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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에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 세계 종교의 성공 이유, 울트라누스의 정신적 방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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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2. 21. 18:00

외계인에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 <67회>
송재윤1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역사학과 교수
◇사피엔스의 정신적 방황

극단성은 호모 사피엔스의 고유한 특성이다. 지구 위의 그 어떤 종도 사피엔스처럼 과도한 운동이나 과격한 생각, 과다한 음식 섭취나 과민한 시기 질투 따위로 생리적 항상성(恒常性, homeostasis)을 해치는 극단적 상태에까지 이르지 않는다. 본능에 충실한 다른 동물은 욕망이 어느 정도 충족되면 적당한 수준에서 부드럽게 스스로 멈추는 절제 능력을 발휘한다. 이와 달리 사피엔스는 본능을 거슬러 무절제하게 탐욕을 부리고, 본능을 억누르며 자학적으로 금욕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 점에서 사피엔스(지혜로운 인간)의 다른 이름은 울트라누스(극단적 인간)다.

얼핏 보면 지구 전역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평화 시기 사피엔스 중 다수는 파멸에 이를 정도로 무절제한 과욕이나 금욕에 빠져들진 않는 듯하지만, 누구나 '죽음에 이르는 병'에 이를 잠재적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세계 보건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유엔 산하 세계보건기구(WHO)의 연구에 따르면 지구인의 25~30%가 평생에 걸쳐 한 차례 이상 정신질환이나 정신장애를 겪는다. 연평균을 환산해 보면, 매해 열 명 중 한 명 이상은 정신병 증세에 시달리고 있는 꼴이다. 지구인의 네 명 중 한 명이 세상을 살면서 통과의례처럼 정신질환을 앓아야만 한다면, 소수의 일탈로 보기엔 비율이 심각할 정도로 유의미하게 높다. 혹자는 경제적 풍요와 그에 따른 삶의 여유가 정신질환 발생 비율을 낮춘다고 생각하겠지만, 세계보건기구의 조사 몇 개만 들춰봐도 그러한 짐작은 큰 착각임이 드러난다. 오히려 고소득 선진국 국민 중에 정신질환 발병 비율이 높다는 의학 연구가 적지 않다. 결론적으로 지구인 모두가 정신질환을 앓는다곤 볼 수 없지만, 상당수가 습관성 탐욕 증후군이나 만성 자학 증후군을 앓고 있음을 부인할 순 없다.

로마 성베드로 성당
1506년 건립된 로마 성베드로 성당
물질적 풍요가 정신질환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못 된다면, 지구인을 괴롭히는 정신질환과 정신장애의 근본 원인은 더 깊은 뿌리를 갖고 있음이 명
확해 보인다. 그 뿌리는 대체 어디까지 닿아 있는 걸까?

지구인이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까닭은 물질적 조건이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진화 과정에서 지구인의 두뇌가 지나치게 정교하고, 지나치게 예민하게 발달했기 때문은 아닐까? 이런 질문이 드는 까닭은 지구인은 다른 동물과 달리 스스로 인생의 근본적 의미를 되묻고 찾으려 하는 반성적(反省的) 사유 습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발달 심리학의 일반론에 따르면, 12~18세 사춘기 청소년들은 거의 모두가 "내가 누구인가?" "대체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죽음은 존재의 끝인가?" 등등 존재론적 물음에 시달린다. 청소년기 지구인들이 자발적으로 던지는 이러한 질문들은 절대로 상식선에선 해답을 찾을 수가 없다. 피조물이 조물주의 의도를 캐묻는 발칙하고도 불경스러운 모멘트이기 때문이다.

