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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대한민국 유통업계가 처한 현실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지난해 말 '12·3 계엄' 여파로 시작된 소비침체는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고, 홈플러스의 법정관리부터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까지 유독 부침이 많은 한해였다.
고물가와 고금리, 소비위축에 유통 현장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유통의 본질을 다시 묻는 시간이기도 했다.
오프라인 유통을 대표하는 대형마트인 홈플러스의 몰락은 단일 기업의 위기를 넘어 산업구조 전반을 다시 보게 했다. 더 이상 규모와 점포 수로 경쟁하는 시대는 지났다. 대신 소비자들이 얼마나 오래 체류할 수 있게끔 할 수 있느냐가 생존의 필수조건이 됐다.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플랫폼 유통의 성장 이면에 가려져 있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빠른 배송과 압도적인 편의성으로 시장을 장악해온 기업이지만, 소비자의 신뢰를 잃는 순간 그 어떤 혁신도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기술과 속도만으로는 신뢰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을 시장은 냉정하게 받아들였다.
할인율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기술보다 먼저 챙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업계는 뼈아프게 배웠다. 유통은 상품을 파는 산업이 아니라 '신뢰'를 기반하는 산업이라는 오래된 진리를 다시 생각하게 한 한해였다.
병오년 2026년 새해를 맞이할 지금, 유통업계를 둘러싼 환경이 갑자기 낙관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올해보다 더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소비 회복은 더디고, 비용 부담은 여전히 크다. 그럼에도 변화의 방향만큼은 이전보다 분명해지고 있다.
유통의 경쟁축은 가격에서 경험으로, 속도에서 진정성으로 이동하고 있다. 단순히 싸고 빠른 유통이 아니라, 믿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신뢰 회복이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관리에 대한 기준은 한층 엄격해졌고, 이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기술과 속도를 앞세운 유통은 이제 약속을 지키고 책임을 다하는 기본 원칙 위에서 다시 설계돼야 한다.
자동화와 AI는 앞으로 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그러나 현장을 이해하는 판단과 위기 상황에서의 책임 있는 대응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2025년의 여러 사건은 기술보다 중요한 것이 태도와 책임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
불의 기운을 품은 말의 해인 병오년. 말은 멈추지 않고 달리지만, 방향을 잃으면 위험해진다. 유통업계가 2026년에 가져야 할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화려한 성장 수치보다 소비자에게 다시 믿음을 주는 변화, 현장을 존중하는 운영, 지속 가능한 경쟁력이 우선돼야 한다.
한마디로 내년 유통업계가 진정으로 보여줘야 할 것은 소비자 신뢰를 바탕으로 한 '믿을 수 있는 변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