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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더 늦기 전에 ‘용서와 화해’로 미래 향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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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1. 22. 17:41

1김철수전회장
김철수 (전 대한적십자사 회장,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이사장)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 성경 구절은 단순한 종교적 가르침을 넘어, 인간이 함께 공존하기 위해 갖춰야 할 필수적인 생존조건처럼 들린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결국 부메랑처럼 돌아와 나 자신을 옥죄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는 용서라는 단어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경제평화연구소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평화지수는 해가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다. 시리아 내전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역시 마침표를 찍지 못한 채 많은 이들에게 깊은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다. 과거 냉전 시대가 끝난 후 잠시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으나, 이제는 국가만 바뀌었을 뿐 서로를 향한 대립의 날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우리 사회에서도 첨예해지고 있다. 한국은 유독 갈등의 골이 깊은 국가다. 한국경제인협회가 OECD 30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갈등지수는 2008년 4위에서 2016년 3위로 올라서며 여전히 상위권에 머물러 있다. 이념, 빈부, 성별, 학력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일상적인 갈등이 벌어지고 있으며, 정치적 진영 논리는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강화하며 증오에 불을 붙인다.

우리는 왜 이토록 쉽게 분노하게 되었을까. 층간소음, 흡연 문제, 주차 분쟁 등 일상의 작은 불편함은 금세 폭언과 폭력으로 번진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게 성가신 일이 되었고, 한때 '이웃사촌'이라 부르던 따뜻한 관계는 경찰을 부르거나 비극적인 살인 사건으로 끝맺음 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분노를 쏟아낸다. 부모, 자녀, 친구처럼 가까운 이들에게 날카로운 말을 던지는 이유는 그만큼 기대가 컸고, 그 기대가 실망으로 변했을 때의 통증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 바로 '용서'다. 하지만 용서는 흔히 오해받곤 한다. 많은 이들이 용서를 패배나 정의의 포기, 혹은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행위로 생각한다. 그러나 마하트마 간디는 용서가 오직 강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성이라고 했으며, 달라이 라마는 용서란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억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한 미움에서 나 자신을 놓아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물론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이 없는 용서는 피해자에게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용서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 자신을 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의학적 연구에 따르면, 용서를 실천하는 사람은 스트레스 지수가 낮아져 면역기능이 살아난다고 한다. 이는 신체 능력을 높일 뿐만 아니라 우울과 심리적 불안감을 줄여 삶의 만족도를 높이며, 심혈관 질환의 위험까지 감소시키는 구체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즉, 분노와 원망을 오래 품고 있는 것은 독을 마시며 상대가 죽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지만, 용서는 과거의 상처에서 나를 해방해 현재를 건강하게 살아가게 하는 선택이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갈등을 법적 다툼으로 끌고 가는지 보여주는 통계도 있다. 2018년 기준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피고소인 수는 일본보다 무려 217배나 많았다. 이는 대화를 통한 해결보다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방식이 우리 사회에 습관처럼 자리 잡았음을 방증한다.

역사는 우리에게 다른 길을 제시한다. 27년 동안 억울한 옥고를 치른 넬슨 만델라는 보복 대신 화해를 선택해 분열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하나로 묶었다. 100만 명 이상이 희생된 르완다 대학살 이후에도 그들은 '가차차'라는 재판을 통해 피의 복수를 멈추고 공존의 길을 모색했다. 또한 9·11 테러 당시 죽음을 직면했던 이들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누군가를 향한 저주가 아니라 가족과 연인을 향한 사랑의 고백이었다. 결국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인간이 붙잡는 가치는 증오가 아닌 사랑과 화해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더 큰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갈등에 매몰돼 과거에 머물 때가 아니라, 용서와 화해의 지혜로 미래를 개척할 때다. 거창한 국가적 화해가 아니어도 좋다. 이웃과의 사소한 다툼에서, 가족 간의 해묵은 상처에서 그리고 정치에서 먼저 분노를 내려놓는 용기를 내보자. 용서가 세상을 단번에 바꾸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당신의 심장을 더 건강하게 뛰게 하고 영혼을 자유롭게 만들 것이다. 용서는 나약함의 상징이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여는 가장 강력한 인간의 힘이다.

김철수 (전 대한적십자사 회장,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이사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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