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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새벽 배송 시장은 지난 10년간 급성장했다. 2010년대 중반 일부 온라인 식품업체가 도입한 이후, 대형 플랫폼 기업과 전통 유통기업까지 가세하며 현재는 식품, 생활용품, 의약외품 등으로 서비스 범위가 확대되었다. 특히 팬데믹을 거치며 비대면 소비가 일상화되자, 새벽 배송은 단순한 틈새 서비스가 아닌 도시 중산층의 주요 소비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1인 가구의 증가, 장시간 노동, 육아 부담 등 생활 여건의 변화는 빠른 배송에 대한 수요를 구조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성장의 이면에는 야간작업의 상시화, 물류 센터의 고강도 노동, 배송 시간 압박으로 인한 사고 위험, 과대 포장 및 탄소 배출 증가 등의 부작용이 누적되고 있다.
새벽 배송은 새로운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지만, 일자리, 소비자 만족 등의 사회적 편익도 창출하는 산업 모델이므로 무작정 노동 시간을 규제하거나 부작용을 무시하는 방식으로는 갈등을 해소할 수 없다. 규제와 산업 육성 간 균형점을 찾아야 하며 이를 위해 합리적인 기준을 도출해야 한다.
법적으로 보면 새벽 배송 논란은 노동자의 건강권과 노동권, 소비자의 선택권이 동시에 충돌하는 사례이다. 문제는 이 권리들이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보편적 가치라서 충돌을 쉽게 해소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최상위법인 헌법을 통해 우선순위를 조정하게 된다. 그렇다면, 헌법은 보편적 가치가 충돌하는 문제에 대해 항상 특정한 권리가 우선한다는 일관된 판단을 내려줄까? 그렇지 않다. 헌법은 고정된 규범이 아니라, 각 시대의 사회 구조와 가치를 반영하여 해석되는 역사적 산물이다. 따라서 헌법이 보호하는 권리의 내용과 우선순위 역시 국가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이 때문에 독일과 같은 국가가 야간 노동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우리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국가별 규제는 그 사회의 산업화 수준, 사회보장 체계, 노동시장 구조, 위험에 대한 집단적 인식의 차이를 반영한 결과다. 독일은 헌법적으로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는 보호국가(保護國家)형 모델을 선택하여 노동 규제를 설계해 왔다. 반면 영미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개인의 선택과 시장 자유를 중시하는 헌법 질서를 구성해 왔다. 이는 영미 헌법이 생명과 건강을 경시한다는 뜻이 아니라, 건강권 문제를 헌법적 권리로 우선하기보다는 입법과 정책의 영역에서 다루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국가마다 다른 헌법적 태도는 참고 사항일 뿐 우리 사회에 무분별하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우리 헌법이 새벽 배송으로 인한 권리 충돌에 기준점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여건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특히 가장 시급한 것은 우리 사회가 노동자의 건강 위험, 소비자 편익, 시장 효율성 사이에 실제로 어떤 가중치를 두고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파악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경제학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생명의 통계적 가치(Value of a Statistical Life, VSL)를 활용할 수 있다. 생명의 통계적 가치는 간단히 말해 사망 위험을 줄이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이 지불하려는 총 의사금액이다. 이는 생명을 돈으로 환산하는 방법이 아니라 건강 위험 감소의 편익을 다른 사회적 비용과 비교할 수 있게 해주는 경제학적 분석 도구다. 영국, 미국, 캐나다 등 해외 선진국에서는 생명의 통계적 가치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여 합리적인 노동시장 규제를 설계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에 기초하지 않고 건강권이나 노동권에 대해 제기된 주장은 추상적인 선언일 뿐이다.
결국 새벽 배송 갈등은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전면 허용도, 전면 금지도 답이 될 수 없다. 노동자의 건강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면서도 소비자의 선택권과 산업 혁신을 불필요하게 위축시키지 않는 규제 조합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생명의 통계적 가치 같은 경제 분석에 기초한 야간노동 시간의 합리적 한도 설정, 휴식권 보장, 안전 설비 의무화를 가격에 반영하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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