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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 마패 든 마약 사범들…처방전 뒤 숨은 ‘하얀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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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소영 기자 | 최민준 기자

승인 : 2026. 04. 27. 15:24

청소년·청년층 파고든 처방 마약
‘공부 잘하는 약’ ‘나비약’으로 둔갑
온라인 유통 커졌지만 현장 수사는 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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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와 통증 완화를 위해 쓰여야 할 의료용 마약류가 병·의원의 무분별한 처방을 타고 일상 속 범죄의 통로가 되고 있다. '공부 잘하는 약'과 '나비약'은 1020세대 사이에서 온라인 불법 거래되고, 처방전 뒤 약물은 중독과 재판매, 대리처방, 명의도용으로 번지고 있다. 겉으로는 합법 처방을 거쳤지만, 현장에서는 합법 복용과 불법 오남용의 경계가 이미 무너졌다. '합법'의 외피를 쓴 마약 범죄가 일상 깊숙이 파고드는 사이, 수사 현장은 처방전이라는 방패 앞에서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27일 경찰청에 따르면 전체 마약사범 검거 인원은 2021년 1만626명에서 2023년 1만7817명으로 2년만에 67% 급증했다. 이후 2024년 1만3512명, 2025년 1만3353명으로 다소 줄긴 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단순한 숫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마약 유통 경로가 다양해지고 소비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1020세대 집중 현상이다. 20대 마약사범은 2025년 4560명으로, 가장 큰 비중(34.1%)을 차지했다. 전체 대비 비중도 지난해 34.1%에 달했다. 10대 역시 2023년 1000명을 처음으로 돌파(1066명)했다가 2025년에는 470명 검거됐다. 2025년 기준 마약사범 3명 중 1명(37.6%)이 1020이다. 마약 범죄의 저변이 청소년·청년층으로 깊숙이 번졌다는 의미다.

이 배경에는 의료용 마약류의 광범위한 확산이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의 '2024년 의료용 마약류 취급현황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의료용 마약류를 한 번이라도 처방받은 환자는 2001만명으로 처음 2000만명을 넘어섰다. 전체 처방량은 19억2663만개를 기록했다.국민 5명 중 2명이 의료용 마약류를 투약한 셈이다. 합법 마약이 사회 전반에 넓게 깔리면서 오남용과 2차 유통 위험도 그만큼 커진 것이다.

청소년과 청년층을 파고드는 마약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ADHD 치료제 메틸페니데이트는 이른바 '공부 잘하는 약'으로, 식욕억제제 펜터민은 '나비약'으로 불리며 SNS와 메신저를 타고 번지고 있다. 정상 처방을 받은 약이 텔레그램과 오픈채팅방,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다시 거래되는 구조다. 병원에서 시작된 처방약이 온라인을 거쳐 또 다른 사용자에게 넘어가는 순간, 의료용 마약류는 더 이상 환자 개인의 치료 수단에 머물지 않는다. 합법 처방이 불법 유통의 출발점이 되는 셈이다.

온라인은 마약 유통의 대세가 됐다. 온라인 관련 마약사범 검거 인원은 2021년 2545명으로 전체의 24.0%였지만 2025년에는 5341명으로 40.0%까지 뛰었다. 마약사범들은 다크웹·텔레그램·기타 SNS 등 온라인 공간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과거 오프라인 접선과 대면 거래 중심이던 유통 구조가 익명성과 접근성을 앞세운 비대면 거래로 옮겨간 것이다.

향정신성의약품은 불법 마약에 비해 접근성도 뛰어나다. 2025년 향정 사범은 1만896명으로 전체의 80%를 넘었다. 필로폰 같은 전통적 불법 마약뿐 아니라 병·의원 처방을 거친 향정신성의약품이 새로운 관리 사각지대로 떠오르고 있다는 뜻이다. 의료용 마약류 통제가 곧 향정 관리 성패와 직결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수사와 단속 체계가 이런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장 경찰이 마주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 마약이 아니라, 일단은 처방전과 조제 기록을 갖춘 '합법의 외피'다. 교통단속이나 112 신고 현장에서 운전자가 횡설수설하거나 동공 반응 이상을 보여도, 당사자가 처방전과 약 봉투를 내밀며 합법 복용이라고 주장하면 경찰은 불법 투약인지, 오남용인지, 정량 초과 복용인지 즉시 가려내기 어렵다..

실제 처방 여부를 확인해야 하고, 정량을 초과해 복용했는지도 따져봐야 하며, 타인 명의 처방인지, 처방 목적이 정당했는지도 사후 검증해야 한다. 병원 진료기록과 조제 내역, 투약 시점, 복용량, 약물 간 중복 여부까지 확인해야 불법성을 입증할 수 있다. 불법 마약처럼 현장에서 단번에 판단하고 즉시 신병을 확보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 사이 초기 대응의 골든타임은 흘러간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프로포폴이나 수면제처럼 의료용 마약류를 오남용하는 이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병원에서 반복 처방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경찰은 의료기관 데이터를 정확히 파악한 뒤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해 접근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에서 처방전을 내세우면 즉각적인 강제수사나 신병 확보가 어렵다"며 "의료기관 내부 사정을 아는 수사관과 의료 전문 인력 확보가 필요하고, 자료 왜곡이나 조작을 막을 법적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설소영 기자
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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