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칼럼] 역전세 시대, 판결문이 갖는 진정한 의미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2.asiatoday.co.kr/kn/view.php?key=20260331010009473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6. 04. 01. 06:00

001엄정숙부동산전문변호사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 엄정숙 부동산전문변호사
전세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한국 고유의 주거 제도다. 그러나 임차인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보증금이 임대인에게 온전히 맡겨진다는 본질적인 취약점을 안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꾸준히 상승하던 시절에는 이 구조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장이 하락세로 전환되면 상황은 급변한다. 새 전세 계약의 보증금이 기존 계약보다 낮아지는 역전세 현상이 발생하고, 임대인은 차액을 마련하지 못해 보증금 반환을 미루게 된다. 이른바 '깡통전세'의 비극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전세 계약이 만료됐는데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다. 변호사 비용은 얼마나 들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이겨도 정말 돈을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많은 임차인이 이 지점에서 포기한다.

15년 가까이 부동산 분쟁을 다루며 확신하게 된 것이 있다. 전세금반환소송을 망설일 이유는 없다.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담보가치가 충분한 경우다. 임대인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매도하려 하거나, 신규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발생한다. 두 번째는 몇 년간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전세사기 피해의 상당수에 속하는 역전세나 깡통전세에 해당하는 경우다.

두 경우 모두 해답은 전세금반환소송이다.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으면 그 판결문의 효력은 10년간 유지되며, 시효연장을 위한 재소를 제기하면 다시 10년이 연장된다.

이것은 당장 전세금을 전액 회수할 수 없더라도, 판결문을 확보해 두면 향후 임대인의 경제 상황이 호전됐을 때 또는 부동산 시장이 회복됐을 때 언제든지 강제집행에 나설 수 있다. 현재의 손실을 미래에 만회할 기회를 법적으로 보장받는 것, 그것이 바로 판결문의 힘이다.

그럼에도 소송을 망설이는 이유가 있다. 1억원 기준 법원비용은 약 100만원, 변호사 비용은 사안에 따라 수백만원 수준이다. 전세금반환소송은 통상 수개월 내에 1심 판결이 나오며, 승소해도 못 받을 것이라는 체념도 있다. 그러나 판결문은 10년간 유효하며 시효연장을 통해 계속 연장할 수 있다. 지금 못 받더라도 나중에 받을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소송 전에는 △적법한 계약 해지 통지 여부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임대인의 재산 상태 △전세보증보험 가입 여부 및 채권양도 여부 등에 대한 것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전세금반환소송은 단순히 개인의 재산을 되찾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법치주의 사회에서 시민이 가진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며, 나아가 건강한 임대차 시장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행위다.

임차인이 적극적으로 법적 권리를 행사하면, 임대인들 사이에 '계약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는다. 특히 전세사기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지금, 임차인의 적극적인 권리 행사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 전세금 반환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면 대한법률구조공단, 각 지역 변호사회, 주민센터 등에서 무료 법률상담을 받을 수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라면 정부에서 운영하는 전세사기피해지원센터를 활용할 수도 있다.

담보가치가 충분한 집이라면 고민 없이 소송을 진행해서 전액 회수해야 한다. 소중한 보증금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 그것이 바로 전세금반환소송이다.

전세금반환소송은 감정의 싸움이 아니다. 증거와 법리의 싸움이다. 계약서, 등기부등본, 내용증명, 통화 녹취록 등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고,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권리를 행사하면 된다. 승소 판결은 대부분의 경우 어렵지 않다.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일어나야 한다. 당신의 권리를 되찾는 것은 당신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