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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비극… 가격통제 정책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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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4. 06. 17:34

김상규 전조달청장
김상규 (전 조달청장)
미-이란 전쟁의 여파로 석유가 최고가격제를 시행하고 있다. 환율이 널뛰자 서학개미 투자도 규제하는 등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통제는 시장의 바로미터인 가격을 묶어둠으로써 정상적인 시장이 작동하지 못하게 한다. 암시장을 키우고 자원배분을 왜곡한다. 역사는 가격통제의 폐해를 기억하고 있다. 고대 로마에도 그런 일이 발생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284~305)는 멸망 직전의 로마제국을 다시 일으켜 세운 중흥의 황제였다. 칼리큘라 황제 사후(217년) 그의 즉위까지 67년간 26명의 황제가 교체되었다. 평균 재임기간이 3년도 채 되지 않았고, 대부분 전쟁이나 잦은 반란으로 죽었다. 이런 험악한 상황에서 그는 페르시아 등 외부의 적을 격퇴하고 내부 혼란을 수습함으로써 질서와 통치권을 확립했다. 황제 혼자서 이 모든 업무를 감당하기 힘들었기에, 제국을 동과 서로 나누어 4명의 황제가 협치해서 다스리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당연히 군대와 공무원 수도 늘어났다. 1세기에 25만명이던 군대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60만명으로, 중앙정부의 관료는 1000명에서 3만5000명으로 늘어났다고 추정된다. 강력한 군대와 행정력으로 질서를 잡은 것이다.

하지만 군대와 공무원의 증가는 막대한 재정 소요를 일으켰고 세금만으로 감당할 수 없었다. 전임 황제들의 예를 따라 그는 은화에 구리 함유량을 늘려 동전 발행을 확대했다. 최근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양적완화처럼 말이다. 1세기 초 95%이던 은의 순도가 4세기 초인 디오클레티아누스 때는 1%로 떨어졌다. 특히 지출이 폭발하던 3세기 말에 급락했다. 당연히 똑같은 물건과 서비스를 구입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동전을 지불해야 했다. 요즘 말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은화로 봉급을 받는 병사들의 생활이 점점 어려워졌고, 그들의 불만이 커져서 이대로 두면 어떤 사태가 일어날지 몰랐다. AD 301년 드디어 황제는 병사들의 실질 봉급의 보장을 위해 곡물, 비단, 노동자·교사 임금 등 1400여 개 물품과 용역에 최고가격을 매겼다. 가격통제 정책 추진 배경은 통치의 성공이 가져온 과도한 자신감으로 보인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힘으로 내우외환을 종식시켰으니 똑같은 방식으로 인플레이션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더욱이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통화팽창이나 과다한 정부지출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로마의 도덕적 타락, 욕심 많은 상인들과 투기꾼 때문이라 생각했다. 칙령에서 매점·매석 하는 자들을 내부의 적, 또는 반란자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칙령을 어겨 통제가격보다 비싸게 팔거나 비싸게 구입하는 사람, 매점·매석 하는 사람을 사형에 처한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가격 칙령은 곧 힘을 잃었다. 상인들이 더 이상 시장에 물건을 내놓지 않자, 암시장에서 대부분 거래가 이루어지고 물물교환도 늘어났다. 팔면 손해가 되는 일을 누가 하겠는가. 암시장 가격은 위험수당이 붙어 더욱 치솟았고, 시장이 사라지며 정부의 세금 징수마저 힘들어졌다. 제국의 장점이던 장거리 교역망이 무너지는 가운데, 칙령에 반발하는 소요와 탄압으로 제국은 피로 물들어 갔다. 시민들의 분노가 끓어오르자, 정부는 희생양을 찾아야 했다. AD 303년 기독교 대탄압(the great persecution)이 시작되었다.

교회는 초인플레이션 아래 신도들을 위해 물품을 일괄 구매하고 저장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당국은 이를 매점·매석과 칙령의 위반으로 보았다. 기독교인들의 전통 종교행사 참여 거부를 탄압의 명분으로 삼았다. 교회 재산 압류로 국고를 채우는 부수 효과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희생양 효과는 오래 가지 않았다. 기독교인들에 대해 냉담하거나 적대적이던 로마 시민들은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순교자들을 보며, 오히려 경외하고 동정하게 되었다. 역설적으로 탄압은 기독교 확산의 촉매 역할을 했다. 황제는 가격통제도, 기독교 탄압도 실패로 돌아가자 병을 얻었다(304년). 마음의 중압감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수개월간 황제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부황제 갈레니우스가 퇴위의 압력을 가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황제 자리에서 내려왔다는 주장도 있지만, 아마도 자신의 의사에 반해 물러났을 것이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워야 한다. 로마 시대에도 가격통제가 시장 기능을 마비시키고 암시장과 자원배분 왜곡 등 큰 부작용을 불러왔다. 최근 도입된 석유 최고가격제도 마찬가지다. 미-이란 전쟁에 따른 상황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조속히 철회하는 게 좋을 것이다. 국민도 유가 인상의 불가피성을 잘 알고 있으므로, 가격 인상을 절약과 대중교통 이용 등으로 견뎌내도록 마음을 모아야 한다. 정부는 수급이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역량을 집중했으면 한다.

김상규 (전 조달청장)

김상규 전 조달청장은 …
연세대 법대, 서울대 행정대학원, 영국 버밍엄대 MBA, 28회 행정고시 합격, 기획재정부 경제예산심의관을 거쳐 제32대 조달청장, 감사원 감사위원 역임, 홍조 근정훈장. 매경춘추(15회), 한경에세이(8회) 기고. 최근 정규재TV '김상규 교양강좌(66회)'와 '로마의 정치가들(20회)'에 출연.

※본란의 기고는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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