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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신임 총리에 안와르…‘국부’ 마하티르는 쓸쓸히 정계은퇴

말레이시아 신임 총리에 안와르…‘국부’ 마하티르는 쓸쓸히 정계은퇴

기사승인 2022. 11. 2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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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aysia Election Anwar <YONHAP NO-3633> (AP)
1998년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당시 총리(오른쪽)과 안와르 이브라힘(왼쪽) 당시 부총리의 모습. 마하티르는 자신의 마지막 선거에서 참패한 후 23일 정계 은퇴를 선언했고 안와르는 24일 신임 총리로 지명됐다./제공=AP·연합
24일 말레이시아 차기 정부를 이끌 신임 총리로 '개혁파' 안와르 이브라힘(75) 전(前) 부총리가 지명됐다. '말레이 국부'로 칭송받던 마하티르 모하맛 전(前) 총리의 오른팔이었으나 갈등을 빚으며 갖은 수난을 겪은 끝에 총리가 된 것이다. 전날 총선 참패를 받아들이며 사실상의 정계 은퇴를 선언한 마하티르 전 총리와 희비가 엇갈렸다.

베르나마통신과 AP등에 따르면 압둘라 말레이 국왕은 이날 각 주(州) 최고 통치자들과 특별회의를 연 뒤 안와르 전 부총리를 제10대 총리로 발표했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5시 안와르는 왕궁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본격적인 총리 업무를 시작하게 된다.

지난 19일 실시된 제15대 총선에서 안와르 전 부총리가 이끈 희망연대(PH)는 가장 많은 83석의 의석을 차지했으나 과반수를 넘기진 못했다. 무히딘 야신 전 총리의 국민연합(PN)이 73석, 현 집권연합인 국민전선(BN)이 30석을 얻어 연정구성을 위해 정당들이 두 차례 회동했지만 합의에 이르진 못했다. 이후 압둘라 국왕의 중재가 이어지며 BN이 PN을 제외한 정당을 지지해 통합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고 밝히며 안와르가 과반 지지를 얻게 됐다. 하원 222석의 말레이에선 과반 의석을 위해 112석을 확보해야하는데 PH와 BN이 손을 잡으며 가까스로 113석을 만들어냈다.

안와르 신임 총리는 대표적인 야권 '개혁파' 정치인이다. 1990년대 마하티르의 오른팔이자 후계자로 여겨졌지만 그와의 불화로 98년 부총리 자리에서 물러났고 이후 동성애와 권력남용 혐의로 투옥됐다. 6년만에 무죄로 밝혀져 풀려났지만 2008년 동성애를 했다고 고발한 그의 전 보좌관으로 또 다시 수년간 재판을 받았다.

안와르는 2018년에는 마하티르와 손을 잡고 61년만에 사상 첫 정권교체를 이뤄냈으나 마하티르가 총리 자리를 물려주겠단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내분 등이 일어나며 PH 정권도 무너졌다. 이번 총선에서도 PH가 과반의석을 획득하지 못하면 다른 정당간 연합으로 인해 집권이 힘들 것이란 분석이 나왔지만 결국 안와르가 극적으로 총리 자리에 오른 것이다.

반면 마하티르 전 총리는 전날 사실상의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총선 이후 처음으로 입을 연 그는 "이번 총선에서 패배했다. 슬프지만 국민들의 선택을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97세란 고령에도 불구하고 지난 19일 치러진 총선에 출마한 그는 자신의 지역구인 랑카위에서 5명의 후보 가운데 득표 4위에 그쳐 낙선했다. 10%에 미치지 못하는 득표율로 기탁금조차 돌려 받지 못했다. 그가 이끌던 조국운동(GTA)도 단 한 석조차 건지지 못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1981년부터 2003년까지 총리를 맡으며 한국·일본 등의 빠른 경제발전을 벤치마킹해 말레이시아의 '동방정책'을 펼쳤다. 그의 강력한 국가주도 경제발전으로 후진 농업국가였던 말레이시아는 신흥공업국으로 거듭났고 그도 '말레이 국부' '말레이 근대화의 아버지'로 칭송받기도 했다.

60년 넘게 말레이시아를 통치한 국민전선(BN) 정권에서 총리를 지냈던 그는 지난 2018년 총선에서 야권 지도자로 변신해 말레이 역사상 첫 정권교체를 이루고 93세의 나이에 총리에 오르며 '세계 최고령 국가 정상' 기록을 세웠다. 2020년 내부분열로 총리 사임 후 재신임을 노렸지만 총리직을 되찾지 못했고 이번 선거에서도 참패하며 정계에서 물러나게 된 것이다. "범죄자들이 이끄는 부패한 정부를 축출하기 위해서"라는 출사표를 던지며 출마한 그는 마지막 선거에서 1969년 이후 첫 패배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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