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업체이자 우주사업 경쟁자…노조 "지배력 생긴 뒤 심사하면 늦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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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세종정부청사 공정위 앞. KAI 노조원들이 도로변을 따라 길게 늘어섰다. 검은색 조끼와 붉은색 머리띠를 착용한 조합원들의 손에는 '졸속 승인 규탄한다'는 문구가 적힌 피켓이 들려 있었다. 집회 선두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KAI-한화 기업결합 졸속 간이심사 승인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노조가 경남 사천을 떠나 세종까지 올라온 이유는 한화의 KAI 지분 취득에 대한 공정위의 기업결합 판단 때문이다. 공정위는 지난달 31일 한화의 KAI 지분 15.89% 취득을 승인했다. 현재 지분율만으로는 한화가 KAI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수준에 이르지 않았다고 보고 경쟁제한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노조의 시각은 달랐다. 이들이 문제 삼는 것은 단순한 '15.89%'라는 숫자가 아니다. 한화가 이미 KAI 지분 보유 목적을 '경영참여'로 변경했고 2대 주주에 오른 만큼, 향후 KAI 경영에 미칠 영향까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기업 스스로 '경영참여'를 선언했는데도 '현재 실질적인 지배력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공정위의 판단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공급하면서 경쟁한다…노조가 문제 삼은 '두 얼굴'
집회 현장에서 조합원들이 반복해서 강조한 것은 한화와 KAI의 특수한 사업관계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은 KAI가 생산하는 T-50, KF-21, LAH 등 주요 항공기 사업에 엔진과 항공전자장비, 각종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한화가 KAI의 주요 공급망 한 축을 담당하는 셈이다.
반면 일부 우주사업에서는 경쟁 관계가 형성돼 있다. 노조는 KAI와 한화시스템이 초소형위성체계 SAR 검증위성 사업에 각각 참여하는 등 향후 사업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라는 점을 문제 삼았다. 한쪽에서는 부품과 장비를 공급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사업을 놓고 경쟁하는 회사가 KAI의 2대 주주가 됐다.
노조는 한화가 향후 KAI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공급업체 선정의 독립성이 유지될 수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화 계열사의 제품이나 기술이 우선 채택될 가능성은 없는지, 다른 방산업체와 협력업체의 사업 기회가 제한될 가능성은 없는지 등을 공정위가 면밀하게 들여다봤어야 한다는 것이다.
◇ "나중에 심사하면 늦다"…쟁점 15.89% 그 이후
현장에서는 공정위가 제시했다는 향후 재심사 기준을 둘러싼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노조에 따르면 공정위는 한화가 향후 KAI 지분을 추가 취득해 최다출자자가 되거나, KAI 임원의 3분의 1 이상을 겸임하거나, 대표이사를 겸임하는 경우 다시 기업결합 신고·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바로 이 기준에 도달하기 전 단계가 문제라고 주장한다. 이미 '경영참여'를 선언한 2대 주주가 된 만큼, 이사회 참여나 추가 지분 취득 등을 통해 KAI의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지금부터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집회 현장 한쪽에 세워진 피켓에는 전투기 사진과 함께 'KAI는 국가 전략 자산'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날 조합원들은 공정위에 일반심사를 진행하지 않은 구체적인 판단 근거와 한화의 '경영참여' 선언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등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공정위의 기업결합 판단은 일단 내려졌지만, 한화의 15.89%가 단순한 재무적 지분인지, 향후 KAI 경영에 영향력을 미치는 출발점이 될지를 둘러싼 논란은 이제부터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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