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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라비아반도의 안보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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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10. 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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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종 전 카타르대사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개전(開戰) 8개월을 넘긴 이란전쟁은 소모전이 되어 예멘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공방전으로 비화했다. 두 개의 전쟁 모두 사우디아라비아가 주 타격 목표가 되는 양상으로 중동의 위기를 추동하고 있다. 면적 약 320만㎢의 아라비아반도에 220만㎢ 정도를 차지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랍 왕정국가 세력의 중심국이다. 무엇보다도 아라비아반도는 근대 아랍 민족국가의 발상지며 동시에 분열의 단초가 된 곳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1916년 5월 사이크스 피코 협정으로 중동 경략을 시작해 오스만 튀르키예의 근 450년 지배를 종식시켰다. 이 시기 레바논과 시리아, 레반트 지역의 지식인들이 서구식 근대 정치사상을 학습해 건국을 준비했다면 아라비아반도 사막의 아들들은 이슬람 민족신앙으로 결집해 무력으로 독립전쟁에 착수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슬람의 시조 모하메드의 후손인 메카 부족장 알리 후세인(Ali Hussein)은 이집트 주재 영국 고등판무관 맥마흔과 10통의 왕복서한(Hussein-McMahon Correspondence)을 교환하면서 영국의 군사와 재정지원을 받았다. 그리고 1916년 6월 아랍 독립전쟁을 시작해 11월에는 메카에서 최초의 근대 아랍민족국가(Islam Arab Khalifa)를 선포했다.

그러나 알리 후세인의 하셈(Hashemite) 가문은 아라비아반도의 중앙 네즈드(Nejd)의 지배자 사우드(Saud) 가문에 의해 서부 헤자즈(Hejaz) 메카 일대를 점령당하고 북부로 이주해 요르단왕국(Hashemite Kingdom of Jordan)으로 자리를 잡는다. 요르단 왕실의 친위대가 현지의 토착민이 아닌 코카서스 출신으로 구성되는 배경이다. 그리고 아라비아반도를 장악한 이븐 사우드는 1932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왕국(Kingdom of Saudi Arabia)을 건국하고 알리 후세인과 대립하면서 아랍국가 간의 냉전의 씨앗을 뿌렸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근대 아랍왕정국가의 대표 격이라면 예멘은 쿠데타로 왕정을 무너트리고 아랍 공화정 세력의 기초를 놓았다. 고대 시바 여왕(Queen of Sheba) 당시에 아라비아의 천국(Arabia Felix)으로 불릴 만큼 뛰어난 역사문화를 가진 홍해와 인도양의 전략 요충지로 과거 냉전기에는 소련의 군사거점이었다. 예멘은 1958년 이맘(Imam) 왕정을 무너트리고 공화국으로 출범했다. 그리고 3월 이집트, 시리아와 연대해 통일아랍공화국(United Arab Republic)을 창설하면서 아랍연맹 22개국 연합체를 왕정과 공화정 양대 세력으로 분리했다.

이후 내전이 발발해 1962년 10월 이집트와 소련 연합군은 예멘 공화정을 지원하는 원정 작전을 전개했고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예멘 왕정을 지원했다. 소련공군의 수송기 편대가 카이로에서 사나까지 2000여 ㎞ 장거리를 왕복하면서 전차와 전투부대를 공수했다. 그러나 예멘의 고산지대와 계곡은 전차 운용에 장애물이 되고 고산병에 시달리는 이집트군의 작전은 실패했다.

고도 2200m미터 높이의 예멘 수도 사나(Sanaa) 공항은 비행기가 하강하는가 싶다가 곧바로 착륙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뛰거나 계단을 급히 올라가면 어지럽거나 코피를 쏟기도 한다.

결국 참전 5년째인 1967년 나세르는 "예멘은 나의 월남전이 되었다"고 토로하고 "예멘에서 전사한 이집트군 병사들의 군화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의 왕관보다 더 큰 명예"라고 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 왕실을 비난했다. 이스라엘은 이 틈을 노려 6일 전쟁을 벌여 이집트를 패배시켰고 11월에는 이집트군의 7만 참전군의 마지막 병력이 예멘을 떠났다. 아랍 냉전이 긴박감을 더했던 1970년 9월 아랍연맹 정상회의에는 후세인 요르단 국왕과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 그리고 카다피 리비아 지도자가 각자 권총을 휴대한 채 회의장에서 설전을 벌였다. 그리고 회의 마지막 날 나세르가 심장마비로 사망해 아랍연맹의 지도력이 소거되었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은 중동의 정치 지형을 완전히 바꾼 사건이었다. 이란은 예멘 공화파 그리고 레바논 헤즈볼라와 연대해 반미, 반이스라엘 그리고 반왕정의 기치 아래 중동의 질서 재편을 추동해 왔다. 여기에 이라크와 리비아 그리고 시리아가 합세하면서 아랍 왕정국가와 공화정국가 간의 냉전은 열전화했다. 19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아랍 민족국가 간에 벌어진 무력 충돌의 절정이었다.

이 때문에 말컴 커(Malcolm Kerr) 같은 아랍학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중동 상황을 아랍과 이스라엘 간의 투쟁인 중동 냉전과 별도로 아랍국가 간의 투쟁을 아랍 냉전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중동문제가 위기로 치닫는 배경을 이들 두 개의 냉전이 중첩된 안보 딜레마로 설명했다. 갈등 주체 간에 상대방을 현상타파 국가(revisionist power)로 일방적으로 규정하면서 신뢰를 파괴해 오히려 안보를 위협하는 안보 딜레마(security dilemma)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1993년 9월 오슬로협정 I(Oslo I Accord)과 1995년 9월 오슬로협정 II(Oslo II Accord)를 끝으로 중동 평화과정이 소거되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서는 중동을 지탱하는 삼대 축인 석유와 국왕 그리고 이슬람이 흔들리는 시대에 진입했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는 2015년 살만(Salman bin Abdulaziz Al Saud) 국왕 즉위 후 전통적인 국왕 승계제도였던 형제 승계에서 부자 승계로 바뀌는 일대 전기를 맞았다. 이란과 예멘 그리고 이스라엘은 이러한 불안정성을 적극 활용할 것으로 예멘 내전은 다시 한번 국제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중동문제는 관련된 국가들의 정확한 정세 분석과 신중한 판단이 요구되는 시기로 접어들었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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