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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대로] “환율 1800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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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2. 01. 17:28

이경욱
이경욱 논설심의실장
"환율이 1800원까지 치솟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글로벌 기업 국내법인 한 임원은 최근 이런 우려를 토해냈다. 1500선을 넘보는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이 지금보다 20%는 더 오를 것 같다는 예측이다. 가히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수준의 환율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 1900원대까지 치솟으면서 국민 모두가 불안에 떨었던 기억이 재현될까 두렵다. "수출이 잘된다고 하지만, 결국 수출도 수입을 바탕으로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수입물가가 폭등할 것으로 우려가 됩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국내 소비자물가도 급등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정치권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때와 지금의 상황은 달라도 한참 다르지만, 원화의 실질가치 하락은 당분간 막을 수 없는 추세로 점차 자리 잡아가는 듯하다.

그의 예측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과연 1800원까지 치솟을까 하는 의구심이 현재로서는 더 큰 게 사실이다. 하지만 환율이라는 게 '귀신도 모르는 것'이라서 누구도 정확히, 그리고 자신 있게 예측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연초 1300원대에서 움직이던 환율은 어느새 1500원 근처까지 치솟았다. 명동의 환율 거래상 사이에서는 환율이 1700원대를 오간다고 한다.

경제란 게 동전의 양면성이 있기 마련이어서 환율 급등으로 수익을 얻는 측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게 평범한 국민의 문제로 이어질 때는 문제가 매우 다르다. 우리는 IMF 당시 환율 급등에 따른 외환위기 탓에 IMF 구제금융을 받은 대가로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어야 했다. 그때 숱한 직장인, 영세 상인들이 한계상황에 몰렸던 것을 취재 현장에서 목격한 바가 있어 현재 상황에 대한 걱정이 남다르다.

국민 대부분은 환율을 피부로 직접 느끼지 못한다. 주식은 개미투자자들을 중심으로 등락을 거듭할 때마다 곧바로 시장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 부동산도 매주 정부 기관이 동향을 발표하기에 민감도가 높다. 그러나 환율은 특성상 곧바로 개인에게 폭넓고 광범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유학을 보낸 자녀에게 달러화로 송금해야 할 때나 미국 등 주요국에 부동산을 구매하려고 할 때 등 개인이 직접 외환시장에 참여해야만 그 실상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달러 환율 1800원 시대의 도래는 자녀 유학비로 1년에 1만 달러를 보내는 부모가 이전까지는 1300만원만 환전하면 됐는데 그리 머지않아 180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100만 달러짜리 미국의 주택을 구입할 때 이전에는 13억원 정도가 들었다면 앞으로는 18억원을 부담해야 한다는 얘기다. 국내 자산의 대외가치가 지금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의미다. 서울 강남 등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지만, 대외가치는 점점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휘발유 가격은 고시가격 기준 ℓ당 1800원대로 상승했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 유가가 급등하게 되고 그것은 휘발유 가격 급등을 야기한다. 법인 비용으로 휘발유를 구매하는 일부 여유 계층을 제외하고는 차량 운행에 큰 부담을 갖게 된다. 여기에 더해 가스요금과 전기료도 덩달아 상승하게 된다. 서민의 고민과 생활고가 깊어질 수밖에 없다.

환율은 해당국 경제가 불안할 때 크게 흔들린다. 올해 들어 환율 불안을 부채질할 굵직한 사안들이 많이 돌출됐다. 환율 불안의 가장 큰 요인은 아무래도 미국과 관세협상 여파다. 앞으로 10년 동안 매년 200억 달러를 미국에 송금해야 한다. 그 200억 달러는 우리의 외환보유고 4200억 달러의 연간 운용 기대수익 150억 달러와 외환채권 발행분을 더해야 겨우 마련할 수 있다. 외환보유고가 줄어들면 당연히 외환위기가 발생할 것이고 장차 구제금융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쾌재는 미국이 부른다. 정부가 국민연금 동원에 공개적으로 나섰고 증권사를 상대로 서학개미(미국 등 해외주식 투자자)의 외환 과다 유출을 막아달라는 주문을 하고 있을 정도다. 공개적 환율 방어에도 환율은 좀처럼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환율 방어가 잘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다행히 우리의 수출이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다. 11월 기준 수출이 반도체 수출 호조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지만, '반도체 쏠림' 탓이 크다는 것에 유념해야 한다.

우리의 대내·외 여건은 이렇게 악화일로를 걷고 있지만, 정치권은 내년 지방선거에만 올인하는 분위기다. 승리를 위한 당리당략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한다. 지금처럼 고환율과 그에 따른 충격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국가의 장래와 차세대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율이 36%로 재집권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고물가와 주거비 등 생활비 급등 탓이다. 우리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 정치권이 전문 관료에 힘을 실어줘 자율적인 경제 운용에 나서도록 하는 등 경제를 온전히 살리는 데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 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도, 경제도 없다. 경제 체력을 기르고 우리의 대외신인도를 제고하는 데 목숨을 걸어야 한다. 'IMF 시즌2'가 그림자처럼 다가온다. 두렵다. 지금은 경제 살리기에 올인할 때다.

이경욱 논설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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