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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새벽배송 규제완화, 골목상권의 마지막 방어선까지 허물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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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9. 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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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철 전국중소유통상인협회 상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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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철 전국중소유통상인협회 상임회장
나는 30년 가까이 서울 망원시장에서 두부를 만들어 팔아왔다. 새벽부터 콩을 갈고 끓여 두부를 내놓고, 장을 보러 나온 주민들을 맞는 일이 내 일상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와 정치권이 추진하는 대형마트 새벽배송 규제완화를 보면 답답함을 넘어 우려가 크다. 쿠팡 등 온라인 플랫폼의 독주를 견제하겠다며 또 다른 거대 유통기업의 규제를 풀어주는 것이 과연 해법인가. 그 사이에서 가장 먼저 밀려나는 것은 전통시장과 동네 슈퍼, 골목의 작은 가게들이다. 소비자 편익이라는 이름으로 골목상권에 또 한 번 희생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혁신이 아니라 책임의 전가다.

이것은 단순히 배송시간을 몇 시간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전국 곳곳에 점포를 가진 대형마트가 매장을 도심형 물류거점으로 활용해 밤새 주문을 받고 아침까지 배송하게 되면 경쟁의 조건 자체가 달라진다. 막대한 자본과 구매력, 물류망, 광고력을 가진 기업이 두부와 반찬, 채소·과일, 정육·수산물처럼 전통시장과 골목가게가 신선함과 가까움으로 버텨온 영역까지 파고드는 것이다.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소상공인에게 남아 있던 마지막 방어선까지 허물어서는 안 된다.

대형마트 새벽배송을 허용해야 한다는 쪽에서는 소비자 편익과 유통산업 경쟁력 강화를 말한다. 그러나 소비자 편익은 '얼마나 빨리 문 앞에 오느냐'만으로 계산할 수 없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게에서 필요한 만큼 사고, 오늘 만든 음식을 바로 사고, 상인에게 물건을 묻고 고를 수 있는 것도 소비자의 선택권이다. 이런 가게들이 사라지고 몇몇 거대 플랫폼과 대형 유통기업만 남은 뒤에도 지금의 가격과 서비스가 유지될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경쟁자가 사라진 시장에서 결국 약해지는 것은 소비자의 선택권이고 그 비용도 소비자가 치르게 된다.

온라인 플랫폼의 독과점이 문제라면 그 문제를 바로잡는 정책이 먼저다. 예컨대 특정 거대사업자의 시장지배력을 견제하겠다면서, 오히려 다른 대기업의 활동 반경부터 넓히는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경쟁의 무게추를 다른 대기업 쪽으로 옮기는 데 불과하다. 플랫폼과 대형마트가 새벽배송 시장을 나눠 갖고, 그 틈에서 중소유통이 밀려난다면 그것을 어떻게 '균형 있는 유통산업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유통산업발전법의 취지도 다시 봐야 한다. 이 법은 대형 유통기업의 효율만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아니다. 유통산업의 효율적 진흥과 함께 균형 있는 발전과 건전한 상거래질서를 지향한다. 대형마트 영업규제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장벽이 아니라 대기업과 지역상권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판이다.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낡은 규제로 치부하는 것은 그동안의 사회적 합의와 지역상권의 현실을 너무 가볍게 보는 일이다.

나는 대기업과 직접 부딪혀 본 경험이 있다. 망원시장 인근 대형마트 문제 때 상인들과 함께 대응했고, 결국 기업형 슈퍼 철수와 일부 품목 판매 제한 등이 담긴 상생협약을 이끌어냈다. 그 과정에서 분명히 배웠다. 힘의 차이가 압도적인 시장에서 자율적인 상생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제도적 장치와 공정한 룰이 있어야 협상도 가능하다. 규제를 먼저 풀어놓고 나중에 대기업의 선의와 자율협약에 기대겠다는 발상은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다. 힘센 쪽의 양보를 기대해 놓고 그것을 상생정책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더군다나 더 큰 문제는 정책의 순서다. 지역별·품목별 피해가 얼마나 될지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은 채 규제완화부터 꺼내 들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 상생방안을 찾겠다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정책의 실험대에 골목상권을 올려놓을 수는 없다. 최소한 대형마트 새벽배송이 전통시장과 중소유통에 미칠 영향을 먼저 검증하고, 피해를 막을 실효성 있는 장치를 마련한 뒤 논의해야 한다. 동시에 전통시장과 중소유통의 공동물류와 온라인 전환을 지원하고, 거대 플랫폼의 불공정 문제도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

상인들이 변화를 거부한다고 몰아붙이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도 살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변해왔다. 망원시장도 온라인 장보기와 배달을 도입했고, 젊은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상품과 서비스, 시장의 모습을 계속 바꿨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다. 최소한 경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규제를 푸는 것이 언제나 혁신은 아니다. 약한 쪽의 마지막 방어선까지 없애는 것을 혁신이라고 포장해서도 안 된다. 정부와 국회가 정말 민생을 말한다면 대형마트의 편의와 경쟁력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정책으로 누가 먼저 밀려나고 누가 비용을 떠안는지부터 봐야 한다. 새벽배송 논의의 출발점은 규제완화가 아니라 공정한 경쟁질서여야 한다.

*본란의 기고는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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