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서울연극제로 향하는 걸음에서 드러난 성장의 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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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느껴본 고요의 무게였고, 그 감정은 그해 여름을 떠올릴 때면 여전히 또렷하다. 사람의 감정은 때로 큰 사건보다 사소한 공간에서 먼저 모습을 드러난다. 그가 배우로 살기로 마음을 다졌던 방향도 사실 이러한 감정의 한 순간에서 시작되었다. 새로운 환경을 마주하는 청춘에게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은 설렘보다 어쩌면 외로움일지도 모른다.
배우라는 길을 구체적으로 떠올린 첫 장면은 고등학교 1학년 발표 수업이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무대에 오르기 전에 심장소리가 제 귀에 다 들릴 정도로 떨렸어요. 근데 막상 올라가니까 재밌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날 무대에서 느낀 몸의 반응은 오래도록 그의 안에 남아 있었다.
발표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스스로에게 말한 문장은 단순했지만 분명했다. "아 나는 무대에 서야 하는 사람이구나." 거창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몸이 먼저 반응하며 스스로의 방향을 알려준 순간이었다. 사람마다 자신을 발견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그의 경우에는 감각이 먼저 길을 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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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무대의 난도를 이야기할 때마다 "연극은 너무 어렵다"는 표현을 먼저 사용했지만 곧이어 "근데 그게 또 좋아요"라고 덧붙였다. 어려운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것을 통해 자신이 조금씩 바뀌는 과정을 좋아하는 마음이었다. 이 모순 같은 두 문장은 배우라는 직업을 지속하게 만드는 그만의 에너지였다.
무대 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감각을 이야기할 때 그는 "내가 움직이지 않고 무대가 나를 움직이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이 설명에는 구체적인 몸짓도, 화려한 수식도 없지만 무대에 서 본 사람이라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감각이 있다. 배우라는 존재가 스스로를 넘어서는 순간. 그가 다시 무대로 돌아오게 되는 이유는 결과나 평가보다 이 감각에 가까웠다. 그는 그 순간을 오래 붙잡고 싶어했고, 그 순간이 자신을 배우로 존재하게 만드는 핵심이라고 말했다.
데뷔작에서 타이틀 롤을 맡았던 이야기를 할 때 그는 부끄러운 듯 웃었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서요." 그러나 그 무지함은 오히려 용기였고, 무지함이 있었기에 넘어야 했던 벽들이 많았지만 그 벽마다 자신을 다시 세우는 방식도 배웠다.
그는 당시에 자신을 기다려주던 선배들의 호흡을 고스란히 떠올렸다. "제가 헤매도 그냥 조금 기다려주셨어요. 덕분에 많이 배웠죠." 연극이라는 세계는 개인의 재능뿐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태도가 배우를 기른다. 그는 그 세계에서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는지 너무 급하게 판단하지 않았고, 시간이 알려주는 변화를 차분히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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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 역할을 잡지 못해 흔들렸던 날들을 진심으로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그는 공연을 포기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관객과의 약속이고, 동료와의 약속이니까요. 그냥 했어요. 어떻게든 붙잡아보려고요." 어떤 문장은 길지 않아도 힘을 가진다. 그 한 문장은 무대에서 흔들렸던 날들을 버티게 했던 그만의 신념이었다.
그는 이 작품을 내년에 다시 올릴 예정이라고 했다. 단순한 재공연이 아니라 서울연극제 자유경연 참가작으로 무대에 서게 된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흔들리며 붙잡았던 캐릭터를 다시 마주할 기회이자, 그동안 남겨두었던 질문을 관객 앞에서 다시 확인해갈 무대다. 재도전이라는 표현보다 '질문을 이어가는 과정'이라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때는 조금 더 이해하고 있는 사람처럼 무대에 서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배우라는 직업은 틀을 깨며 자라나는 직업인 동시에, 자신의 한계를 부드럽게 받아들일 때 더 깊은 지점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는 지금 그 문 앞에 서 있다.
