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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화 칼럼] 한국경제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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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9. 1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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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석좌교수
올여름은 영화 '오디세이'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원작으로,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면서 겪는 모험을 그린다.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그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폭풍과 괴물, 달콤한 유혹을 지나 귀향하기까지 10년이 더 걸렸다.

최근 지표만 보면 한국 경제도 긴 부진과의 싸움에서 일단 승리한 듯하다. 재정경제부는 '최근 경제동향'에서 수출과 내수가 개선되면서 '견조한 경기회복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8월 수출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전년 동월보다 68.7% 증가했다. 한국은행은 수출과 투자 호조를 반영해 올해 성장률 전망을 연초 2.0%에서 3.3%로 크게 높였다.

그러나 승리의 팡파르를 울리기에는 이르다. 경기 호조의 상당 부분은 반도체 착시일 수 있다. 수출은 폭증했지만, 서비스업과 건설업 생산, 소매판매, 소비자심리는 부진했다. 반도체와 일부 대기업의 호황이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청년과 취약계층의 체감경기 개선으로 충분히 번지지 않고 있다.

반도체 호황이 얼마나 지속될지도 확실하지 않다. 미국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가 지속되면 수요는 강하겠지만, 고금리로 투자가 위축되거나 신규 설비 가동 때 수요가 둔화하면 오늘의 공급 부족은 내일의 과잉설비로 바뀔 수 있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외 여건도 거칠어지고 있다. 중동전쟁 격화로 국제유가가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고유가는 한국의 물가와 성장을 압박하고, 미국의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우려를 키워 국채금리를 밀어 올린다. 그 여파로 국내 금리와 환율, 주가가 흔들리고 가계와 기업의 자금조달 부담도 커진다. 여기에 중동발 공급망 교란과 미·중 무역·기술 갈등, 보호주의와 산업정책 경쟁, 세계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까지 겹친다.

더 어려운 것은 단기 경기 순환을 넘어선 세 가지 구조적 파도다. 첫째는 저출산과 고령화다. 한국은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가장 빠른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다. 노동력 감소와 복지 지출 증가는 잠재성장률과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압박한다.

둘째는 AI와 기술 전환이다. AI는 전기나 인터넷처럼 거의 모든 산업과 업무에 영향을 미칠 범용기술이지만, 그 잠재력이 곧바로 경제 전체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업무방식과 조직을 바꾸고 근로자는 새로운 기술을 익혀야 한다. 이익이 선도 기업과 일부 고숙련자에게만 집중된다면 성장률은 올라가도 불평등과 사회 갈등은 심해질 수 있다.

셋째는 세계경제의 분절이다. 개방적 세계경제질서는 약해지고 무역·기술·금융이 지정학적 진영을 따라 갈라지고 있다. 수출과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성장해 온 한국에는 큰 위협이다.
정부도 손 놓고 있지는 않다. 반도체 특별법을 마련하고 AI 데이터센터와 로봇 등을 육성하는 메가프로젝트를 추진하며,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해 전략산업에 대규모 자금을 공급하려 한다. 1970~1980년대에는 정부의 조정과 지원이 민간 투자, 인력 양성, 세계시장에서의 경쟁과 결합해 산업 고도화를 이끌었다.

그러나 과거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되풀이할 수는 없다. 당시에는 선진 기술을 도입하고 따라잡을 목표가 비교적 분명했지만, 지금은 승자가 정해지지 않은 기술의 최전선에서 경쟁해야 한다. AI와 반도체 산업에는 막대한 자금과 인력, 안정적인 전력과 용수, 신속한 인허가가 필요하며 투자에서 생산까지의 시차도 길다. 정부가 유망 기술과 기업을 섣불리 선별해 자금을 집중하면 중복 투자와 과잉설비, 정치적 배분의 위험이 커진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은 승자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있다. 우수한 대학과 인재, 기초연구, 안정적인 에너지와 디지털 인프라, 경쟁을 촉진하는 규제와 금융시장을 갖춰야 한다. 교육은 AI 활용 능력과 함께 사고·판단·소통·창의·협업 능력을 길러야 하며, 노동시장은 근로자의 이동과 재훈련을 지원해야 한다. 산업정책의 성패도 투자액이나 공장 수가 아니라 생산성 향상, 좋은 일자리와 민간 투자 확산으로 평가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향할 이타카는 성장률만 높은 곳이 아니다. 지속적인 성장, 물가와 금융의 안정, 공정한 기회와 분배가 함께하는 경제여야 한다. 성장이 멈추면 안정과 분배를 뒷받침할 자원이 줄고, 불안정과 불평등이 심해지면 개혁과 개방에 대한 사회적 지지도 약해진다. 성장과 안정, 포용이 함께 가야 경제 발전도 지속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이 긴 항해를 이끌 정치와 경제 리더십을 갖추고 있는가. 정치는 진영 대립 속에서 경제의 활력을 되살릴 구조개혁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경제정책도 거대한 청사진과 기금 규모는 제시하지만 우선순위와 책임은 불분명하다.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정부와 민간의 장기적인 정책 합의를 이끌 경제 리더십이 절실하다.

오디세우스는 폭풍을 견디는 회복력, 상황에 맞춰 길을 바꾸는 적응력,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판단력으로 마침내 이타카에 닿았다. 한국 경제도 반도체라는 순풍 하나에 귀향을 맡길 수 없다. 인구 변화에 적응하고, AI를 생산성과 포용의 동력으로 만들며, 분절되는 세계에서도 협력의 길을 넓혀야 한다. 앞으로도 예상하지 못한 파도와 암초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지식과 혁신, 건전한 제도와 신뢰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춘다면 한국 경제는 위험한 바다를 건너 우리가 꿈꾸는 곳에 도달할 수 있다. 오디세이는 이제 시작이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석좌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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