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식어보다 신뢰를 택한 배우, “믿고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
지난 10일부터 안똔체홉극장에서 공연되는 '벚꽃동산'은 그런 권민중의 현재를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과거를 증명하기보다 지금 맡은 인물을 어떻게 살아내는가에 집중하는 배우. 그의 말과 태도는 오랜 시간을 견딘 배우가 도달한 한 가지 결을 드러낸다. 과거를 설명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먼저 말하는 사람.
권민중에게 긴 시간은 특별한 의미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20대가 50대가 됐다는 것, 그 정도"라고 말하며 자신의 시간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과거를 미화하지도, 과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 시간을 통과해 왔다는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일 뿐이다. 대신 변하지 않은 한 가지를 말한다. 작품과 인물에 대한 태도다. 그는 지금도 "그냥 늘 그랬듯 작품에, 내 캐릭터에 열심히 가담하는 거죠"라고 말한다. 새로운 작품 앞에서 다시 처음처럼 서는 태도, 그 태도가 결국 지금의 시간을 만들었다.
|
권민중의 출발은 영화였지만, 그의 시선은 처음부터 무대를 향해 있었다. 청주대학교 무용과를 졸업하며 뮤지컬 배우를 꿈꾸던 그는 미스코리아 당선 이후 매니지먼트 제의를 받으며 영화 '투캅스3'로 데뷔했다. 그는 이 과정을 떠올리며 "연기하다 보면 언젠가 무대 공연을 할 날이 오겠지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이후 2003년 전훈 연출의 창작뮤지컬 '나에게 사랑은 없다'를 시작으로 그는 꾸준히 연극 무대에 올랐다. 특정 시기에 몰려 있는 활동이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이어진 흐름이었다. 약 3년에 한 번꼴로 연극을 해왔다는 그의 말은, 무대가 그의 커리어에서 일시적인 선택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축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번 '벚꽃동산'은 전훈 연출과의 세 번째 작업이다. 한 연출과 이어온 시간 또한 그의 무대 경험을 설명하는 중요한 맥락이 된다.
그에게 카메라 연기와 연극은 전혀 다른 리듬을 요구한다. 그는 "카메라 연기는 시간 흐름대로 촬영하는 게 아니라서 잘 계산된 연기와 순간 집중력, 순발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분절된 장면들을 이어 붙이며 감정을 유지해야 하는 작업이다. 반면 연극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연습 기간 동안 극 안에서 캐릭터와 관계성에 최대한 근접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같아요." 이어 그는 말한다. "그 안에서 생겨나는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호흡하는 것 자체가 너무 큰 기쁨인 것 같아요." 연극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 속에서 형성되는 감각이다.
무대 위에서의 경험은 더욱 직접적이다. 그는 공연 이후의 상태를 설명하며 잠시 말을 고르다가 이렇게 말한다. "공연을 올려놓고 나서도 매번 무대에서 새롭게 완성되는 느낌이 있어요.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냥 극 안에 사는 동안 너무 행복해요." 연극을 설명하는 대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감각을 말하는 방식이다. 반복되는 공연 속에서도 매번 다른 순간이 만들어진다. 그 안에서 배우는 계속 살아간다.
|
그는 연기를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연극이 왜 좋냐고 물으면 그냥 다 좋다"고 말한다. 이어 "연기에 도움이 안 되는 스트레스 같은 건 배제하려고 한다"고 덧붙인다. 그의 방식은 분명하다. "그냥 끊임없이 연습하고, 배우들과 함께 호흡하고, 공연이 시작해서 끝나는 순간까지 그 인물로 살아내는 거예요." 설명보다 실천이 먼저인 태도다.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방식으로 그는 연기를 이어간다.
이번 '벚꽃동산'은 그에게 세 번째 체홉 작업이다. 그는 연출로부터 책을 받아든 순간을 떠올리며 "어려운데?"라고 답했던 기억을 전한다. 짧은 대화로 시작된 작업은 리딩을 거치며 방향을 잡았다. 그는 "내가 꼭 해야겠다기보다는, 꼭 잘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선택의 문제라기보다, 맡게 된 역할을 어떻게 완성할 것인가에 가까운 감정이다.
라네프스카야는 처음에는 쉽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는 "그녀 인생의 많은 이야기가 고백이나 고해 같은 독백으로 무대에 놓이기 때문에 그걸 잘 전달해야 한다는 점이 어렵게 느껴졌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연습이 이어지며 그는 점점 인물에 가까워졌다. "지금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이어 "연민할 수도 있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게 그녀의 선택이고 삶의 방식"이라고 덧붙인다. 인물을 판단하기보다 받아들이는 태도, 그 안에서 연기는 더 깊어진다.
그가 꼽은 마지막 장면의 대사는 이 인물의 정서를 압축한다. "사랑하는 나의 집, 아름다운 내 벚꽃동산, 내 삶이, 내 청춘이, 내 행복이, 잘 있어, 안녕히." 그는 이 장면에 대해 "그 끝이 희망일지 절망일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인생은 계속된다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사라지는 것과 남아 있는 것 사이에서 이어지는 시간, 체홉의 세계가 그 안에 담겨 있다.
이번 작품은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레퍼토리 안에 들어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는 "부담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분명한 목표를 밝힌다. "2026년 권민중의 라네프스카야가 저만의 색으로 잘 남았으면 좋겠다." 같은 텍스트 안에서 자신의 결을 만들어내는 일, 그것이 지금 그가 서 있는 자리다.
|
그의 원칙은 단순하다. "시간 약속은 꼭 지키고, 항상 미리 가서 준비하는 편"이라고 말한다. 연극 연습 때도 일찍 도착해 준비하는 것이 습관이다. 이 태도는 화려한 수식어보다 오래 남는다.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이 기억하는 배우는 결국 이런 기준으로 남기 때문이다.
권민중은 자신에게 붙는 수식어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연기를 믿고 볼 수 있는 배우가 된다면 그게 최고의 찬사죠." 그리고 덧붙인다.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이 다시 같이 하고 싶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긴 시간을 지나온 배우가 끝내 남기고 싶은 것은 결국 신뢰다. 지금 무대 위에서 인물로 살아가고 있는 배우 권민중은, 그 신뢰를 향해 또 한 번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