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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공개, 십수년째 모호한 기준…‘떼법’으로 진행되는 ‘형벌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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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찬 기자 | 김태훈 기자

승인 : 2026. 03. 02. 18:00

'강북 모텔 살인' 검경 다른 판단
피의자 신상공개, 모호한 기준 논쟁 계속
당국 자의적 판단에 의존…여론 의식도
"의무 심의나 유족 의견 반영 등 보완 필요"
그래픽
최근 '강북 모텔 연쇄 살인' 사건을 계기로 피의자 신상정보 공개 제도의 해묵은 논쟁이 재조명되고 있다. 핵심은 담당 수사기관이나 대중의 관심도에 따라 공개 여부가 달라지는 경우가 제도 시행 이후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사람의 기본권과 공익 사이에서 엄격하게 우선 순위를 다뤄야 할 공적제재가 일관성 없이 자의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신상 공개 자체에 대한 위헌성 논란이 지속 제기되는 가운데, 이를 통제하기 위한 법률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에 따르면, '강북 모텔 연쇄 살인'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북부지검은 지난달 27일 피의자 김모씨의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심의위)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김모씨가 지난달 19일 검찰에 송치되기 전까지 수사를 맡았던 서울강북경찰서가 내린 신상 비공개 조치를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경찰은 김모씨가 신상정보 공개 요건인 '범행 수단의 잔혹성' 등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봤다. 이후 피해자 유족 등이 경찰 결정에 반발하자, 사건을 넘겨 받은 검찰이 유족들의 호소와 사회적 주목도 등을 고려해 신상 공개 검토를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피의자 신상 공개의 기준에 대한 의문은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2024년 8월 서울 중랑구의 한 아파트 흡연장에서 70대 이웃 주민을 무차별 폭행해 살해한 최성우는 신상이 공개됐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서울 은평구 한 아파트에서 30대 남성 백모씨가 일본도를 휘둘러 이웃을 살해한 사건에 대해서는 신상 비공개로 결정됐다. 두 사건 모두 이웃을 향한 '묻지마 살인'이었음에도 정반대의 판단이 나온 것이다. 당시 유족 측은 백모씨의 신상 공개를 촉구하며 "범행 수단이 얼마나 잔인해야 하는지, 중대한 피해는 어디까지인지, 충분한 증거의 뜻은 무엇인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여전히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행 피의자 신상 공개의 기준은 범행 수단의 잔혹성과 중대한 피해 여부, 피의자가 범인이라는 확실한 증거,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범죄 예방 등 공익성 등이다. 이는 2010년 강력범 신상 공개가 법제화된 이후 16년간 단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2024년 1월 '중대범죄신상공개법'을 신설했지만, 공개 대상 범죄를 확대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범죄의 잔혹성을 결정할 통일된 요건이 없는 데다가, 범죄 예방 등 공익에 대한 실질적인 효과도 여전히 객관적으로 증명되지 않고 있다. 이를 결정하는 비공개 심의위도 검찰·경찰이 독립적으로 운영하며, 사건 관할별로 따로 구성된다. 주관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개념이 통일된 심의위원회도 없이 결정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경찰은 2018~2023년 5년간 모두 52건의 신상 공개를 검토했는데, 이 중 29건만 실제 공개가 결정됐다. 이들 모두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였지만, 정신질환 여부 등 법률 외 요건이 주요 판단 근거가 됐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법 위에 떼법 있다"는 말이 나온다. 신상 공개가 여론을 더 중시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특히 경찰의 부실 수사나 범죄가 발생한 사회 구조적 문제에 대한 비판을 피의자 개인에게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신상 공개를 악용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실제로 경찰은 2019년 4월 경남 진주시에서 발생한 아파트 방화·흉기난동 살인을 벌인 안익득에 대해 정신질환이 인정됐음에도 예외적으로 신상 공개를 결정했다. 당시 같은 아파트 주민들의 계속된 신고에도 경찰이 미흡한 대응을 했다는 지적이 나온 지 하루 만이었다. 최근 모텔 연쇄 살인 사건 역시 대외 반응이 신상 공개 검토 결정에 앞섰다는 점에서 이와 유사하다는 평가다.

게다가 위헌성 논란도 해소되지 않았다.신상 공개는 형법상의 형벌이 아니지만 실질적인 처벌과 같은 효과를 내 이중처벌 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 또한 유죄 판결 전에 이뤄져 무죄추정 원칙에도 어긋난다.

당초 신상 공개 제도는 무분별한 사적제재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도입됐지만, 사실상 이를 공권력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형벌 포퓰리즘'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보여주듯 국회에서도 기준 구체화나 통일된 심의위에 대한 논의는 전무하고, 대상 범죄를 확대하자는 내용의 발의만 이어지고 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재범 우려, 범죄의 잔혹성, 국민의 알권리 등 기준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주관적"이라며 "사건 관할 경찰서마다 별도의 심의위원회를 구성하다 보니 통일된 결정이 나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강력범죄는 의무적으로 심의를 열도록 하거나, 피해자나 유가족이 심의 소집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홍찬 기자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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