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독립과 지식에 대한 예우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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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이름을 빌려 미래를 열다
이번 세종과학상의 주인공으로 선정된 두 명의 젊은 학자는 대한민국 기초과학의 미래를 상징한다. 먼저 화학 분야 수상자인 박윤수 교수(KAIST)는 '단일원자 편집 기술'이라는 경이로운 성취를 일구어냈다. 분자 구조 내에서 특정 원자 하나를 정교하게 교체하거나 편집하는 이 기술은 신약 개발과 신소재 창조의 패러다임을 바꿀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고 있다.
생명과학 분야의 정충원 교수(서울대)는 집단 유전학을 통해 고대 유전체를 분석함으로써 동북아 거주민의 이동 경로와 유전적 뿌리를 과학적으로 증명해냈다. 이는 인문학적 영역으로 치부되던 역사를 정밀과학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쾌거다.
두 수상자에게는 각각 1억원의 상금이 수여되었다. 주목할 점은 이 상금이 국가 예산이 아니라 과학기술인 스스로와 그 가치를 알아본 민간의 손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45세 이하의 젊은 천재들에게 조건 없는 신뢰를 보낸 이 상은, 한국형 노벨상을 향한 가장 건강한 토양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리센코주의의 망령: 과학이 권력에 종속될 때의 비극
우리가 왜 이토록 민간 주도의 독립적인 과학상에 주목하는가는 역설적으로 과거의 비극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20세기 중반 소련을 뒤흔든 '리센코주의(Lysenkoism)'는 권력이 과학을 통제하려 들 때 국가가 어떻게 몰락하는지 보여주는 가장 처참한 사례다.
당시 소련의 농학자 트로핌 리센코는 현대 유전학의 근간인 멘델의 법칙을 '부르주아 가짜 과학'으로 몰아세우며, 획득 형질이 유전된다는 허무맹랑한 이론을 들고나왔다. 스탈린은 자신의 정치적 구미에 맞는 리센코의 이론을 전폭 지원했고, 국가 기금은 리센코를 추종하는 이들에게만 쏟아졌다. 반면 이에 반대한 니콜라이 바빌로프를 비롯한 수많은 진정한 과학자들은 연구비를 박탈당하고 숙청되었으며 심지어 옥사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과학적 검증을 무시한 채 이념에 따라 강행된 농법은 소련 농업의 전면적인 붕괴와 대기근을 초래했다. 과학의 자율성이 거세되고 관료적 입맛에 맞는 연구에만 기금이 배분될 때, 창의적 연구의 생명력은 끊어진다는 것을 이런 아픈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더 여유를 가진 기업들의 사회공헌을 기대해 본다.
◇피트 수상의 애덤 스미스 예우와 영국의 비상
리센코의 비극과 정반대의 사례로는 18세기 영국의 윌리엄 피트(소피트) 수상과 애덤 스미스의 일화가 있다. 1787년, 런던의 한 만찬장에서 젊은 수상 피트는 고령의 학자 스미스가 시간에 쫓겨 들어오자 각료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미스가 앉으라고 하자 피트는 대답했다. "선생님께서 앉으실 때까지 서 있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당신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예우는 단순한 매너의 문제가 아니라 학자의 이론에 대한 존중을 담고 있었다. 피트 수상은 당시 성행하던 중상주의 이론을 버리고 스미스의 '국부론'에 담긴 자유무역과 경제의 자율성을 국정 운영의 철학으로 삼았다. 권력자가 학자의 지혜를 존중하고 그 자율성을 인정한 결과, 영국은 중상주의의 낡은 틀을 깨고 세계 경제의 패권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과학자를 '스승'으로 모시는 사회로
오늘날 대한민국이 직면한 다양한 위기를 돌파할 열쇠는 결국 올바른 정책과 과학기술에 있다. 하지만 그간 우리의 과학은 정부의 단기적 성과지표와 예산 배분 논리에 갇혀 있었다. 이제 그 틀을 벗어나 피트 수상이 스미스를 존중함으로써 대영제국의 번영을 일구었듯, 우리 사회가 세종과학상의 정신을 이어받아 과학기술인들을 전폭적으로 예우하고 그들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면 대한민국은 진정한 '지식 강국'으로 거듭나고 위기를 돌파할 열쇠도 얻게 될 것이다.
김이석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