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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보던 소녀에서 제주 이야기꾼으로…고진숙 작가의 ‘귀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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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완 기자

승인 : 2026. 08. 1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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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부터 오름·밭담까지
섬의 역사와 사람을 기록
고진숙 작가 작품
고진숙 작가의 '이순신을 만들 사람들'과 '신비 섬 제주 유산'
제주 동부 용눈이오름 아래에서 자란 한 소녀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 스무 살 무렵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천문기상학을 공부했던 그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제주로 돌아왔다. 이제 그의 시선은 별과 우주를 넘어 제주의 자연과 역사, 그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향한다. 제주시 구좌읍 상도리 출신 역사문화작가 고진숙의 이야기다.

고 작가는 세화초등학교와 세화중학교, 신성여고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천문기상학을 전공했다. 우주와 자연현상을 공부한 그의 이력은 이후 과학과 역사를 함께 바라보는 독특한 작품세계의 바탕이 됐다.

그의 글은 역사 속 인물과 사건을 단순히 연대순으로 나열하지 않고, 과학적 탐구와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오늘을 사는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를 어린이와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풀어낸다.

데뷔작 '이순신을 만든 사람들'에서도 이러한 시선이 드러난다. 이순신 개인의 영웅담 보다 그를 성장시키고 조선을 지켜낸 주변 인물들의 역할을 함께 조명했다.

'하늘의 법칙을 찾아낸 조선의 과학자들'에서는 이순지·정초·이향·김석문·홍대용·지석영 등 우리 과학사의 주요 인물을 소개하며 천문기상학을 전공한 작가의 전문성이 역사적 서술과 결합했다.

'문익점과 정천익', '새로운 세상을 꿈꾼 조선의 실학자들', '목민심서―정약용, 나쁜 관리를 꾸짖다' 등을 통해서는 시대의 변화를 꿈꾼 인물들의 생각과 실천을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봤다.

고 작가가 제주를 본격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작품세계의 중심에는 제주4·3이 자리 잡았다.

'청소년을 위한 제주4·3'과 '제주4·3을 묻는 십대에게'는 어렵고 무거운 제주4·3의 역사를 청소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낸 책이다. 단순한 설명에 그치지 않고 국가폭력과 인권, 평화와 공동체의 문제를 오늘의 청소년에게 문는다.

2025년에는 제주중앙여자고등학교가 마련한 '제주4·3 문학 작가와의 대화'에 현기영·고시홍 작가와 함께 참여해 학생들과 만났다. 고 작가에게 제주4·3은 과거에 멈춰있는 비극이 아니다. 제대로 기억하고 질문하는 일이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지키는 출발점이라는 점을 청소년들에게 전한다.

고진숙 작가의 제주 연구와 집필 활동이 집약된 저서는 '신비 섬 제주 유산'이다. 500쪽이 넘는 이 책은 제주의 자연과 설화, 생활문화, 역사, 항쟁과 공동체의 기억을 1년 12개월, 52개의 주제로 풀어낸다.

제주의 습지와 오름, 돌과 바람, 지질과 용천수뿐만 아니라 제주인의 삶과 노동, 제주4·3 평화기행 등 관광 안내서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섬의 내면을 담았다. 각 주제와 관련된 현장을 지도와 함께 소개해 역사문화 교양서이자 제주 답사 안내서의 역할도 한다.

이 책은 2021년부터 제주 인터넷신문에 연재한 '제주옛썰'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최근에는 제주관광공사의 온라인 교육 플랫폼 'J-아카데미'에서 제주 여행 인플루언서 '제주미니'와 함께 제주의 자연환경과 역사·생활문화를 소개하는 교육 콘텐츠에도 출연해, 전문적인 제주 이야기를 누구나 쉽게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스무 살에 제주를 떠났던 고진숙 작가는 현재 고향인 제주시 구좌읍 상도리 집을 중심으로 집필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용눈이오름과 다랑쉬오름, 밭담과 바다, 마을 사람들이 들려주는 기억은 그에게 단순한 고향 풍경이 아니라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키는 살아 있는 창작의 원천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도전을 시작했다. 최근 제주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해 인생의 '늦깎이 박사' 길에 들어섰다. 이미 여러 권의 저서를 펴내고 제주를 대표하는 이야기꾼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제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를 더욱 깊고 체계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다시 학생의 길을 택했다.

고 작가는 제주도교육청과 일선 학교, 문화기관을 비롯해 제주 곳곳의 강연 현장을 찾아 도민들과 만나고 있다. 제주4·3과 역사 인물, 자연유산, 제주인의 정체성을 쉽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내며, 도민들이 자신이 살아가는 마을과 가족의 역사에 관심을 갖도록 이끈다.

고진숙 작가는 오는 19일부터 10월 7일까지 제주학연구센터가 마련한 제주도제 80주년 특별강좌 '제주를 만든 사람들, 제주를 바꾼 시간들'에 참여한다.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총 8차례 진행되는 이번 강좌에서, 고 작가는 오는 26일 두 번째 강좌 강사로 나선다. 이날 '제주사름 어떵살아시코, 이젠 임금님 삶이라'를 주제로, 제주 사람들이 척박한 자연환경과 격동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살아왔고 오늘날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역사문화작가의 시선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이어 9월 4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는 제주콘텐츠진흥원 제주콘텐츠코리아랩 머들코지에서 고 작가와 함께하는 '사람과 콘텐츠를 잇는 특별한 대화'가 열린다.

'제주만의 고유한 문화를 찾아서, 문화를 콘텐츠로'를 주제로 마련된 이번 행사는 인문학과 교양 토크를 통해 창의적 사고를 높이기 위한 자리다. 고 작가는 제주 신화와 설화, 해녀문화, 밭담과 오름, 제주어 등 제주만이 가진 문화자원을 책·영상·관광·교육·캐릭터 등 현대적인 콘텐츠로 발전시키는 방안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이다. 기록되지 않은 제주 이야기를 찾아 글로 남기고, 이를 다시 다양한 콘텐츠로 확장해 온 그의 행보와 맞닿아 있는 무대다.

"제주는 지도 위의 작은 점이 아니다. 자연과 인간, 저항과 평화의 역사가 겹겹이 쌓여 있는 거대한 이야기다."

고 작가의 글에는 고향을 향한 애정과 함께 제주 역사를 바라보는 치열한 문제의식이 흐른다. 제주를 아름다운 관광지로만 바라보지 않고 그 땅에서 삶을 일궈온 사람들의 고단함과 공동체의 지혜까지 함께 기록한다.

별을 바라보던 과학도에서 제주를 기록하는 역사문화작가로, 그리고 다시 연구자의 길로. 고진숙 작가가 제주에서 찾아낼 다음 이야기가 주목된다.
부두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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