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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일담] 늦어지는 ESG 공시 로드맵…금융위, ‘기업 수용성’에 갇히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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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아 기자

승인 : 2026. 05. 1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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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성(ESG) 공시 로드맵을 둘러싼 금융위원회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당초 4월 말 확정이 예상됐으나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관계 부처 협의가 지연 이유로 거론되지만, 국회 정무위원회 안팎에서는 금융위가 내놓은 초안 자체가 지나치게 완화됐던 탓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큽니다.

금융위가 지난 2월 공개한 초안은 2028년부터 연결자산총액 3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대상으로 지속가능성 공시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협력사와 물류·제품 사용 과정 등 공급망 배출을 포함하는 스코프3 공시는 3년 유예하는 방안도 포함됐습니다. 일정 기간 거래소 공시로 운영한 뒤 법정공시 전환을 검토하는 방식도 제시됐습니다.

금융위는 초안 발표 당시 2021년 제시했던 기준보다 시행 시기는 늦어지고, 적용 대상은 줄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당시 금융위는 2025년부터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대상으로 공시를 의무화하고, 2030년부터 전체 코스피 상장사로 확대하는 일정을 제시했습니다.

금융위는 국제 논의 속도와 국내외 경제 상황 변화를 반영한 결과라는 입장입니다. 미국 등 주요국의 공시 의무화 지연과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 기준 확정 시점, 기업 준비기간 등을 고려했다는 설명입니다. 지속가능성 공시가 현 정부 국정과제인 만큼 제도화를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입장도 밝힌 바 있습니다.

기업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지속가능성 공시는 산정 기준과 내부 관리 체계 구축이 선행돼야 하는 영역입니다. 연결 기준 공시가 도입되면 종속기업까지 범위에 포함될 수 있고, 스코프3 공시는 협력사와 해외 공급망 데이터까지 필요합니다. 의무화 대상을 급격히 넓히면 공시 품질을 높이기보다 형식적 대응과 시장 혼란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다만 기업 부담이 제도 완화의 주된 근거가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지속가능성 공시는 기업을 압박하기 위한 절차가 아니라 투자자에게 비교 가능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자본시장 정보 인프라이기도 합니다. 이미 자산 2조원 이상 기업 상당수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공시하거나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30조원 이상 기준의 타당성을 두고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연금이 공시 대상 확대와 법정공시 조기 전환 필요성을 제기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장기 투자자인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기업의 기후 리스크와 전환 전략을 객관적이고 비교 가능한 정보로 확보해야 합니다. 공시가 늦어지거나 대상이 지나치게 좁아지면 투자자는 부정확하거나 불완전한 정보에 의존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관계자들도 기업의 준비 부담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기업 수용성이 공시 대상 축소와 시행 지연의 주된 논리로 굳어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이어집니다. ESG 공시가 자본시장 정보로 기능하려면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일정과 투자자가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이 함께 제시돼야 합니다. 금융위가 최종안에서 두 기준의 접점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담아낼지 지켜볼 대목입니다.
박서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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