스크바로 출발했다. 카젬 잘랄리 주러 이란 대사는 이란 ISNA통신 인터뷰에서 아라그치 장관이 27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접견해 종전 협상 현황과 휴전 상태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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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미국과 이란이 서로 상대가 먼저 양보하기를 기다리는 가운데 협상 동력을 상실한 채 교착에 빠져 있다. NYT는 양측이 전면전의 비용에서는 한발 물러섰지만, 압박과 힘의 논리에서는 벗어나지 못한 채 상대가 먼저 지칠 때까지 버티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 내부에서는 현상 유지(status quo)가 정치적으로 가장 안전한 선택으로 작용하고 있다. 테헤란대 정치학자인 사산 카리미 전 이란 부통령은 NYT에 "어떤 변화든 향후 실패했을 때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현재 이란 지도부에는 현상 유지가 가장 보수적인 정치 행동"이라고 말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율 하락으로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국내 압박에 직면해 있다고 로이터는 분석했다.
하지만 이란 보수 일간지 호라산(Khorasan)과 복수의 이란 매체는 현 상황을 '전략적 교착'으로 규정하며 이것이 "단기 전쟁 자체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NYT는 전했다.
이란 경제 전문지 도니아에 에그테사드(Donya-e-Eghtesad)는 합의 달성 최선 시나리오에서도 이란의 연간 인플레이션이 49%에 달할 수 있으며, 교착이 지속될 경우 향후 수개월 내 70%에 근접하고, 전쟁 재개 시 120% 이상의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별 전망을 내놓았다.
협상 방식의 구조적 충돌도 교착을 심화시키고 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적인 결과를 압박하는 강압적 외교를 구사하는 반면, 이란 지도부는 핵심 이익에서의 양보를 거부하는 장기전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2015년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협상과 조 바이든 행정부의 재협상 시도에 참여했던 로버트 맬리 전 이란 담당 특사는 NYT에 "트럼프는 충동적이고 감정적이지만 이란 지도부는 완고하고 집요하다"며 "트럼프는 즉각적인 결과를 원하지만 이란 지도부는 장기전을 펼치고, 트럼프는 노골적 압박이 굴복을 강요할 수 있다고 믿지만 이란 지도부는 핵심 이익을 양보하기보다 엄청난 고통을 감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분석했다.
핵 쟁점도 미해결 상태다. NYT에 따르면 이란은 현재 다양한 농축 단계의 우라늄 총 11t(톤)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무기급에 근접한 수준으로 고농축된 우라늄만도 약 440㎏에 달한다. 이 물질은 추가 정제를 전제로 최대 100개의 핵무기 제조에 활용될 수 있는 규모로 평가된다. 고농축 우라늄의 상당 부분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6월 폭격한 지하 터널 단지에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NYT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폭격 후 남은 것이 '핵 먼지(nuclear dust)'에 불과하다는 취지로 일축하고 있으나, NYT는 해당 물질이 실제로는 캐니스터(canister)에 담긴 기체 형태의 고독성 물질로 잘못 다루면 핵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이 지적한다고 전했다.
협상 쟁점은 핵 문제를 훨씬 넘어선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팔레스타인 하마스 등 이란 대리 세력 지원 제한과 탄도미사일 능력 제한을 요구하는 반면, 이란은 대(對)이란 제재 해제와 이스라엘의 헤즈볼라 공격 중단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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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통신의 선박 자동식별장치(AIS) 추적 데이터에 따르면, 26일 현재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상업 선박이 전쟁 전 일평균 135척에서 극소 수준으로 급감, 사실상 통항 불가 상태에 근접했다.
미국 해군은 봉쇄 개시 이후 총 37척을 차단·회항시켰으며, 이란 혁명수비대(IRGC)의 '모기 함대(mosquito fleet)' 고속정은 페르시아만 내 잔류 선박을 위협하며 해협 봉쇄를 병행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들은 페르시아만 산유국 원유 생산량이 지난 2월 28일 개전 전 대비 57% 급감했으며 해협 재개방 이후에도 완전 회복에 수개월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대이란 봉쇄 압박은 중국으로도 확대돼, 이란산 원유 최대 구매처인 중국의 헝리(恒力)석유화학 다롄(大連) 정유소가 추가 제재 대상에 올랐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에너지 가격 충격도 계속 확산되고 있다. 벤치마크 브렌트유는 26일 배럴당 105.33달러(15만5600원)로 개전 전 72.48달러(10만7100원) 대비 45% 이상 폭등했고, 미국 내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3.785ℓ)당 4달러(5910원)로 2월 말 3달러(4432원) 대비 33% 상승했다. 유럽 액화천연가스(LNG) 벤치마크 가격도 전전 대비 약 3분의 1 올랐다.
글로벌 에너지트레이딩업체 비톨그룹의 러셀 하디 최고경영자(CEO)는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상품 글로벌 서밋에서 해협 재개통 후 정상화 지연을 감안할 때 원유 공급 손실이 최소 10억 배럴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