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경찰청 24시] 절망 문턱서 마음 되돌리는 서초서 경찰들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2.asiatoday.co.kr/kn/view.php?key=20241020010010552

글자크기

닫기

반영윤 기자

승인 : 2024. 10. 20. 16:32

서초서, 9월 지역경찰 위기협상 전문요원 제도 운영해
1개 지구대 6개 파출소, 총 28개 순찰팀서 남·여경 2명
지난 11일 서초구 한 모텔서 난간에 앉은 30대 구조해
clip20241020102346
서울 서초경찰서. /반영윤 기자
지난 11일 자정 무렵 서울 서초구의 한 숙박업소에서 "30대 여성이 베란다에서 떨어지려고 한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경찰은 신고를 받은 지 1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강제로 문을 열고 모텔 객실 안으로 들어갔다. 여성은 창 밖으로 뛰어내릴 채비를 이미 마친 상태였다.

서울 서초경찰서의 한 파출소 소속 A 경찰관이 난간에 걸터앉은 여성에게 숨죽여 다가갔다. 그는 자살 기도자 설득 매뉴얼을 토대로 여성과 단둘이 대화해 그의 투신 의지를 꺾었다. A 경찰관은 2주 전 자살 기도자 구조 위기협상 전문 교육을 받은 덕에 현장에서 여성을 구조할 수 있었다.

◇서초서, 지난달 지역경찰 위기협상요원 선발
20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서초서는 지난달 말 경찰서 지구대·파출소 소속 지역경찰 56명을 대상으로 자살 기도자 특화 위기협상 교육을 실시했다. 이들은 서초서 위기협상 전문요원의 지도 아래 자살 기도자를 설득해 구조하는 법을 익혔다. 서초경찰서는 지난달 1개 지구대와 5개 파출소 각 순찰팀에서 남경, 여경 1명씩을 선발해 지역경찰 위기협상요원으로 임명했다.

경찰 위기협상요원은 위기협상이 필요할 때 범인 등을 설득하는 협상가다. 주로 범인이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에 투입돼 무력보다 대화를 통한 협상을 시도,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는 역할을 한다. 서초서는 지난 4월 요원 역할에 자살 기도자 특화 위기협상이라는 임무를 하나 추가했다. 경찰서 소속 강력 7개팀, 여성청소년수사 5개팀에서 한 명씩 총 12명이 맡던 위기협상요원 역할은 지난달부터 지구대·파출소 경찰관 56명까지 확대됐다.
54324567
9월 24일 오전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지역경찰 위기협상 전문요원 선발된 경찰관들이 자살 기도자 설득에 관한 전문적인 대화기법을 교육받고 있다. /서초경찰서
지역경찰 위기협상요원은 신속한 현장 대응이 가능하다. 김부석 서초서 범죄예방대응과장은 "현장에 가장 일찍 도착하는 것은 지구대·파출소 경찰관이다. 투신을 막는 역할에서 초동 조치를 맡는 지역경찰의 비중은 막중하다"며 "각 지구대·파출소 팀마다 2명씩 선정된 지역경찰 위기협상요원으로 서초서 관할 지역에는 24시간 운영되는 지역경찰 위기협상 팀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날의 기억…지역경찰 위기협상요원 탄생의 계기
지역경찰 위기협상요원이 자살 기도자 특화 위기협상 역할을 맡게 된 것은 한 사건 이후였다. 지난 8월 30일 오후 4시께 서울 서초구 우면동의 한 고층 아파트 15층에서 20대 여성이 뛰어내렸다. 그는 소방 에어매트 정중앙에 떨어져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고 시각은 오후 3시 40분. 서초서 소속 위기협상 전문요원은 신고를 받은 지 20분 만에 해당 아파트 1층에 도착했다. 소방과 경찰은 현장에 이미 도착해 여성을 구할 준비를 마쳤지만 위기협상 전문요원은 여성과 대화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기도 전에 여성이 소방 에어매트로 떨어지는 장면을 바라봐야 했다.

43512
현장경찰관을 위한 위기협상 핸드북 표지(왼쪽)와 내지. 서초서 지역경찰 위기협상 전문요원 56명은 해당 핸드북을 들고다니며 위기협상 매뉴얼을 숙지하고 있다. /서초경찰서
김 과장은 "자살 기도자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현장에 일찍 도착해야 한다. 신고받고 20분 만에 현장에 도착하는 것은 자칫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며 "지역경찰은 위급한 신고를 받은 후 1~2분 안에, 아무리 늦어도 4분 안에 현장에 도착한다. 자살 기도자 대상 위기협상 본연의 업무는 지역경찰이 맡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박주혁 서장 지침을 받아 지난달 제도를 만들었다"고 했다.

◇위기협상은 특수한 역할…책임감은 곧 전문화
서초서는 팀당 7~13명 규모의 지구대·파출소 순찰팀 인력 중 남·여경 각 1명씩 2명만 지역경찰 위기협상요원으로 임명했다. 김 과장은 "지역경찰은 관할 지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다룬다. 그중 한 팀당 2명에게만 위기협상이라는 특수한 역할을 부여했다"며 "책임감은 전문화와도 맥락이 닿아 있다. 지역경찰 위기협상요원은 자기 일을 하면서 남들과 다른 이력을 쌓아나갈 수도 있다"고 했다.

131231
서초서 위기협상 전문요원이 지난 7월 16일 서울 서초구 한 아파트 24층 옥상에서 스스로 뛰어내리려던 10대 청소년 B군을 구조하기 위해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2명의 서초서 위기협상 전문요원은 "OO아, 누나 봐야지. 누나 여기 있어" "OO아, 고마워"라고 말하는 등 2시간에 걸친 설득 끝에 B군을 구조했다. /서초경찰서
이처럼 현장에 투입된 지역경찰 위기협상요원들의 업무 만족도는 높다. 서초서 서초2파출소 소속 정민지 순경은 "지난달 위기협상 교육을 수료했다. 자살 기도 신고는 빈번하게 들어온다. 지역경찰관으로서 자살기도와 위기협상에 대한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전문성을 요구하는 시대에 위기협상요원으로 경력을 쌓아서 자격증까지 취득한다면 경력 관리에 큰 도움이 되고 동기부여가 된다고 생각한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국민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서초서는 지역경찰 위기협상요원들의 경험을 축적해 개선점도 찾아나갈 방침이다. 김 과장은 "경찰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데 있다"며 "촘촘한 치안 시스템을 만들어 가기 위해 지역경찰 위기협상요원 제도를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반영윤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