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B, 올해 성장률 5.1%→4.7% 하향·물가 5.2%로 상향
신흥 통화 잇단 약세…페소·바트·루피·루피아 모두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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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이번 사태로 개발도상 아시아·태평양 국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5.1%에서 4.7%로 끌어내리고 내년 전망도 5.1%에서 4.8%로 하향 조정했다. 물가 상승률 전망은 5.2%로 올려잡았다. 시장조사업체 케플러에 따르면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두 달째 이어지면서 4월 아시아 원유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30% 감소해 2015년 10월 이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아시아는 걸프산 원유의 85%를 흡수하는 세계 최대 수입 지역이고, 호르무즈는 전 세계 석유·가스 공급의 5분의 1이 통과하는 길목이다.
각국 정부가 첫 번째 방어선으로 삼은 것은 보조금과 관세 면제다. S&P 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의 한나 루치니카바쇼르슈 아시아·태평양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유류 소비세를 인하해 초기 충격을 직접 흡수하기로 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인도가 단적인 사례다. 국유 정유사들이 지배하는 인도 정유업계는 원유값이 치솟는데도 소매가를 묶어두면서 디젤 1리터당 약 100루피(약 1550원), 휘발유 1리터당 약 20루피(약 310원)의 손실을 떠안고 있다. 일부 분석가들은 4월 지방선거가 끝났으니 가격 인상이 임박했다고 보고 있다.
이런 재정 출혈에 가장 취약한 곳은 남아시아다. S&P 글로벌은 파키스탄·방글라데시·스리랑카가 가장 취약한 국가들이라고 짚었다. 파키스탄은 카타르에서 평소 받아오던 액화천연가스(LNG)를 더 받지 못하게 되자 2023년 이래 처음으로 LNG 도입 입찰을 냈다. 카고 한 척에 100만 영국식 열량단위(MMBtu)당 18.88달러(약 27800원)를 지불했는데, 로이터 추산 기준 전쟁 전 시장가 대비 약 3000만 달러(약 442억 5000만 원) 더 비싼 값이다. 루치니카바쇼르슈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나라들은 자원의 더 많은 부분을 국내 공기업 보조와 최종 소비자 보호에 쓰고 있다"며 "동시에 재정 여력이 가장 빈약한 나라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직전 에너지 충격 때보다는 역내 경제의 충격 흡수 능력이 나아졌다고 덧붙였다.
신흥국 통화는 가장 먼저 무너졌다. 2월 말 이란 전쟁이 시작된 이래 필리핀 페소화는 5% 넘게 떨어졌고, 태국 바트화와 인도 루피화는 각각 3% 이상,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는 2.5% 이상 하락했다. 페소·루피·루피아는 모두 사상 최저 수준을 갈아치웠다. 반면 중국 위안화는 달러 대비 0.8% 오르며 역내에서 가장 견조했고, 일본은 시장 개입을 통해 엔화를 전쟁 전보다 0.4% 끌어올렸다. 한국 원화는 1.1% 약세에 그쳤다.
이런 가운데 각국의 대응 카드는 처지에 따라 갈리고 있다. 자체 산유국인 인도네시아는 자국 사업자에게 수출보다 내수 공급을 우선하도록 지시하고, 계약이 잡히지 않은 LNG 수출은 보류하기로 했다. 아세안 최대 경제국인 인도네시아는 중동산 원유의 빈자리를 아프리카·중남미산으로 메꾸려 하고 있고, 연말까지 러시아산 원유 1억 5000만 배럴을 사들일 계획이다. 태국에서는 한 국영 정유사 관계자가 "정유 공장이 가동률을 끌어올리면서 자국 석유제품 재고가 쌓인 데다 정부의 수출 금지 조치까지 겹쳐 원유 신규 매입을 일단 중단했다"고 전했다. 에너지 사용 규제와 고가의 영향으로 수요 자체가 줄어든 점도 매입 보류의 한 배경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원유의 95%를 중동에서 사오는 일본은 미국산 원유 매입을 늘리고 있다. 전쟁 이후 치솟은 현물 시세에 미국에서 일본까지 걸프 노선의 두 배에 달하는 운송비까지 더 얹어 부담하는 식이다. 일본은 지난 1일에는 비축유 3,600만 배럴 방출에 들어갔다. 전쟁 발발 이후 두 번째 방출이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 중국은 두툼한 비축, 다변화된 공급망, 연료·비료 수출 통제로 충격을 가장 잘 막아낸 편이다. 다만 베이징은 호주에서 미얀마까지 일부 역내 매입국에는 예외를 둬 수출을 풀어주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각국이 재정·외환·원유 재고를 끌어썼지만, 아시아의 경제 충격은 우려했던 만큼 크지는 않다"면서도 일본과 일부 동남아 국가의 2026년 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하고 인플레이션 전망은 소폭 올렸다. 연구진은 "지금까지 보여준 회복력이 구조적 요인 덕인지, 아니면 비축분의 지속 불가능한 소진 덕인지가 풀리지 않은 핵심 질문"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