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는 이제 관광지 넘어 삶이 이어지는 문화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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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호항과 주변 마을 옛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 있는 논골담길은 이제 동해를 대표하는 관광 자산이 됐다. 마침 우리 사회 전반을 휩쓴 '레트로 감성'과 맞아 떨어져 논골담길은 이제 동해를 들르는 MZ세대는 물론 모든 세대의 명소가 됐다.
지난 7일 동해시 묵호 해랑전망대 앞 한 카페 2층에 자리한 작은 공간을 찾았다. 창밖으로는 묵호항과 푸른 동해 바다가 펼쳐지고, 뒤편으로는 논골담길과 등대, 오래된 골목의 시간이 이어진다. 이곳에서 최근 동해시문화원 사무국장을 퇴직한 조연섭 씨가 새로운 문화 실험을 시작했다.
◇"묵호라는 장소가 가진 기억을 다시 불러내고 싶었다."
방송국 아나운서와 라디오 DJ를 거쳐 동해문화원에서 지역문화 발굴과 논골담길 재생 현장을 이끌어온 조 전 국장은 이곳에 사람 냄새나는 문화를 접목하고 싶었다. 그래서 만든 공간이 '논골담길 커먼즈'. 그는 "이곳은 단순한 사무실이 아니라 사람과 이야기, 지역과 미래가 다시 연결되는 작은 문화 공론장"이라고 소개했다.
조 전 국장은 먼저 '커먼즈(COMMONS)'라는 단어를 사용한 배경으로 "커먼즈는 누구 한 사람의 소유가 아니라 함께 쓰고, 함께 돌보며 함께 의미를 만들어가는 공유의 공간이다. 논골담길 커먼즈도 개인 사무실이 아니라 지역 작가와 주민, 예술가, 여행자, 청년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생각을 나누는 묵호의 사랑방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논골담길이 가장 중요한 문화적 기억이라고 했다. 당시 마을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지역문화는 건물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살아온 길과 기억, 사라질 뻔한 이야기를 다시 들어주는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관광지가 아니라 삶의 플랫폼 만들겠다."
그는 논골담길이 이젠 관광객과 시민에게 무슨 메시지를 던져야 할까를 늘 생각했다고 한다.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 바로 '논골담길 커먼즈'다.
논골담길 커먼즈의 정체성을 "도시를 사유하고 사람을 연결하며 24시간 문화순환 구조를 연구하는 공간이자, 묵호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삶이 이어지는 문화 플랫폼으로 가꾸고 싶다"고 설명했다.
"낮에는 카페와 골목 탐방, 저녁에는 북토크와 음악회, 밤에는 글쓰기와 대화가 이어지는 도시를 상상합니다. 묵호가 단순히 스쳐 가는 관광지가 아니라 24시간 문화적으로 호흡하는 도시가 되길 바란다."
이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논골담길 커먼즈에서는 앞으로 '묵호살롱' 형태의 문화 야학과 로컬 콘텐츠 토론, 인공지능과 문화예술을 연결한 프로그램, 디지털 아카이브 연구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또 소형 음악회와 DJ 음악방송, 어쿠스틱 공연, 출판기념회, 작가 살롱도 계획하고 있다.
그는 "묵호는 이상하게 글이 잘 써지는 도시"라며 "바다와 골목, 노동의 기억과 떠난 사람, 돌아온 사람의 이야기가 함께 있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문화는 행사보다 기록과 관계가 중요."
오랜 시간 문화기획 현장을 지켜본 그는 지역문화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행사는 끝나면 사라지고 사람도 흩어진다. 기록하지 않으면 지역의 이야기는 금방 잊히죠. 앞으로 지역문화는 행사 중심에서 기록 중심으로, 관광 중심에서 관계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는 논골담길 커먼즈를 통해 묵호의 이야기를 글과 사진, 영상, 팟캐스트, 전시와 공연으로 기록해 나가겠다는 구상도 밝혔다."논골담길과 묵호항, 어달과 대진, 덕장문화와 막걸리, 해변 맨발걷기까지 아직 꺼내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 그걸 다음 세대에게 남겨줄 것이다."
◇"돈보다 사람을 선택한 공간."
논골담길 커먼즈가 탄생하게 된 배경도 인상적이다.조 전 국장은 최미숙 카페 대표와의 오랜 인연을 이야기했다."평소 논골담길 가까이에 작은 문화 사무실 하나를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문화원 정년 문제와 겹치며 절실해졌다. 그러던 중 청주 관아골 투어에서 10년 만에 최 대표를 우연히 다시 만났다. 사정을 들은 최 대표는 "우리 사무실 쓰세요"라고 했고, 이후 가족 회의를 거쳐 공간을 내주기로 했다.
조 전 국장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다가 "최 대표 가족이 '돈보다 사람을 선택하자'고 했다. 그렇게 남은 계약기간 7년을 무상으로 쓰게 됐다. 계산이 아니라 사람의 인연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래서 더 묵호답다고 생각한다."
어느새 창밖으로 묵호의 저녁 바다는 붉게 물들고 있다. 조 전 국장이 시작한 새로운 문화활동이 오래된 항구 도시 묵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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