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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서의 도쿄 시선] 테이트 모던 박물관에서 본 영국 사회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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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5. 18. 17:56

개인의 상처를 숨기기보다는
함께 마주해야 할 우리 모두의 현실로 대해
성숙한 사회의 척도는
"불편한 진실을 공론장에 올릴 수 있는지"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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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서 일본 슈메이대학교 교수
필자가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보낸 몇 시간은 단순한 미술관 관람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날 필자가 본 것은 작품 몇 점이 아니라, 한 사회가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감당하려 하는지에 관한 태도였다. 지인의 도움으로 특별전에 들어갔고, 전날 작가 이름만 확인한 채 가볍게 발을 들인 자리였다.

그런데 첫 전시부터 하루의 무게가 완전히 달라졌다.트레이시 에민 전시는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전시장 안에는 한 여성의 삶에서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거침없이 선명하게 걸려 있었다. 무너진 가정, 성폭력의 기억, 낙태와 유산, 우울증, 자살 시도, 병과 수술의 흔적까지, 다시 말해 감추고 싶었을 시간들이 작품이 되어 관람객 앞에 놓여 있었다. 어떤 방에서는 시선을 오래 둘 수 없었고, 어떤 장면 앞에서는 내가 지금 미술관에 있는 것인지, 한 사람의 상처를 너무 가까이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순간적으로 감각이 흔들렸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작품의 수위만이 아니었다. 이런 전시가 테이트 모던 같은 영국 문화의 중심 공간에서 특별전으로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찾아온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상처를 숨겨야 할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봐야 할 현실로 공적인 자리에 올려놓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영국이 여성 폭력이나 차별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라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오히려 이런 전시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그만큼 이 사회 역시 오래된 상처와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것을 침묵 속에 묻어두는 대신 말하고 드러내는 쪽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두 번째로 본 피카소 전시는 그래서 이전과 전혀 다른 그림으로 읽혔다. 예전 같으면 거장의 형식과 미술사적 의미부터 생각했겠지만, 그날은 여성의 몸이 놓인 자리와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누드와 관계의 흔적이 더 이상 중립적인 미학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앞선 전시가 내 눈의 방향을 바꿔놓은 것이다.

무엇을 먼저 보게 만드는가--바로 그것이 문화 공간이 지닌 힘일지 모른다.

전날 런던 시내에서 본 국제 여성의 날 행진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폭력을 멈추라"는 문구를 든 사람들이 길게 이어졌고, 그 외침은 특정 개인의 경험을 넘어 훨씬 넓은 현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분쟁 지역의 여성 폭력, 일상의 가정폭력, 사회 안에 뿌리내린 차별과 침묵의 구조가 한 줄로 연결돼 있었다. 거리의 행진과 미술관의 전시는 전혀 다른 장면처럼 보이지만, 실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사회는 피해를 어디까지 공적인 언어로 끌어올릴 수 있는가. 고통을 개인의 문제로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함께 마주해야 할 현실로 받아들일 것인가. 여기서 한국과 일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사회에도 말하지 못한 경험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피해를 드러내는 일은 여전히 큰 대가를 요구한다. 얼굴이 알려질까 두렵고, 말한 사람이 오히려 더 많은 설명을 요구받으며, 공동체의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침묵은 가장 안전한 선택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테이트 모던에서 받은 충격은 단순히 전시의 강도 때문만이 아니었다. 이 사회는 적어도 불편한 진실을 공적인 공간 한복판에 올려놓고 함께 바라보려는 단계까지는 와 있구나--그 생각이 오래 남았다.

그날 테이트 모던에서 본 영국 사회의 용기는 완전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상처가 없어서가 아니라, 상처를 감추는 것만으로는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생긴 용기처럼 보였다.

성숙한 사회란 불편한 이야기가 없는 사회가 아니라, 불편한 이야기를 끝내 공론장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용기 있는 사회일 것이다. 런던의 그 하루는 그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전시장을 나선 뒤에도 질문은 오래 남았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말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 그리고 "아직 말하지 못한 사람들의 고통을, 과연 사회의 언어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송원서 일본 슈메이대학교 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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