서울 연극센터에서 진행된 특별 공연은 그의 연기 감각을 한층 넓힌 순간이었다. 원래는 옥상 정원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갑작스러운 비로 인해 비를 피할 수 있는 야외 공간으로 급히 자리를 옮겼고, 그 예기치 않은 변화가 오히려 공연의 분위기를 독특하게 만들었다. 그는 그날을 떠올리며 "즉흥으로 나오는 것들이 진짜 호흡이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관객의 반응이 배우의 대사를 바꾸고, 배우의 작은 몸짓이 장면의 흐름을 바꾸는 경험이었다.
무대라는 공간은 완성된 대본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 날이었고 그는 즉흥과 계획 사이에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틈을 발견했다. 그 틈이 배우로서 자신을 확장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문장이자 다음 무대를 향한 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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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박2일밖에 시간이 없었지만 충동적으로 광주 본가로 내려갔던 날을 떠올리며 "지금 생각하면 귀엽죠. 근데 그때는 그게 정말 필요했어요"라고 말했다. 청춘에게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자신이 가장 자신답게 있는 장소이자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다.
본가의 풍경을 떠올릴 때 그는 더 조용해졌다. "문만 열어도 들리던 소리들이요. 그게 다 위로였던 것 같아요." 아침마다 들리던 뉴스 소리, 식탁에서 나는 작은 소리들, 강아지 봄이가 뛰어오는 소리, 가족들이 티격태격하며 웃던 장면들. 그 익숙한 소리들은 단순한 일상 이상의 의미였다. 배우라는 길은 때로 자기 자신을 너무 많이 들여다봐야 하는 길이고, 그는 그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가족의 소리를 붙잡았다.
이름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정체성을 더욱 선명하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특히 좋아한다고 말했다. "아빠 성이랑 엄마 성이 같이 들어가 있어서 좋아요." 엄마는 딸을 낳으면 채연이라고 부르겠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다고 한다. 그는 이 이름이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자신을 지켜주는 근원의 역할을 한다고 느낀다.
연기를 반대하던 아버지가 지금은 공연이 있으면 가장 먼저 오시는 장면을 이야기하며 그는 작게 웃었다. "아버지가 공연을 보러 오시는 모습을 보면 괜히 미소가 나와요. 배우로서 이름을 알린다는 건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실 일 같아요." 이 말은 단순한 효심이 아니라 배우라는 직업을 통해 자신의 삶의 출발점을 다시 연결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는 자신의 매력을 궁금함이라고 말했다. "다음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하는 기대요. 그렇게 기억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스스로를 과장하지 않고, 캐릭터에 따라 끝없이 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싶다는 의지였다. 그는 자신이 어떤 배우가 되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자기 자신에게 거짓을 만들지 않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예술이 그에게 주는 위로에 대해 묻자 그는 과거를 조용히 떠올렸다. "저도 힘들 때 위로된 장면들이 있었어요. 그때 그 장면들이 저를 다시 움직이게 했어요." 그는 누군가에게 그런 장면을 하나쯤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배우로서의 목표가 단순한 성공이나 유명세에만 닿지 않는다는 사실은 여기서 확인된다. 그는 예술을 삶의 환기이자 위안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그 이해가 그의 연기를 끌어가는 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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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차례 무대에서 함께한 최무성 배우는 그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자연스럽게 감정 이완을 잘하는 배우다. 어려운 역할도 쉽게 소화할 자질이 있다. 꾸준히 무대에 서면 좋은 배우가 될 것이다." 이 말은 단순한 격려가 아니라 그의 가능성과 미래를 확인해주는 평가였다. 경험 많은 배우의 눈에 비친 정채연은 이미 한 배우로서의 기본기를 단단히 갖춘 인물이었다.
정채연은 지금도 청춘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 아직 풀리지 않은 캐릭터가 있고, 아직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들이 남아 있으며, 앞으로 열어야 할 장면들도 많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는다. 스스로의 속도로 조금씩 자신을 알아가고, 그 과정에서 무대를 붙잡으며 자신의 길을 더듬어가고 있다. 언젠가 이 모든 과정은 한 배우의 삶을 증명하는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지금의 정채연은 바로 그 기록의 가장 선명한 페이지를 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