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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브렉시트의 결과로 이어진 정치, 경제적 혼란과 사회적 불편함은 '브리그렛(Bregret)'이란 단어로 압축된다. '브렉시트를 후회한다(Brexit+regret)'는 신조어가 영국 미디어에 등장한 건 2022년 후반부터다. 2020년 1월 EU 공식 탈퇴 후 무역 및 일자리 감소, 물가 상승, 경기 침체, 청년 탈출 등 부작용이 이어지자 이를 후회하면서 EU 재가입, 재협상 여론이 커졌다.
지난달 영국 일간 가디언의 탈퇴 10주년 여론조사에서 56%가 재가입에 찬성했다. 특히 당시 투표권이 없었던 18~28세의 60%가 재가입 지지를 답했으며, EU 밖 잔류를 원하는 비율은 9%에 불과했다. 이 세대의 16%만이 탈퇴를 성공으로 평가했다.
경제지표는 더 차갑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0년간 68% 감소했다고 추산했다. 투자는 12~13%, 고용은 34%, 생산성은 34% 각각 떨어졌다. 파운드화 가치도 떨어졌으며, 소비자물가는 브렉시트 직접 영향만으로 2.9% 상승한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 브렉시트 탈퇴 진영의 핵심 구호는 '통제권을 되찾자(Take Back Control)'였다. 통화와 주권 회복, 국경 통제라는 파괴력 있는 정치적 명분과 감성이 배어 있었다. 게다가 대중의 눈길을 강력히 사로잡은 것은 사실과 다른 수치였다. 탈퇴 캠페인 버스에 붉은 글씨로 적힌 '우리는 EU에 매주 3억5000만 파운드(약 7100억원)를 보낸다. 이 돈으로 국가보건서비스(NHS)를 살리자'는 주장이었다. 브렉시트의 상징물인 이 버스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탈퇴를 부추겼다.
통계청 등 정부 기관들과 팩트 체크 기관들은 이 수치가 환급금을 반영하지 않은 총액이며, 기여금은 주당 약 2억5000만 파운드라고 공식 발표했다. 심지어 EU가 영국 농업 및 낙후 지역 등에 다시 지원하는 보조금을 빼면 최종 순기여금은 1억6000만 파운드로 줄어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캠페인 측은 이 수치를 고수했고, 브렉시트는 통과된다. 2년 뒤까지 이 가짜 뉴스를 사실로 믿는 유권자는 42%(2018년 조사)였다.
옥스퍼드 사전은 2016년 말 당시 올해의 단어로 '포스트 트루스(post-truth)'를 선정했다. 객관적 사실보다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는 선동이 여론을 주도하는 현상을 가장 완벽하게 설명하는 단어라고 밝혔다. 이 단어의 사용 빈도는 2015년 대비 20배 급증했다. 옥스퍼드 사전은 그 이유로 브렉시트 캠페인과 미국 대선의 도널드 트럼프 선거 운동을 꼽았다. 가짜 뉴스가 세계적인 두 이벤트에서 가장 창궐했다는 의미다. 가짜 뉴스 용어가 지구촌의 일상 언어로 자리 잡은 계기가 됐다.
지난 2019년 보수당 강경파를 중심으로 한 브렉시트 세력은 다시 한번 감성적 구호를 전면에 내세워 총선을 치른다. '브렉시트를 완수하자(Get Brexit Done)'. 이 핵심 공약으로 보리스 존슨은 마거릿 대처(1987년) 이후 보수당 최대 압승을 이끌며 단독 정부를 구성한다.
브렉시트 지지 세력은 고연령층, 저소득층, 저학력층이었다. 위대한 고립(유럽 대륙과 구분 짓는 영국의 전통적인 고립주의) 향수와 소득 감소, 이민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및 불안, 이를 교묘히 파고든 정치 선동의 선명성이 브렉시트를 성공시키고 정치권력을 획득한 결정적 요소다.
블룸버그통신의 창업자 마이클 블룸버그는 지난주 칼럼에서 "브렉시트라는 사회적 실험이 완전히 실패했다"며 기대했던 경제적 이익은 전혀 없었고, 10년간 GDP 감소, 생산성 4% 저하, 무역 및 노동시장의 타격 등 악재만 현실이 됐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각종 협정 체결에 매달리다 국정 마비를 겪었고, 일자리 빼앗긴 영국 청년들의 80%가 고통 해소를 위해 재가입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브렉시트는 영국엔 국력 쇠퇴를, EU엔 안보 약화라는 모두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친 패착이라고 규정했다.
정책 결정이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어느 정책이든 수혜자와 피해자가 공존하고, 시대 상황에 따라 그 결정의 맞고 틀림이 뒤바뀌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과도하게 정치적 목적이 앞선 정책에는 반드시 과도한 후유증이 따르기 마련이다. 한국에서는 미래에 영향을 주는 굵직한 국가 정책들이 발표됐거나 진행 중이다. 다 결정해야 할 것들이다. 이 일들이 책임 있게 다뤄졌는지, 선동적으로 다뤄졌는지 나중에는 다 드러나게 된다. 정치적 결정의 무게는 표를 얻는 순간이 아니라 청구서가 도착하는 때 비로소 드러난다. 브렉시트는 10년에 걸쳐 그 사실을 증명한다.
김명호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