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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위기의 제조업, ‘한국형 피지컬 AI’ 히든카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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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연 기자

승인 : 2026. 01. 27. 18:59

LEE SEOYEON14
정부는 '제조업 AI 전환(A.MX)' 전략을 소개하며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결합해 생산성을 높이고, 기업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기업들은 앞다퉈 엔비디아의 GPU를 사들이고 거대한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지만 정작 'AI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에는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챗GPT로 글로벌 LLM 선두를 점했고, 중국은 막대한 자본과 인구로 내수 시장을 장악했다. 인프라를 만들면서 동시에 수요를 창출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국내 AI의 지향점은 어디일까. 해답은 의외로 우리가 구식이라 치부했던 제조업 현장, '피지컬 AI'에 있다.

피지컬 AI란 로봇이나 자율주행차처럼 물리적 형태를 가진 AI를 말한다. 챗GPT가 온라인의 글과 그림을 학습해 똑똑해졌다면 이제는 로봇이 인간의 움직임을 학습해 오프라인의 난제를 해결해야 하는 시대다. 바로 여기서 한국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 인터넷에는 지난 30년간 인류가 쌓아온 텍스트 데이터가 넘쳐나지만 숙련된 용접공의 손기술이나 정밀한 반도체 장비 조립 감각 같은 물리적 데이터는 없기 때문이다.

로봇 공학에서 물병 하나를 집어 드는 것은 수학적으로 '인버스 키네마틱스(Inverse Kinematics)'라는 복잡한 계산을 수반하는 고난도 작업이다. 과거에는 이를 수식으로 풀려다 실패했지만 테슬라의 옵티머스 같은 최신 로봇들은 인간의 움직임을 그대로 보여주고 학습시키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테슬라는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개발 과정에서 로봇과 유사한 신장을 가진 173cm 정도의 작업자들을 고용했다. 이들은 VR 고글과 센서 장갑을 착용한 채 작업을 수행하고, 로봇은 작업자들의 움직임을 반복 학습한다. 즉 이제 로봇에게 필요한 것은 수학 공식이 아니라 인간의 '숙련된 움직임 데이터'인 셈이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제조업 국가다. 테슬라가 일반 작업자의 움직임을 데이터화한다면 한국은 수십 년 경력의 숙련공 노하우를 데이터화할 수 있다. 이들의 작업 노하우를 '텔레오퍼레이션' 방식으로 디지털화한다면 이는 단기간에 복제할 수 없는 데이터 자산이 된다.

선진국들이 서비스업 중심으로 전환하며 제조업을 외주화할 때 한국은 묵묵히 현장을 지켰다. 울산과 창원에는 여전히 수십 년 경력의 베테랑들이 남아 있다. 이들이 은퇴하기 전 그들의 노하우를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해 AI에 이식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는 미국도, 중국도 단기간에 확보할 수 없는 한국만의 '데이터 주권'이 될 것이다. 미국이 GPU로 세계를 흔들고 중국이 희토류로 자원을 무기화할 때, 한국은 '산업 숙련 데이터'를 외교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부가가치가 높은 소프트웨어 설계 역량이 부족하다며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한계로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육체를 갖기 시작한 2026년, 투박한 제조공장들이 세계 최고의 'AI 학습 실험실'로 탈바꿈할 기회다. 숙련공들의 '암묵지'를 디지털 자산으로 전환하는 국가적 프로젝트가 시급하다.

이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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