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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에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 루스벨트의 맨해튼 프로젝트, 절대무기의 극단적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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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1. 04. 17:32

외계인에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 <69회>
송재윤
송재윤 맥마스터대 역사학과 교수
◇ 지구인의 존재론적 부조리

문명사의 많은 위대한 성취는 한계에 도전하는 사피엔스의 순수한 호기심, 집요한 탐구 정신, 부단한 자아실현의 욕구와 자기 계발의 노력을 통해 이뤄졌다. 문명사의 많은 파멸적 인재(人災) 역시도 양극단에 빠져드는 사피엔스의 편집증적 집착, 지나친 욕망 추구, 광적인 자기 확신과 그릇된 가치관이 초래한 결과다.

문명을 일으킨 사피엔스의 수월성과 문명을 파괴하는 사피엔스의 극단성은 동전의 양면처럼 딱 붙어 있다. 수월성이 극단성의 결과이고, 극단성이 수월성의 동력이다. 호모 울트라누스(Homo Ultranus, 극단적 인간)는 그렇게 창의적 극단성과 파멸적 극단성을 동시에 보이는 '정신 분열적' 존재라 할 수 있다. 다 같은 인간인데 어떤 이는 붓다가 되고, 또 어떤 이는 사탄이 된다면, 그야말로 존재론적 부조리가 아닐 수 없다. 동식물계 다른 어떤 종에서도 관찰되지 않는 인간세(人間世)의 선악 대결은 과연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비키니섬 환초에서 실시된 인류 최초의 핵폭탄 실험
1945년 7월 1일 북태평양 비키니섬 환초에서 실시된 인류 최초의 핵폭탄 실험.
기독교 신학자들은 거의 2000년의 세월 동안 전지전능한 신의 편재(遍在)에도 불구하고 악이 존재해야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을 계발해 왔다. 많은 신학자는 인간의 자유 의지 등으로 악의 존재를 설명하지만, 과연 전지전능한 신이 불완전한 인간에게 자유를 허락하기 위해 그토록 많은 악을 용인해야 할까? 아니라면, 신이 인간의 영적 성숙을 위해서 일부러 악을 존재하게 했는가? 결코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신학적 난제다.

◇ 신의 존재와 선악 대결

조로아스터교에선 바로 그러한 선악으로 갈리는 인간의 양면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주 자체가 선·진실·질서의 진영과 악·거짓·혼란의 진영으로 나뉜 채 끊임없이 대결을 벌이고 있다고 교시한다. 일면 이분법적 숙명론처럼 들리지만, 자세히 보면 인간이 선의 편에 서서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실천하면 선인이 되고, 악의 편에 서서 나쁜 생각, 나쁜 말, 나쁜 짓을 범하면 악인이 된다는 보편적인 윤리적 가르침이다. 문화권은 전혀 다르지만, 맹자(孟子) 역시 인간은 선한 마음의 씨앗을 꽃피워서 스스로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를 수도 있고, 그 씨앗을 짓밟으면 도척과 같은 악인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핵분열 실험에 성공한 리제 마이트너와 오토 한
1938년 실험실에서 최초로 핵분열 실험에 성공한 리제 마이트너(왼쪽)와 오토 한.
인류를 제외하면 지구 위에 살아가는 그 어떤 종의 그 어떤 개별자도 의식적으로 자연적 질서에 어긋나는 자비를 실천하거나 대규모 파괴를 자행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선악의 양극단을 몸소 구현할 수 있다. 그러한 인간의 예외성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선악이 모두 실은 인간의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모두 같은 인간의 마음이 빚어낸 양극단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인간의 마음이 선의 극단성을 보이면 지극히 순선(純善)한 존재로 고양될 수 있지만, 악의 극단성에 빠지면 지극히 사악한 존재로 전락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마음은 선이나 악의 양극단으로 쏠리고 빨려드는 경향을 보인다.

