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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환의 AI 에이전틱 이코노미㉑] 오징어게임식 문법에 갇힌 한국의 소버린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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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9. 0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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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에이전트 <2>
이영환 크레페 펀드 대표이사
2026년 6월 9일 앤스로픽이 일반용 최상위 모델 클로드 페이블 5를 공개했다. 사흘 뒤 미국 상무장관은 안보를 이유로 모든 외국인의 접근을 차단하라고 명령했다. 앤스로픽은 국적별로 사용자를 걸러낼 방법이 없어 전 세계 접근을 19일간 통째로 닫았다. AI가 전략 무기처럼 통제 대상이 된 것이다.

미국 안에서 곧바로 비판이 나왔다. 자국 최강 모델을 세워두는 사이 중국에 시간을 벌어준다는 것이었다. 우려는 빗나가지 않았다. 통제가 풀린 지 두 주 남짓 지난 7월 17일, 중국 문샷AI는 오픈웨이트 모델 '키미 K3'를 내놓으며 일부 벤치마크에서 페이블 5를 앞섰다고 주장했다. 사흘 뒤 알리바바가 '큐원 3.8 맥스'를, 열흘 뒤 딥시크가 'V4 플래시'를 공개했다. 모두 가중치를 열어 누구나 내려받아 고칠 수 있는 모델이었다. 키미 K3를 훈련 시킨 클러스터는 알리바바에서 빌린 그래픽 처리장치 2만 개였다. 규모가 아니라 구조가 만든 결과였다.

AI 기술에서 뒤처지는 것은 국가 주권을 잃을 수도 있는 문제가 됐다. '소버린 AI'라는 말이 자주 쓰이는 이유다. 소버린은 '주권의'라는 뜻이다. 정부는 100조 원 이상의 미래대응기금으로 AI 산업을 지원할 계획이다.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 자금이 정부의 바람대로 성공할 수 있을까 우려한다. 바로 정부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식의 문법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수백 명 중 승자는 단 하나, 패자는 모든 것을 박탈당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 규모의 격차다. 국가가 수년에 걸쳐 지원하는 GPU가 총 26만 개인데 메타 한 곳이 2025년에만 130만 개를 장착했다. 지원을 몽땅 받아도 규모로 경쟁할 상대가 안 된다. 둘째, 후발 주자다. 아득히 앞선 선두 기업들을 소수의 국내 기업이 개발 속도로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인가. 

실제로 2025년 초 정부는 15개 팀 공모로 시작해 8월 5개, 12월 3개로 압축했다. 2026년 초 1개 팀을 추가했지만 다시 탈락해 지금 3개 팀이 남았다.

◇ 정부 논리의 이면

정부의 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가 자원은 한정적이고, 최강 팀에 몰아주어야 규모의 경제가 생긴다. 성과 없는 팀은 걸러내야 자원이 효율적으로 쓰인다. 안전하고 검증된 방식이며, 정치적 명분도 갖춘다.

그러나 이 문법으로 흘러가는 순간 탈락한 12개 팀에서 나올 수 있었던 다양한 접근과 방법론이 원천 삭제된다. 이 삭제가 왜 치명적인지는 지난 회에서 살펴본 실험에서 나온다.

◇ 집단지성이 발현되지 못하는 문법

지난 회에서 우리는 값싼 여섯 개의 오픈소스 모델이 세 층으로 협력해 당대 최강 GPT-4 옴니를 앞지른 실험을 살펴보았다. 개별 모델 어느 것도 GPT-4 옴니를 이길 수 없었지만, 서로의 결과를 확인하고 다듬을 때 개별 모델이 낼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

집단지성이 발현될 결정적 조건은 다양성이다. 서로 다른 관점, 다른 접근, 다른 방법이 함께 있어야 한다. 집단지성의 문법은 다양한 참여자를 남긴다. 오징어게임의 문법은 승자를 제외한 모두를 탈락시켜 다양성을 원천 봉쇄한다. 한국의 소버린 AI 정책이 바로 이것이다.

◇ 중국의 역설적 실증

트럼프 대통령은 엔비디아 최신 GPU가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수출을 금지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최첨단 칩에 접근하기 어려워진 중국 기업들은 계산량을 쥐어짜기 위해 전문가 혼합(MoE) 구조를 택했다. 필요한 파라미터만 활성화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중국 최신 모델은 작업 하나에 2~33센트면 충분한 반면, 미국 최신 모델은 2.75달러가 든다.

전 구글 최고경영자 에릭 슈미트 밑에서 중국 AI를 연구해 온 셀리나 쉬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제약이 이런 접근을 강요했다. 그 결과 이들의 모델은 자본과 연산력 면에서 오히려 훨씬 더 효율적이 됐다."

주목할 점은 이 MoE 구조가 정확히 집단지성의 원리라는 것이다. 하나의 거대 모델을 통째로 돌리는 대신, 다수의 작은 전문가가 필요할 때 협력하는 구조다. 미국의 제약이 중국을 집단지성으로 밀어붙였고, 규모의 열세가 효율의 우위로 뒤집혔다. 도입에서 본 앤스로픽 사건이 정확히 이 역설이었다.

◇ 소버린 AI가 주권을 보장할 수 없는 이유

집단지성의 역설은 두 방향으로 작동한다. 외부에서 압박하면 상대에게서 집단지성이 창발한다. 미국이 중국에서 확인한 것이다. 내부에서 몰아주면 자기 집단지성이 멸종한다. 정부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결정적 아이러니가 있다. 소버린 AI란 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 AI를 뜻한다. 그런데 승자 하나만 남기는 문법으로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없고, 경쟁력이 없으면 결국 다른 나라 AI에 의존하게 된다. 주권을 지키려는 정책이 주권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규모로는 이미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하나다. 다양성을 살려 집단지성으로 겨루는 것이다.

이영환 (크레페 펀드 대표이사)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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