◇세계 종교의 신정론

바로 그런 이유에서 지구인들은 태고로부터 종교적 성향을 보여왔다. 과학과 합리를 지적 우월감의 근거로 삼는 현대인들은 대개 전통적 무속은 미신이라 경멸하면서 경전(經典)과 의식(儀式)과 성전(聖殿)과 제사장(祭司長)을 두루 갖추고 널리 여러 지역 많은 인구에 포교하는 제도화된 종교는 거룩한 신앙이지 미신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무속이든, 제도화된 종교든 똑같은 인간의 존재론적 물음과 종교심에 근거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의 교세를 전 세계적으로 넓힌 세계 종교를 보면, 여러 실패한 종교적 운동과는 달리 다양한 문화권의 더 많은 군중에 어필할 수 있는 체계적인 교리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성공한 세계 종교는 거의 예외 없이 존재론적 의문과 형이상학적 물음에 대한 상당히 설득력 있는 해답을 제시한다. 기독교에선 믿음과 영생을, 불교에선 카르마의 윤회전생과 니르바나를, 이슬람에선 알라의 뜻을 설파함으로써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지구인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고, 나아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신앙적 확신을 준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이라는 개념으로 바로 그러한 세계 종교가 다른 모든 종교를 제치고 크게 성공한 근본적 이유를 설명한다. 신정론이란 가톨릭 전통에서 전지전능하고 편재하는 신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명확한 악(惡)이 존재하는 이유를 따져 묻는 교리문답을 말한다. 막스 베버의 탐구에 따르면, 불교, 힌두교, 이슬람, 기독교, 조로아스터교 등 역사적으로 성공한 모든 종교는 지구인들이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모순과 불합리, 고통과 부조리를 체계적으로 설명해 주는 고도의 교리 체계를 갖고 있다. 무속 신앙과 세계 종교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면 바로 그러한 체계화된 교리를 갖추고 있냐 없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대승불교 사원 세우(Sewu)
8세기 인도네시아 자바에 세워진 대승불교 사원 세우(Sewu)
◇초인이 되려는 인간의 숙명

세계 종교는 그렇게 삶과 죽음의 근본적 문제에 관해 범부의 상식을 넘어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사피엔스의 두뇌는 세계 종교의 교리 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명석하고, 오만하고, 도전적이라는 점이다.

19세기 말 "신은 죽었다"는 한마디로 종교의 시대가 이미 지나갔다고 부르짖었던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가 바로 그러한 사피엔스의 도전성을 잘 보여준다. 20세기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힌 그의 저작 '자라투스트라'에서 니체는 인간의 한계를 초극하는 초인(超人, Ubermensch)이 되라 설파하면서 말한다. "원숭이가 인간에겐 조롱거리며 경멸스러운 존재이듯, 초인에게 인간은 조롱거리며 경멸스러운 존재이다."

니체에 따르면, 인간은 본능 그대로의 '평형 상태(equilibrium)'을 유지하는 다른 동물과는 달리 본능을 넘어 인간적 한계에 도전하는 초월적 의지를 가진 존재다. 초월적 의지란 개체 보존의 자연적 욕구를 넘어서 더 높은 이상과 가치를 구현하려는 의지를 말한다. 인간이 원숭이를 하등 동물로 여겨 경멸한다는 자라투스트라의 발언에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오직 인간만이 초인적 의지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다.

왕자로 태어나 세속의 모든 영욕을 버리고 고행의 길을 갔던 가우타마 싯다르타는 동물적 한계를 벗어나려는 인간의 극한적 구도행을 잘 보여준다. 인류의 영생과 구원을 약속하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 역시 불멸을 향한 인간의 절대적 염원을 잘 드러낸다. 니체는 자신의 노력으로 부처나 예수가 되지 못한 채 맹목적 신앙의 단계에 머물며 자족하는 다수 군중이 신이 죽은 세계에서 야수적 본능의 세계로 추락하거나 아니면 이제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초인의 경지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론적 무신론(無神論)의 시대가 이미 도래했음을 예언한 듯하다. 피조물인 인간이 조물주로서의 절대자를 섬기던 시절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던 철학적 도발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망령처럼 전 세계를 휩쓰는 오늘날 보면 신이 죽었다는 니체의 말 속에 진정 무서운 예언이 담겨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역시 한 시대의 극단을 넘어서 또 다른 시대의 극한에 도전하는 울트라누스의 존재적 양태임을 누가 부인할 수 있는가?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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