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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전력망 붕괴로 전국 ‘암흑’…美 압박 속 체제 위기와 ‘접수’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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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승인 : 2026. 03. 18. 11:16

쿠바 정전 사태…노후 전력망·연료 부족·미국 압박 겹친 '복합 위기'
트럼프 "우호적 인수"...루비오 "새 지도부 필요"…대쿠바 압박 강화
디아스카넬 퇴진 요구 보도 속 대화 병행…'협상 해법' vs '정권 교체'
TOPSHOT-CUBA-US-BLACKOUT
한 쿠바 한 남성이 17일(현지시간) 아바나의 국립 디자인학교의 잔해 앞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AFP·연합
미국의 에너지 봉쇄로 쿠바는 전국 정전과 식량·의약품 부족, 교통·항공 차질, 반정부 시위 확산을 겪고 있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쿠바 체제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극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쿠바를 접수하는 영광"과 "우호적 인수"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쿠바는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주권과 내정 불간섭을 요구하고 있다.

Trump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가운데)이 1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진행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클 마틴 아일랜드 총리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쿠바 관련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를 J.D. 밴스 부통령(왼쪽)과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이 경청하고 있다./AP·연합
◇ 트럼프·루비오의 '강경 압박'..."쿠바, 고칠 수 없는 체제"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백악관에서 "쿠바는 지금 매우 좋지 않은 상태"라며 "우리는 쿠바와 관련해 아주 곧 무언가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쿠바계인 루비오 장관은 쿠바가 '작동하지 않는 경제'와 '고칠 수 없는 정치·정부 체제'를 갖고 있다며 "그래서 극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나는 쿠바를 어떤 형태로든 접수하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해방시키든(free it), 인수하든(take it), 나는 쿠바에 대해 내가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지금 매우 약해진 상태"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에도 '우호적 인수'를 언급해 왔다. 그는 15일 전용기에서 "우리는 곧 쿠바와 합의를 하거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라며 "꽤 빨리 무슨 일인가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13일에도 "인도적 위기일 필요는 없다. 그들은 우리와 합의를 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했다.

CUBA POWER OUTAGES
쿠바 시민들이 17일(현지시간) 정전 사태가 발생한 아바나의 한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EPA·연합
◇ '에너지 봉쇄'가 부른 암흑...미, 연료 차단에 쿠바 전국 전력망 마비

16일 쿠바 전역에서 정전이 발생했다. 쿠바 에너지광산부는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국가 전력 시스템의 완전한 단절이 발생했다고 밝혔고, 쿠바 국영전력청(UNE)도 국가전력망의 완전한 가동 중단에 따라 긴급 복구 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900만에서 약 1100만명의 주민이 이 정전의 영향을 받았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이러한 대규모 정전 사태는 트럼프 행정부의 에너지 봉쇄 정책이 주요 요인이다.

미국은 1월 3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한 이후 베네수엘라산 원유의 쿠바 공급을 차단했고, 멕시코 등에도 석유 거래 중단을 압박했다.

베네수엘라는 의사와 방첩 인력의 대가로 쿠바에 원유를 보내온 핵심 후원국이었지만, 1월 3일 마두로 체포 이후 그 흐름이 끊겼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멕시코도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위협 속에 최근 몇 주간 선적을 중단했다고 FT와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원유를 실은 유조선이 쿠바로 향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해상 정보업체 클레플러(Kpler) 자료에 따르면 아나톨리 콜로드킨호가 73만배럴의 러시아 우랄(Urals) 원유를 싣고 쿠바 마탄사스항으로 향하고 있으며, 또 다른 시호스호도 지난달 경로를 변경했다가 다시 쿠바행 움직임을 보였다.

이것이 최근 장기간 중단 이후 첫 대규모 연료 인도가 될 수 있지만, 원유는 정제에 20~30일이 필요해 즉각적인 구호를 주지는 못한다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그럼에도 70만배럴은 쿠바에 중요한 생명선이 될 수 있다. 블룸버그는 쿠바가 하루 약 10만배럴의 석유가 필요하지만, 자체 생산은 그 5분의 2 수준이라고 전했다.