인류의 역사에서 선의 극단성과 악의 극단성이 기묘하게 연동되어 표출된 가장 파괴적 사례가 바로 1945년 8월 현실이 된 핵폭탄 투하였다. 1945년 8월 6일과 8월 9일 지구인들은 사상 처음으로 수십만 인명을 한 찰나에 앗아갈 수 있는 원자폭탄을 실전(實戰)에 사용했다. 대략 35만 인구의 히로시마에선 14만여 명이, 대략 26만 인구의 나가사키에선 7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의 절반은 폭파 당시 즉사했고, 나머지 절반은 부상과 방사능 후유증으로 수개월 앓다가 죽었다. 원자폭탄의 제조와 사용은 창의적 극단성과 파멸적 극단성이 절묘하게 맞물린 결과였다.

◇ 맨해튼 프로젝트, 양극단의 시간 다툼

핵폭발의 원리는 1930년대 물리학자들의 실험실에서 발견됐다. 1938년 12월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오토 한(Otto Hahn, 1879~1968)과 프리츠 스트라스만(Fritz Strassman, 1902~1980)이 우라늄의 중성자 폭발에서 바륨의 유출을 감지했다. 이듬해 1월 스웨덴에서 리제 마이트너(Lise Meitner, 1878~1968)와 오토 프리쉬(Otto Frisch, 1904~1979)가 핵분열에 수반되는 막대한 에너지 총량을 계산해 냈다. 같은 해 물리학자들은 핵분열이 추가적 중성자를 발출하여 연쇄적 자가 반응을 일으킨다는 점을 간파했다. 핵폭탄의 기초 원리가 과학적으로 밝혀진 이상 인류의 핵무기 개발은 시간 싸움일 뿐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핵분열의 위력을 아는 물리학자라면 당연히 나치가 신속하게 핵무기 개발에 착수할 수 있음을 내다볼 수 있었다. 1939년 8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나치가 세계 최초로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음을 알렸다. 공교롭게도 1939년 9월 나치 정권은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다시금 세계대전의 포문을 열었다. 이에 조속한 핵무기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한 루스벨트 행정부는 2년에 걸친 연구 끝에 1941년 10월 9일 핵무기 개발 계획을 승인한다.

형식적으로 중립을 유지한 채 물밑으로 영국에 대량 군수품과 무기를 지원하고 있던 미국은 1941년 12월 8일 일제가 진주만을 공습하자 곧바로 일본에 전쟁을 선포한 후, 사흘 뒤 독일과 이탈리아와도 전쟁 상태로 돌입했다. 영미는 이미 사실상 동맹 상태였지만, 진주만 공습 이후 양국은 법적 제약을 제거하여 연합군을 형성했다. 전쟁 체제에 돌입한 미국은 1942년 7월부터 3년에 걸쳐 핵무기를 개발하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결국 미국이 독일보다 먼저 핵무기를 개발했고, 그 결과 2차대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종결될 수 있었다. 히틀러가 먼저 핵무기를 개발하여 런던이나 뉴욕을 생지옥으로 만들었다면, 세계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핵무기는 20세기 전반기 최고의 물리학자들이 발견한 핵분열 원리를 군사적으로 전용하여 개발한 파멸적인 살상 무기였다. 핵분열 원리를 발견한 순수한 과학자들의 탐구 정신은 인간 정신의 창의적 수월성을 보여주는 문명사적 쾌거였지만, 핵무기가 투하된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폐허는 인간 정신의 파멸적 극단성이 펼쳐진 반문명의 현장이었다.

물리학자들은 강렬한 호기심과 집요한 탐구 정신을 발휘하여 우주의 숨은 원리를 발견했다. 그 결과는 원자폭탄 투하에 의한 대규모 인명 살상이었다. 지구인의 창의적 극단성이 파멸적 극단성과 떼려야 뗄 수 없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어찌하여 이 광막한 은하계에 대자연의 숨은 비밀을 파헤쳐서 공도동망의 살상 무기를 제조하는 '극단적 지성'이 출현하게 되었을까?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구인은 과연 누구인가? 최대 욕망의 최대 충족을 바라 이윤 극대화만 추구하는 경제적 동물인가? 무의식적 충동에 이끌려 멸망의 심연으로 추락하고 있는 극단적 동물인가? 인간 행동의 근본 동기에 관한 철학적 성찰이 없이는 절대로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송재윤 맥마스터대 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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