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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500억 달성한 고향사랑기부제, 이제는 ‘자율’과 ‘사후 확인’으로 날개 달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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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1. 07. 14:53

권선필교수
권선필 목원대학교 교수 겸 한국지방자치학회 고향사랑기부제특위 위원장)
2025년 새해가 밝음과 동시에 들려온 고향사랑기부제의 성적표는 꽤나 고무적이다. 행정안전부와 각 지자체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모금된 금액은 총 1515억 원을 넘어섰다. 이는 전년 대비 무려 70%가량 증가한 수치로, 제도가 점차 안정궤도에 오르고 있음을 방증한다. 기부 문화의 불모지라 불리던 한국 사회에서 지역 소멸을 막고 건전한 기부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취지가 국민의 마음에 가닿은 결과다.

그러나 1500억이라는 숫자에 안주하기엔 아직 이르다. 일본의 고향납세 제도가 수조 원 규모로 성장하여 지방재정의 핵심 축이 된 것과 비교하면, 우리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도약을 위해서는 현재 제도가 가진 구조적 한계를 냉철히 진단하고 과감한 혁신을 단행해야 한다. 그 핵심은 '중앙 통제의 완화'와 '기부 절차의 획기적 간소화'에 있다.

우선, 행정안전부의 관여를 대폭 줄이고 지자체의 자율성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고향사랑기부제는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단일 플랫폼(고향사랑e음)과 획일적인 운영 지침 아래 놓여 있다. 이는 전국의 모든 지자체를 동일 선상에서 관리하기엔 용이할지 모르나,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린 창의적인 모금 활동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기부금은 본질적으로 지역의 매력과 기부자의 감성을 연결하는 매개체다. 중앙의 관리 감독보다는 지자체가 민간 플랫폼과 협력해 다양한 기부 캠페인을 벌이고, 기부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자율의 공간을 넓혀줘야 한다. 지자체 간의 선의의 경쟁이 일어날 때, 비로소 제도는 역동성을 갖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기부 절차상의 '사전 확인' 단계를 '사후 확인'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현재 시스템은 기부자가 기부하기에 참여하기로 하는 순간, 주민등록상 거주지 여부와 연간 기부 상한액 초과 여부 등을 실시간으로 조회하여 기부 가능 여부를 판별한다. 이 과정에서 행안부 시스템과 연동된 복잡한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하며, 잦은 오류와 대기 시간은 기부자의 이탈을 부추기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사전 확인 절차가 과연 필수불가결한 것일까?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지난해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고 당시, 관련 시스템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기부 자체가 불가능해질 위기 상황에서 행안부는 임시방편으로 사전 확인 절차를 생략하고 '사후 확인' 방식으로 전환하여 모금을 진행했다. 결과는 어땠는가. 시스템은 문제없이 돌아갔고, 기부자들은 평소보다 훨씬 빠르고 간편하게 기부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행안부 스스로 사전 확인이 '절대적 절차'가 아님을 인정한 꼴이 됐다. 비상 상황에서 사후 확인만으로도 충분히 제도가 운영될 수 있음이 증명된 것이다. 기부자가 자신의 거주지에 기부했거나 상한액을 초과했다면, 기부 완료 후에 이를 확인해 취소하거나 반환하는 절차를 두면 그만이다. 굳이 선의를 가지고 찾아온 기부자를 입구에서부터 검문검색하듯 가로막을 이유가 없다.

사후 확인 방식으로의 전환은 단순히 절차 하나를 바꾸는 차원이 아니다. 이는 기부 시스템 전체의 효율성을 혁신하는 열쇠다. 우선, 시스템적으로 행안부의 행정망에 실시간으로 의존해야 했던 부하가 사라진다. 지자체나 민간 플랫폼 운영사들은 훨씬 가볍고 유연하게 독자적인 모금 페이지를 구성할 수 있게 되며, 이는 막대한 시스템 구축 및 유지보수 비용 절감으로 이어진다.

기부자 입장에서의 편익은 더욱 극적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듯, 복잡한 사전 조회 없이 몇 번의 클릭만으로 기부를 완료할 수 있게 된다. 기부 행위는 고도의 이성적 판단보다는 순간적인 공감과 감동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기부 절차의 편의성에 대단히 민감한 기부자들에게 '즉시성'을 보장해 주는 것은 모금 활성화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2025년의 성과는 우리 국민의 뜨거운 고향 사랑을 확인시켜 줬다. 이제 정부가 응답할 차례다. 불필요한 규제와 기술적 장벽을 걷어내고, 기부자가 더 쉽고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중앙집권적 통제에서 지자체의 자율로, 공급자 중심의 사전 관리에서 사용자 중심의 사후 확인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때다. 그래야만 고향사랑기부제는 단순한 기부금 모금을 넘어, 지방과 수도권이 상생하고 전 국민이 즐기는 진정한 축제의 장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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