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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사이트] 자사주 의무소각, 기업에 엄청난 부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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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2. 03. 17:58

권재열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자사주는 기업이 이미 발행한 주식을 되사서 보유하는 주식을 의미한다. 자사주를 보유하면 기업 스스로가 그 기업의 구성원이 된다는 논리적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에 상법은 배당가능한 이익으로만 자사주를 취득한다는 원칙을 두고 있다.

자사주를 취득하여 유통 주식의 수가 줄어 들면, 주당순이익(EPS)과 1주당 배당금 등이 올라가 기존 주주의 주식 가치가 간접적으로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 그리하여 자사주 취득은 현금배당과 유사한 주주환원정책으로 인식되며, 주주의 신뢰를 높이고 시장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는 이벤트다.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자사주를 떠안아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에는 배당가능이익이 없더라도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예를 들자면, 갑 회사의 주식을 일부 보유한 을 회사가 갑 회사에 흡수합병 되어 갑 회사가 을 회사의 모든 것을 승계하면 자연스레 갑 회사가 법률상 문제없이 자사주를 가지게 된다.

현행 상법은 원칙적으로 이사회의 결정으로 자사주를 처분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어 기업은 시의적절하게 경영권 방어와 주주가치 제고, 주가 안정, 임직원 보상 등 다양한 경영전략에 활용하고 있다. 기업이 합병, 분할, 주식교환 등 구조조정 과정에서 자사주를 합병 대가 또는 교환 대상으로 건넨다면 현금 지출 없이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다.

지난달 24일 여당의 오기형 의원이 자사주 의무소각을 내용으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였다. 이미 국회에 유사한 법안이 무려 5개나 제출되어 있는 상태이고, 이재명 대통령이 9월 25일 뉴욕에서 제3차 상법 개정을 공식화한 만큼 자사주 의무소각은 빠른 시간 내에 법제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상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 기업으로서는 더 이상 자사주를 취득할 유인이 줄어들어 주가 부양이나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반복적인 매입을 꺼리게 될 것이다. 결국 자사주 의무소각은 단발성 정책에 머무르게 되는 셈이다.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은 자사주를 취득한 날로부터 1년 내에 소각하여야 한다. 다만 우리사주제도 실시 등 특정한 경우에 자사주 보유와 처분에 관한 계획을 작성하여 매년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는다면 예외적으로 자사주를 계속 보유 또는 처분할 수 있다.

그동안 기업은 자사주 거래를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핵심적 수단으로 활용해 왔지만 앞으로는 매년 주주총회의 통제를 받아야 하므로 자사주의 쓰임새는 지나치게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외부의 약탈자로부터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더라도 바로 주주총회를 열기 어려워서 자사주를 활용하여 신속하게 경영권을 지킨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기업이 자사주를 처분할 때는 원칙적으로 모든 주주에게 주식 수에 비례해 균등한 조건으로 처분하여야 하는 까닭에 자사주를 이용해 우호지분을 재빨리 확보한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해질 전망이다. 이처럼 상법 개정안에는 자사주를 활용한 경영권 방어를 사실상 봉쇄하려는 입법자의 의도가 짙게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기업 스스로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을 없애버리는 것은 오히려 외부 세력에게 더 쉽게 공격하라고 등을 떠미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마치 공격하는 쪽은 언제나 정당하고 착한 존재이므로 기업이 손 놓고 당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법이 생각하는 것 같아서 씁쓸하게 느껴진다.

정부는 오래전부터 지주사 설립이나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주주가 주식을 현물출자 함에 따라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가 발생하더라도 지주사 주식을 처분할 때까지 과세를 이연해 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상법이 개정되어 기존에 취득한 자사주 전량을 소각방식으로 처분하여야 한다면 지주사는 그동안 이연된 세금을 일시에 납부하여야 하는 엄청난 부담을 떠안게 된다.

더군다나 영업면허나 법인의 설립 및 유지를 위한 요건으로 최저자본금을 맞추어야 하는 기업에도 자사주 의무소각은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합병으로 떠안은 자사주를 소각하면 자본금이 감소되므로 반드시 채권자 보호 절차를 밟아야 한다. 만약 자본금 감소 과정에서 채권자들의 과다한 상환 요구로 재무구조가 악화될 것 같다면 오히려 많은 주주가 자사주 소각에 반대하는 진풍경이 연출될 것이다.

예컨대 증권사는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을 가지고 있어야만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해 줄 것을 신청할 수 있는데 채권자를 보호하다가 3조원 요건을 충족할 수 없게 된다면 그 신청은 물 건너가는 것이다. 5000만원 이상의 자본금을 갖추어야 하는 부동산중개법인, 종합주류도매업체나 종합여행업체가 자사주를 많이 가지고 있다면 상법 개정안의 통과는 새로운 걱정거리가 될 것이다.

고환율, 높은 무역장벽, 공급망의 불안정,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거시 경제 변동성으로 인하여 경영의 근간이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자사주 소각으로 인한 부담을 어떻게 떨칠지 감이 오지 않는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이 자사주 소각을 법으로 의무화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오로지 '코스피 5000' 달성이라는 명분으로 제3차 상법 개정을 밀어붙이려는 일련의 움직임을 보면서 기업 할 맛 나는 경제를 구현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다시 한번 푸념하게 된다.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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