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사남의 성공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밀려 투자 위축과 제작 감소로 허덕이던 한국 영화계에 모처럼 활기를 불어넣었다. 자본이 영화로 다시 유입될 가능성을 열었고 존립을 위협받던 영화관의 입지도 어느 정도 다시 다져 놓았다.
전찬일은 '한 편의 성공이 아닌 다양한 성공'을 말했다. 얘기는 이랬다. 2024년을 보자. 한 해에만 약 600편의 한국 영화가 만들어졌고 이 가운데 흔히 말하는 상업영화가 30~50편, 그럼 나머지는 어디로 갔을까. 멀티플렉스의 본래 목적은 다양한 영화를 상영해 관객의 선택 폭을 넓히는 데 있다. 한국 영화 시장의 구조적 현실 때문에 일부 영화에 스크린과 관객이 집중되며 오히려 반대의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많은 작품들이 관객에게 충분히 노출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빠르게 밀려나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작품 경쟁력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지가 제한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게 자연스러워지고 있다는 것이 더 문제다. 왕사남이 누적관객 1000만명을 돌파하는 데 걸린 기간은 불과 한달. 일본에서 영화 '국보'가 1000만을 넘기기까지는 6개월이 걸렸다.
스크린 수를 일정 부분 조율하거나 다양한 영화에 최소한의 상영 기회를 보장하는 해외 사례들이 적지 않다. 한국은 이것이 자율에 맡겨져 있다. 이번 기회에 제도적 논의를 통해 다양한 영화들에 일정 수준의 상영 기회를 보장하고 이에 따른 손실을 보전하는 정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전찬일의 마지막 얘기가 여운을 남긴다. "저예산·독립 영화 창작자들은 영화를 만드는 게 존재 이유인 사람들이다. 영화를 만들지 않으면 존재할 이유가 없으니 만드는 거다. 그런데 이런 영화들이 관객을 못 만난다. 이들이 한국 영화의 미래들인데…" 23차례나 칸영화제에 다녀온 전찬일은 "밖에서 보면 한국 영화가 얼마나 다양하고 활력넘치는 지 아느냐"고 되물었다. 글로벌 영화제와 플랫폼에서 새로운 시도와 개성으로 여전히 주목 받고 있는 한국 영화라는 말도 덧붙였다.
지난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영화단체연대회의 주도로 '2026년 한국 영화 산업의 위기와 대책' 기자 회견이 있었다. 스크린 집중 제한, 대규모 펀드 조성을 위한 정부 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성명서에는 581명의 영화인들이 동참했다. 관객이 몰리는 영화에 더 많은 스크린이 배정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영화를 비롯한 문화 산업은 상품 시장과 다르게 다양성이라는 공공적 가치가 고려되어야 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특정 흥행작에 자본과 자원이 집중되는 구조는 장기적으로 산업의 체력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왕사남의 흥행이 다양성이 살아있는 영화 생태계를 조성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