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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호랑이 꼬리에 자리잡은 ‘호압사’와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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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중 기자

승인 : 2026. 10. 30.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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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압사, 유교와 불교 상호보완 공존 보여주는 사찰
약사기도 도량으로 조선 시대부터 '유명'
왕실 안녕에서 공동체 안녕과 나눔으로 역할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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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호압사 전경. 호암산 암벽이 마치 호랑이가 웅크려 앉은 것 같다. 호압사 자리는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사진=황의중 기자
조선 시대는 흔히 '억불숭유(抑佛崇儒)'의 시기로 정의된다. 불교는 공적 영역에서 철저히 탄압받았다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서울 금천구 호암산(虎巖山) 자락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호압사(虎壓寺)'를 들여다보면, 유교와 불교가 때로는 상호보완하며 공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압사 본당인 약사전에는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8호 석약사불좌상(石藥師佛坐像)'이 봉안돼 있다. 전체 크기 1m 안팎의 이 아담한 석불은 고개를 앞으로 약간 숙인 자세와 네모난 모양의 얼굴, 그리고 신체를 두껍게 감싼 옷 주름 등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에 이르는 뚜렷한 조형적 특징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 불상의 제작 시점이 사찰 창건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1943년 편찬된 사찰 기록물인 '봉은본말사지(奉恩本末寺誌)'에 따르면, 호압사는 조선 태종 7년인 1407년에 창건됐으며 태종이 직접 사찰의 이름을 내렸다. 태종은 불교를 억압하고 성리학적 질서를 확립에 공을 들인 군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직접 불교 사찰의 이름을 내린 데에는 유교로는 해결이 안 되는 서울의 풍수지리적 결함이 있었다. 즉 경복궁을 위협하는 호암산의 거센 호랑이 기운을 누르기 위한 '비보(裨補·풍수적으로 모자라거나 과한 것을 조정하는 것)'사찰이 필요했던 것이다. 태조 때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세웠다는 민간 설화와는 창건 시기는 다르지만 호암산의 기운을 누르는 비보사찰이었다는 점은 구전과 사료가 다르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유교·불교 상호보완 관계는 조선 중기 이후의 지리지에서도 명확히 증명된다. 16세기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시작으로 18세기의 '가람고'와 '범우고' 등 공적 지리지 체계 안에 호압사의 존재와 역할이 누락되지 않고 일관되게 기록돼 있다. 조선 사회가 국가적 안녕을 위해 불교의 비보적 기능을 묵인하고 국정 운영의 한 축으로 활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역할은 조선 말기인 1841년(헌종 7년) 왕실 상궁들이 대거 시주해 사찰로 중창했다는 구체적인 불사 기록으로도 이어진다. 공적 이념은 유교가 담당하되, 인간의 본원적인 불안과 질병을 치유하는 사적 영역은 불교가 메우는 유·불 공존의 구조가 조선 왕조 내내 지속됐던 셈이다. 양손에 질병을 치료하는 붉은 약그릇(보주)을 감싸 쥐고 있는 석약사불좌상의 독특한 형태는 왕실과 민초들이 오랜 세월 마음의 병과 육체의 질병을 고쳐주는 '약사 기도도량'으로서 호압사에 의지했음을 증명한다.

공동체의 안녕을 비는 약사 기도는 오늘날도 이어지고 있다. 오히려 왕실이 사라진 현재 공동체의 안녕이란 유교적 이념과 자비의 실천이란 불교적 신행이 만나 더욱 빛나고 있다.

호압사는 매월 정기적으로 약사여래 초하루 기도 법회 등을 봉행하고 있으며, 상시 참배를 위해 약사전과 삼성각을 24시간 개방하고 있다. 또한 이웃과 사회를 돌보는 약사 여래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호압사는 지난해 4월 서울시와 토지무상사용 계약을 맺었다. 이에 따라 사찰은 사유지 약 1500㎡(약 450평)는 시민들을 위한 공공 녹지와 공연장, 여가 공간으로 무상제공했다. 아울러 무료 국수공양 봉사, 복지시설 후원, 장학금 조성 등 소외계층을 위한 나눔도 지속하고 있다.

호압사 측도 "왕실이 사라진 지금 호암산의 호랑이 기운을 누를 필요가 없다. 동물원에서 호랑이를 보고 즐기듯이 시민의 휴식처가 된 이상 호랑이의 기세에 올라 타 새 시대에 맞는 사찰이 되고자 한다"며 좀 더 지역 사회를 위한 사찰이 되고자 하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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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문화재자료 제8호 석약사불좌상(石藥師佛坐像·가운데). 이 불상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15~16세기)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호압사가 조선 태종 7년(1407년)에 창건됐다는 사료(봉은본말사지)의 기록을 고고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실물 증거다./사진=황의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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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압사의 중심 전각인 약사전. 호압사는 대웅전이나 적광전이 아닌 약사전 중심으로, 약사여래 부처님을 중심으로 모시고 있다./사진=황의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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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압사의 상징인 호랑이를 묘사한 장엄등(대형 연등)./사진=황의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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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지은 호압사 극락전. 호압사는 현대에 와서는 시민들과 함께하기 위한 불사를 하고 있다./사진=황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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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대사 진영(眞影·초상화). 호압사 삼성각에는 호랑이를 다루는 산신과 더불어 창건 설화와 관련된 무학대사를 모시고 있다./사진=황의중 기자
황의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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