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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폭력적 순수성과 대안적 혼종성의 변증법적 재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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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3. 03. 09:45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지난해 영화 평단을 흥분케 했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친절하지 않기에 뛰어난 영화다. 감독 특유의 종잡을 수 없는 극의 전개는 그야말로 플롯을 뒤흔든다. 앤더슨 감독의 매력은 매번 그 끝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케 만든다는 데 있다. 하지만 늘 기대와 예상치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그렇다고 반전의 반전과 같은, 결말을 알고 나면 흥미가 급감하는 그런 부류의 영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는 대중성과 괴리가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영화학도들에겐, 문법을 배우는 것이 문법을 파괴하기 위함이라는 명제의 교범과 같은 그의 작품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텍스트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좀 더 남다르다. 전작들이 보여준 예의 독특한 리듬감으로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추측 불가능한 전개는 공식과도 같은 영화적 클리셰를 무너트린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관객이 호흡을 놓칠 수 없게 할 뿐만 아니라 감정 이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적어도 미국 관객에겐 존재 이유와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질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란 사회는 그 출발이 '혼종성'에 있다. 유럽에서 소외받던 다양한 이들이 모여든 땅이 아메리카 대륙이다. 최초로 제임스타운에 정착한 이들은 북미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으며 어울려 지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삶의 기반을 마련하고 나선 그들은 원주민들을 배신하고 박해한다. 마치 군대 선임들의 장난감이었던 졸병이, 폭력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자신의 후임을 더욱 잔인하게 대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그들은 과거 박해와 소외의 경험을 지우기 위해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미래의 가치를 이데올로기로 삼는다. 과거의 피학의 고통도 현재 가학의 죄의식도 지워버릴 수 있는 강력한 이념으로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모든 것이 신의 섭리라고 일갈한다. 이제 선택받은 자라는 선민의식은 순수성으로 갈음한다. 그렇게 백인 남성우월주의 KKK의 논리는 미국 사회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는 현대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가상의 설정이 세팅돼 있다는 점에서 대체 역사로 볼 수 있다. 작중 인물인 MKU(극중 가상기관으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트럼프 정부의 미국이민세관집행부 ICE를 연상시킴)의 지휘관 스티븐 록조 총경(숀 펜 분)은 극좌 혁명단체인 프렌치 75를 소탕한 공로로 베드퍼드 포레스트 훈장을 받는다. 이 명칭은 다름 아닌 KKK 창립자 네이선 베드퍼드 포레스트의 이름이다. 그는 남북전쟁 때 남부군 장교로 패전의 모멸감을 지우기 위해 유색인종에 대한 테러 조직을 만든 이다. 한편 반체제 아나키즘 테러 조직인 프렌치 75는 1960년대 혁명기의 폭력적 성향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사실 이와 같은 설정은 그간 미국 사회에서 은폐되어 온 세계관을 까발리기 위함이다.

양극단으로 대치되는 극우와 극좌는 각각 '이념적 순수성'으로 상징되는 유령을 극 중에 배치한다. 그 하나가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으로 대변되는 반유대 인종주의 비밀결사 KKK의 유령이며, 거기에 합류하기 위해 애쓰는 록조 총경이다. 그 반대에는 프렌치 75의 리더였다가 조직을 배신한 퍼피디아 베벌리 힐스(테야나 테일러 분)가 또 다른 축으로 배치돼 있다. 그녀는 전형적인 강골의 흑인 여성 전사다. 혁명의 이념이나 완수보다는 그 수행의 과정에 과몰입된 인물이다. 어찌 보면 진정한 자유인이나, 지독한 자기성애에 빠진 이기주의자다. 따라서 임신한 상태에서도 솟아오른 배 위에 머신건을 얹고 총을 난사하며, 출산 후엔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다시 테러의 현장을 누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당국에 잡히자 동료들을 팔아버리고 증인 보호 프로그램을 이용해 빠져나간다. 이들은 각각의 이념적 순수성을 대변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남녀는 서로를 육체적으로 탐닉하게 된다. 그것도 사도마조히즘의 방식으로 그들은 미성숙한 공서적 합일을 이룬다. 바로 극단과 극단이 만나는 지점이다.

반면 이들과는 다른 안티 테제와 진 테제로 배치된 인물이 퍼피디아의 남편인 밥 퍼거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과 그들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윌라 퍼거슨(체이스 인피니티 분)이다. 폭탄 전문가인 밥의 본명은 팻 캘훈으로 퍼피디아의 조력자였다가 살아남은 혁명 잔존 세력 중 한 명이다. 그는 장르영화에서 소환되는 '귀환한 영웅'과는 거리가 멀다. 무기력하고 술과 마리화나에 절어 사는 인물이다. 하지만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새로이 전개된 전선에 나선다. 좌충우돌, 그가 나오는 씬은 블랙코미디로 전환된다. 혁명가라는 정형성과는 거리가 먼 부성의 주체로서 사실 그는 양가적인 방식으로 두 극단인 록조와 퍼피디아의 해체적 안티 테제로 작용하는 인물이다. 또한 그의 딸 윌라는 흑백 혼혈로 혼종성을 대변한다. 그런데 극 중 윌라가 밥과 록조 중 그 누구의 딸인가가 주요 플롯으로 배치되었음에도, 감독은 그 역시 미끄러뜨린다. 그러나 변증법적 결과로서 윌라의 혼종성은 역설적으로 더욱 부각된다.

최초 프렌치 75의 이념적 토대는 연대의 가치에 기초한 혼종성에 있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백인이건 흑인이건 상호 간에 혼종으로서 진보의 가치를 역설한다. 극 중에서 이를 실천하는 이는 멕시코계 미국인으로 불법 이민자들을 보호하고 탈출시키는 역할을 하는 윌라의 가라테 사범 세르히오 생카를로스(베니시오 델 토로 분)이다.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밥을 그는 아무런 대가 없이 돕는다. 연대의 실천은 이처럼 환대로서 혼종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념적 순수성으로 무장하고선 자신의 권력을 나누기보다 독점하려는 세력은 연대보다는 정체성의 정치에 매몰되기 마련이다.

극단적 칸트주의와 극단적 사디즘은 서로 만나게 돼 있다. 그들의 공서적 결합은 진짜 혼종성이 아닌 의사혼종성(pseudo-hybridity)으로서 또 다른 형태의 귀족주의적 순혈주의를 자청할 것이기 때문에 위험하다. 해당 세력들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길 바란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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