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증오범죄 면죄부 우려 커져
반아시아계 공통 상징 부재, 입증 어려워
아시아계 정치적 위상 취약
LA폭동처럼 아시아계 정치연대 강화 계기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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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용의자에 대한 증오범죄 적용이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집회에서 “아시아계를 향한 증오를 멈춰라”고 외쳤다.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집회에는 한국계 여배우 샌드라 오가 깜짝 등장해 연사로 나서 2분여 동안 구호를 외치며 수백 명의 군중을 이끌었다.
샌드라 오는 “여기에서 여러분과 함께하게 돼 정말 기쁘고 자랑스럽다”며 “나는 아시아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사회에 있는 많은 사람에게 우리가 두려움과 분노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우리는 자매와 형제들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달라’고 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소셜미디어(SNS)에서도 ‘아시아인 혐오를 멈춰라(#StopAsianHate)’는 해시태그를 달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인종 혐오범죄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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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성중독’이었다는 롱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자칫 백인 용의자의 증오범죄에 대한 또 한번 면죄부를 제공하는 셈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실제 범죄 발생 사흘이 지났지만 롱에 대한 증오범죄 적용 여부는 아직도 가시적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AP통신은 법무 당국자 2명을 인용해 연방 수사관들이 롱에게 증오범죄 혐의를 적용하는 데 필요한 증거를 아직 찾지 못했다고 전했다.
유독 아시아계를 노린 범행 중 수많은 사건이 체포나 기소 단계에서 증오범죄 혐의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지적했다.
반(反)아시아계를 뜻하는 공통된 상징이 없다는 점에서 범행 동기를 인종차별이라고 입증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왕루인 피츠버그대 법학 교수는 “흑인·유대인·동성애 반대 증오범죄는 전형적이며, 좀더 분명한 형태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미 전체 인구의 6%를 차지하는 아시아계의 정치적 위상이 백인뿐 아니라 히스패닉계(18.5%)·아프리카계(13.4%)와 비교해 크게 떨어지는 것도 반아시아계 증오범죄 혐의가 적용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미 연방의회 및 주(州)·카운티 등 지방의회 의원 중 아시아계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다양성’ 내각을 표방하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에서조차 아시아계 장관은 한명도 없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서남아시아계보다 아프리카계 정체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샌드라 오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 것처럼 아시아계의 권리를 요구하는 시민운동의 역사가 일천(日淺)한 것도 원인이다.
피해를 감수하는 아시아계의 소극적 성격과 언어장벽 등으로 신고를 꺼리는 것도 이유일 수 있다.
경찰 내 아시아계 증오범죄 전담반 관계자는 최근 인터뷰에서 언어 문제·체류 자격·보복 우려 등으로 아시아계 미국인이 범죄 신고를 꺼리기도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아시아계가 연대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지난해 11월 3일 대선과 함께 치러진 연방의회 하원선거에서 한국계 4명이 당선된 배경에 1992년 로스앤젤레스(LA) 폭동을 계기로 정치의식이 변화한 것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