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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 “엄마 밥 한 끼의 무게”…‘넘버원’이 던지는 가족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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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 기자

승인 : 2026. 02. 10. 14:44

김태용 감독 연출, 최우식·장혜진 모자(母子) 호흡
오는 11일 개봉
넘버원
'넘버원' 장혜진(오)·최우식/바이포엠스튜디오
밥을 먹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하루를 함께 살아준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뜨거운 국을 불고 숟가락을 들고 마주 앉아 나누는 몇 분의 시간 속에는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이 담긴다. 영화 '넘버원'은 그 평범한 식탁 위에 조용히 죽음과 사랑의 질문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언제까지 이 밥을 함께 먹을 수 있을까.

오는 11일 개봉하는 '넘버원'은 어느 날부터 사람 머리 위에 숫자가 보이기 시작한 하민(최우식)의 이야기로 출발한다. 귀신도 아니고 환각도 아니다. 오직 하민의 눈에만 보이는 이 숫자는 어머니가 차린 밥을 먹을 때마다 하나씩 줄어든다. 그리고 그 숫자가 '0'이 되는 순간 엄마는 죽는다. 이에 하민이 선택한 방식은 극단적이다. 엄마를 살리기 위해 엄마를 떠난다. '엄마를 지키기 위해 엄마를 버리는' 역설 속에서 그는 홀로 버텨내기로 결심한다. 사랑을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실천하는 셈이다.

하민의 선택에는 죄책감이 깔려 있다. 수능 날 아침, 엄마의 밥을 먹고 급히 뛰어나가다 사고로 세상을 떠난 형, 그날 이후 하민에게 밥은 더 이상 일상이 아니다. 책임이고 부담이며 두려움이다. 엄마의 사랑은 따뜻하지만 동시에 무겁다.

그래서 그는 엄마 곁에 머무는 게 싫어 연인인 려은(공승연)과의 미래도 미루고 결혼도 포기하고, '엄마를 지키려면 멀어져야 한다'는 자기만의 논리를 붙잡고 살아간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하민에게는 생존 전략이다. 그러나 삶은 계산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민에게 위암 진단이 내려진다. 남은 시간은 길어야 세 달이다. 엄마를 살리려다 자신이 먼저 죽게 된 아이러니, 영화는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과연 누구를 위해 무엇을 포기하며 살아왔는가'로 질문의 방향을 바꾼다.

넘버원
'넘버원' 장혜진(오)·최우식/바이포엠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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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원' 장혜진(오)·최우식/바이포엠스튜디오
'넘버원'이 가장 섬세하게 포착하는 것은 모성애의 양면성이다. 은실은 평생을 자식에게 바쳤다. 자신의 꿈, 욕망, 취향도 뒤로 미뤘다. 아이들 뒷바라지가 인생의 전부였다.

장혜진의 연기는 이 영화의 심장이다. 부산 사투리, 투박한 몸짓, 소소한 농담까지 자연스럽다. 연기가 아니라 삶처럼 보인다. 최우식은 자기 파괴적이면서도 연약한 아들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사랑 때문에 무너지는 인물의 얼굴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넘버원'은 음식을 감정의 언어로 사용한다. 미역국, 소고기뭇국, 김치, 돼지국밥 같은 평범한 메뉴들은 모두 기억의 매개다. 은실이 하민에게 소고기뭇국 끓이는 법을 알려주는 장면은 사랑의 전승처럼 다가온다.

'넘버원'은 결국 '밥'에 관한 영화다. 가장 평범한 행위 속에 가장 깊은 사랑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상기시킨다. 우리는 생각보다 적은 횟수만 부모와 함께 밥을 먹는다. "1년에 부모님 많이 봐야 설 추석 두 번, 길게 잡아봐야 20년, 딱 40번밖에 못 본다"는 영화 속 대사는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이 얼마나 유한한지 일깨운다. 12세 이상 관람가.
이다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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