CUBA-HAVANA-NATIONAL BLACKOUT
한 쿠바 남성이 17일(현지시간) 아바나의 한 폐쇄된 주유소에 앉아 있다./신화·연합
◇ 멈춰버린 일상, 식량 부패부터 합성 마약 확산까지

이번 정전은 수 시간에서 며칠씩 이어지는 광범위하고 만성적인 정전의 연장선이라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많은 주민이 음식이 상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고, 병원들이 수술을 취소했으며, 주요 대학은 정전과 교통 중단 때문에 수업을 줄였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외교관과 유엔 관리들은 전염병 발생과 기아 확산을 우려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운전자들은 기름을 넣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고, 석유 화력발전소는 연료 절약을 위해 더 오래 멈춰 있으며, 항공사들은 항공유가 없다는 통보를 받았고, 쓰레기 수거차가 움직이지 못해 거리에 쓰레기가 쌓이고 있다고 한다.

FT는 국영 상점의 식량 부족, 국가 운영 약국의 항생제와 파라세타몰(paracetamol) 부족, 합성 마약 '엘 키미코(el quimico)' 확산, 밤거리 강도 증가 등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전기 공급이 끊기면 수도도 끊기고, 엘리베이터·양수 펌프·은행·현금자동입출금기(ATM)·직불카드 단말기까지 멈춘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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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국가 전력망이 붕괴되면서 대규모 정전이 발생한 16일(현지시간) 쿠바 시민들이 아바나 거리에 모여 있다./로이터·연합
◇ "자유" 외치는 민심...공산당 당사 방화 등 이례적 시위

이러한 상황은 반정부 시위를 촉발했다. FT·WSJ·로이터 등에 따르면 쿠바 중부 모론에서는 13일 저녁 정전과 식량 부족에 항의하는 평화적 시위가 시작됐다가 이튿날 새벽 일부 지역에서 폭력 시위로 변했다. 시위대는 공산당 모론시 당사에 돌을 던지고 가구에 불을 질렀고, 약국과 시장 등 다른 국영 시설도 표적이 됐다. 경찰은 5명을 구금했고, 소셜미디어(SNS)에는 '자유'를 외치는 목소리가 담긴 영상이 올라왔다.

공산주의 국가인 쿠바에서 이런 폭력 시위는 매우 드문 일이라고 로이터·FT는 짚었다.

Cuba Power Outage
쿠바 아바나에서 대규모 정전이 발생한 17일(현지시간) 한 건물 외벽의 전선 옆에 고(故)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상단)과 고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사진이 부착돼 있다./AP·연합
◇ 관광·의료 '달러 박스'의 몰락...쿠바 경제의 구조적 붕괴

쿠바의 위기가 단지 최근 정전에 그치지 않는다고 FT는 전했다. 미국의 금수조치(embargo)는 1962년부터 경제를 압박해 왔고, 쿠바 내부의 실책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때 세계적인 설탕 수출국이던 쿠바는 이제 브라질산 설탕을 수입하고 있고,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의 길고 엄격한 봉쇄는 관광 산업을 무너뜨렸다고 FT는 지적했다. 도미니카공화국 등 경쟁국은 더 나은 호텔과 음식으로 미국·유럽 관광객을 빼앗아 갔다.

군 통제 기업 가에사(Gaesa)는 팬데믹 이후 관광 회복을 기대하며 수억 달러를 들여 새 고급 호텔을 지었지만, 기대했던 중국·러시아 관광객은 오지 않았다고 FT는 전했다. 지난해 개장한 42층 토레 K(Torre K)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시장을 상징한다고 FT는 보도했다. 또 쿠바의 또 다른 외화 수입원인 의사 수출은 국무부 기준 연간 최대 80억달러를 벌어들였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강제 노동 수출 계획(scheme)'이라며 관련 관리들의 비자를 취소했고, 점점 더 많은 나라가 쿠바 의사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고 FT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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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현지시간) 찍은 쿠바 아바나의 미국 대사관./AFP·연합
◇ "단기 해법 없다"...100억달러 규모의 전력 재건 장벽

WSJ에 따르면 쿠바 전력 생산의 약 90%는 석유에 의존하고 있으며, 쿠바는 전체 석유 수요의 약 40%만 자체 충당한다. 또 대부분 발전소가 약 40년간 제대로 된 유지보수와 투자 없이 운영돼 왔다.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 에너지연구소의 호르헤 피뇽 연구원은 WSJ에 쿠바의 노후 전력망을 교체하는 데 80억~100억달러가 들고, 3~5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사용 중인 발전소 부지가 심하게 오염돼 있어 기존 설비를 살리기보다 새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며 "단기 해법은 없다"고 말했다.

