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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미국 없는 안보는 환상”… 유럽의 1조달러 청구서가 한국에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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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승인 : 2026. 01. 29. 07:30

나토 사무총장의 일침 "미국 없는 유럽의 자주국방, 꿈"
유럽 배치 미군 자산 대체에 1조달러
한국, 유럽보다 안전한가
전작권 전환·종전선언 논의 앞에서 필요한 '동맹 설계'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유럽은 지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근본적인 안보 정체성의 갈림길에 서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매입 요구와 관세 위협은 단순한 외교적 마찰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이 동맹국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최종 보증한다'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77년 역사의 신뢰 자산을 정면으로 흔든 사건이었다. 유럽은 '홀로서기'라는 선택지 앞에서, 감당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는 재무장 비용을 냉정하게 계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 혼란을 가장 분명하게 정리한 인물은 역설적으로 나토의 수장인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이었다. 그는 26일(현지시간) 유럽의회 연설에서 "미국 없이 유럽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계속 꿈을 꾸라(Keep on dreaming)'"고 선을 그었다. 이어 "당신들은 할 수 없고, 우리도 할 수 없다.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다"고 못 박았다. 

트럼프 나토 사무총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세번째)과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두번째)이 21일(현지시간)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가 열리고 있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회담하고 있다. 이 자리에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네번째)·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등이 배석하고 있다./AFP·연합
이는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군사적 계산의 결과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유럽이 현재 배치된 미군의 장비·지휘·정보·전략자산을 독자적으로 대체하려면 약 1조달러에 달하는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고 추산한다. 포탄과 드론 생산을 늘리는 '방산 르네상스'는 가능할지 몰라도, 스텔스 전력과 위성 정보망, 장거리 정밀 타격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의 핵우산은 돈을 쏟아붓는다고 해서 단기간에 구축할 수 있는 자산이 아니다. 자주국방은 정치적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재정·산업·인력 기반을 총동원해야 하는 선택임을 뤼터의 발언이 여실히 보여준다.

한미정상
이재명 대통령(오른쪽)이 2025년 10월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하고 있다. 왼쪽은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여한 무궁화 대훈장./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 장면은 한국에도 직접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유럽보다 안전한가.

한국 안보의 핵심 변수는 여전히 핵무장한 북한이다. '세계 5위 군사력'이라는 재래식 전력의 순위는 핵이라는 비대칭 억지력 앞에서 결정적 기준이 될 수 없다. 유럽이 재래식 군사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라는 핵 보유국을 상대로 미국의 확장억제 없이는 방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현실 인식은 안이해 보인다. 한국의 국방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2.6% 수준이다. 러시아의 위협을 실존적 위험으로 인식한 폴란드는 4%를 넘어 5%를 향해 가고 있고, 미국 역시 3%대 중반을 유지한다. 약 250km에 이르는 군사분계선(MDL)을 사이에 둔 북한의 직접 위협과, 팽창하는 중국의 구조적 압박을 동시에 받는 한국의 안보 환경을 감안하면, 현재의 지출 수준을 "충분하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캠프 험프리스 방문한 엘브지 콜비 미국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
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전쟁부) 정책담당 차관(왼쪽 두번째)이 26일 오후 경기도 평택 소재 주한미군기지인 캠프 험프리스를 방문하고 있다. 콜비 차관은 이 자리에서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오른쪽)으로부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계획과 주한미군 태세와 작전 계획 등을 보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브런스 사령관 엑스(X) 캡처·연합
이런 조건에서 준비보다 정치적 속도를 앞세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논의는 억제력 강화가 아니라 공백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더 나아가 제도적 대안 없이 추진되는 종전선언은 한미연합사와 유엔사(UNC) 체제의 국제법적·정치적 정당성까지 흔들 수 있다. 이는 동맹의 구조적 약화를 노리는 주변국의 전략과 맞물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감정적으로 동맹 의존을 거부하는 설익은 자주국방도, 미국의 의지에만 기대는 안일한 태도도 아니다. 국방비와 첨단 전력 투자를 통해 한국의 책임과 기여를 분명히 하되, 확장억제·연합지휘·연합훈련·유엔사 기반 정전체제라는 한미동맹의 핵심 골조를 유지·강화하는 '동맹 설계'가 요구된다.

유럽은 지금 '홀로서기'의 비용을 계산서 위에서 역지사지로 따지고 있다. 전쟁의 당사자인 한국은 그 계산을 미루다 대가를 치르는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 동맹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냉혹한 준비와 책임의 문제다.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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