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권 압도 국가 주도 '양적 공세'
딥시크로 증명된 순수 국산 엘리트 시스템의 저력
개인에겐 가혹한 생존 경쟁, 국가엔 초격차 기술 패권의 강력한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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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는 중국 전역의 명문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구축된 초경쟁적 인재 선발 네트워크가 과학·기술 분야의 핵심 인물을 지속적으로 배출해 왔다고 전했다.
◇ 코로나 봉쇄 속에서도 작동한 중국식 인재 선발
2022년 11월, 코로나19 봉쇄가 극에 달했던 베이징(北京)에서는 중국 교육 시스템의 특성을 상징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당시 한 제약회사 매니저는 발신자 불명의 유선전화를 받았다. 발신자는 15세 아들을 명문 고등학교의 '천재반' 자격시험에 보내라고 제안했다. 시험은 한시간 동안 시내를 이동하는 밴 안에서 대학 수준의 수학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해당 학부모는 FT에 이를 납치나 광기로 의심하지 않았다며 중국 최고의 교육 자원으로 가는 '황금 티켓'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이 사례는 중국이 조기 단계부터 우수 인재를 발굴하는 데 얼마나 집요하게 접근하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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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에 따르면 이 소년은 매년 약 10만명의 중국 청소년이 선발되는 과학 중심 인재 트랙의 일부였다. '천재반'은 '실험반(實驗班)' 또는 '경쟁반(競賽班)'으로도 불리며, 수학·물리·화학·생물·컴퓨터과학 분야 국제대회를 목표로 학생들을 집중 훈련시킨다.
FT는 이 시스템이 중국 과학·기술 산업의 핵심 인력을 수십년에 걸쳐 공급해 왔으며, AI·로보틱스·첨단 제조업 분야에서 미국의 기술 지배에 도전하는 기업들의 토대가 됐다고 평가했다.
◇ 中 과학·기술·공학·수학 전공자 500만명, 美의 10배…'국가 주도'가 만든 압도적 양적 기반
FT는 중국 천재반 시스템이 서구의 인재 육성 모델과 다른 가장 큰 차이로 압도적인 규모와 국가 주도성을 꼽았다.
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매년 약 500만명의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전공자를 배출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의 약 50만명과 대비된다.
FT는 이 수치가 중국 인재 시스템의 '양적 기반'을 상징한다고 분석했다. 또한 중국의 천재반은 국가가 고교 단계부터 인재를 선별·집중 훈련하는 구조인 반면, 서구권에서는 이러한 조기·집중형 국가 주도 트랙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이 신문은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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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반이 강력한 유인책으로 작동하는 또 다른 이유는 중국 학생들에게 가장 큰 부담으로 꼽히는 전국 대학입학시험 가오카오(高考)를 건너뛸 수 있는 경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국제 과학 올림피아드나 전국 대회에서 상위 성적을 거둔 학생들은 고등학교 졸업 이전에 칭화(淸華)대·베이징(北京)대·상하이교통(上海交通)대 등 최상위 대학 입학권을 확보할 수 있다.
FT는 이 같은 제도가 천재반 학생들을 일반 교육 경로와 분리해 국가가 필요로 하는 과학·기술 인재를 조기에 확보하는 수단으로 작동한다고 전했다.
◇ '가성비 AI' 딥시크의 비결…'천재반' 출신들이 일군 성과
최근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공개한 대형언어모델 'R1'은 천재반 시스템의 성과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혔다. 딥시크는 국제 경쟁사 대비 적은 비용과 적은 수의 첨단 칩으로 고성능 모델을 개발했다. FT는 딥시크가 개발 과정을 공개하고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도록 했다며 이 사례가 미국 AI 기업들이 폐쇄적인 모델 전략을 유지하는 것과 대비된다고 평가했다.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梁文鋒)은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개발팀 대부분이 중국에서 교육받은 인재라고 밝혔는데, 실제로 개발진 상당수는 중국 각지의 천재반 출신이라고 FT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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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는 중국 천재반 출신 인재들이 중국 기업뿐 아니라 미국 AI 산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오픈AI와 구글 딥마인드 등 미국 AI 기업 연구진 가운데 중국 출신 인재가 다수 포진해 있다며 이들이 '세계적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중국의 인재 육성 시스템이 단지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AI 경쟁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의 천재반 시스템은 국제 과학 올림피아드 성과를 통해 입증됐다. FT에 따르면 중국은 1985년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처음 참가한 이후 점차 성과를 축적했고, 2025년에는 대표단 23명 중 22명이 금메달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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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과학 교육 중시는 1958년 마오쩌둥(毛澤東)의 대약진운동 이후 형성됐다. 당시 마오는 서구 열강을 따라잡기 위해 군사력과 중공업 중심의 국가 도약을 시도했지만, 이 정책은 대규모 기근과 수백만 명의 사망자를 낳는 참혹한 실패로 귀결됐다고 FT는 짚었다.
그러나 FT는 대약진운동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이 국가 발전의 핵심'이라는 메시지 자체는 이후 수십 년간 중국 사회와 교육 현장에 깊게 각인됐고, 이러한 전환은 전통적으로 인문학을 중시해 온 중국 사회에서 매우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했다고 FT는 평가했다.
기술·과학 교육이 국가 생존과 직결된 과제로 인식되면서, 교육 정책은 '선별과 집중'의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80년대 교육 당국은 '인재를 빠르고 조기에 배출하라'는 구호를 내걸었고, 1985년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첫 참가를 계기로 천재반 모델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이후 중국은 국제 과학 올림피아드에서 지속적으로 성과를 쌓았으며, 2025년에는 대표단 23명 중 22명이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러한 흐름은 2017년 AI를 '국가 핵심 성장 전략'으로 명시하면서 더욱 가속화됐고, 2018년 한 해에만 'AI'를 명칭에 포함한 특수 학급 35곳이 새로 설립됐다.
◇ 개인에겐 가혹한 생존 경쟁, 국가엔 초격차 기술 패권의 강력한 무기
FT는 천재반 시스템이 개인에게는 극심한 경쟁과 조기 전문화의 부담을 주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AI와 첨단 기술 분야에서 빠른 성과를 창출하는 핵심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천재반 출신이자 글로벌 코딩 대회 챔피언인 다이원위안(戴文淵)은 중국의 강점으로 대규모 인재 풀을 꼽으며, 등록된 생성형 AI 모델 수가 1000개를 넘는 점을 그 결과로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