◇ 미·쿠바 물밑 대화와 '디아스카넬 퇴진' 조건부 협상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은 13일 미국과 대화 중이라고 주장했다. FT는 디아스카넬 대통령이 미국의 에너지 봉쇄를 둘러싼 협상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NYT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정부가 협상 진전의 조건으로 디아스카넬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디아스카넬 대통령이 집권하는 한 쿠바와 어떤 합의도 할 수 없다고 압박했고, 일부 고위급 관리들의 퇴진과 정치범 석방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카스트로 가문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도 요구하지 않았다고 NYT는 보도했다. AP는 트럼프 행정부가 디아스카넬의 퇴진을 원하고 있지만, 누가 대체자로 거론되는지는 제시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 '제3의 길'과 카스트로 가문...포스트 디아스카넬 시나리오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 침공 대신 '제3의 길'을 검토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경제 압박으로 쿠바를 미국에 재정적으로 의존하게 만들어 과거 소련이 하던 역할을 미국이 대신하는 구상이며, 디아스카넬 대통령을 대체해 정치·경제 변화를 감독할 수 있는 인물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루비오 장관 등 미국 고위 관리들은 라울 카스트로 전 대통령의 손자 라울 기예르모 로드리게스 카스트로 측과 대화해 왔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이 통신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서반구 담당 차관보를 지낸 킴벌리 브라이어를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군사 타격보다 안정을 중시하는 '협상된 정부 전환'을 선호한다고 보도했다.

FT는 베네수엘라식 '정권 참수' 모델이 쿠바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 같은 대체 지도자가 없고, 국가 통제 경제를 해체할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쿠바 아바나의 피델 카스트로 센터 훌리오 에두아르도 토레스 안내원은 "우리는 승리하거나 함께 멸망할 것"이라며 "베네수엘라 사례가 재현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FT는 디아스카넬은 충성스러운 관리이지만 카스트로 형제의 카리스마는 없고, 94세의 라울 카스트로는 공식 직책은 없으나 여전히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의 아들 알레한드로 카스트로 에스핀이 최근 멕시코를 방문해 미국 관리들을 만났다는 보도가 쿠바 반체제 매체에서 나왔지만, 또 다른 카스트로가 정부 전면에 나서는 것을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회의론도 있다고 FT는 보도했다.

◇ 미 정치권의 딜레마, 쿠바 '정권 붕괴'와 '난민 유입' 사이의 셈법

FT는 쿠바계 미국인 로비와 공화당 의원들이 더 강한 압박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카를로스 히메네스 하원의원은 미국발 항공편과 송금 전면 중단을 요구했고, 마리오 디아스발라트 의원은 "일을 끝낼 때"라고 말했다.

반면 루비오 장관은 상원 증언에서 쿠바의 정권 교체를 보고 싶다고 하면서도 "그렇다고 우리가 변화를 만들겠다는 뜻은 아니다"며 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전직 백악관 관리들은 FT에 루비오 장관이 쿠바 정권의 완전한 붕괴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플로리다주로 향하는 난민 물결을 촉발해 트럼프 대통령의 불법 이민 감축 성과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전직 미국 관리는 "쿠바는 이주 폭탄으로 우리를 공격할 능력이 있다"며 "트럼프는 쿠바의 위기를 원하지 않고, 그들을 협상 테이블로 몰고 가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 '결집 구호'가 된 봉쇄...불확실성에 놓인 쿠바의 미래

미국의 압박(chokehold)이 쿠바를 혼란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FT는 전했다. 미국 아메리칸대 윌리엄 레오그란데 교수는 "행정부 관리들은 쿠바를 불안정하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사회 시스템을 붕괴시키도록 설계된 경제 전략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사회가 붕괴하기 전에 항복할 것이라고 베팅하고 있지만, "그 베팅이 틀릴 수 있다"고 했다.

레오그란데 교수는 1990년대보다 지금이 정부에 더 어려운 정치 조건이라고 진단하면서도, 미국이 "당신들의 모든 석유를 끊겠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이 오히려 쿠바 정부에 결집 구호(rallying cry)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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