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대통령 "용서하지 않을 것"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난민 위기
미·유럽, 젤렌스키 망명정부 수립 검토
우크라, 도피 반대, 결사항전 의지
|
전날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외곽 소도시 이르핀의 도로에서 러 침략군의 박격포탄 공격으로 피란길에 나섰던 어머니와 10대 아들, 8살쯤 돼 보이는 딸이 숨지고, 아버지가 의식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 미국 뉴욕타임스(NYT)·영국 더타임스 일요판 선데이타임스 등 전 세계 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 어머니와 어린 남매, 러 침략군 공격에 피란길 거리서 사망...국제사회 분노와 슬픔...젤렌스키 “용서하지 않을 것”
이 가족의 비극과 이르핀을 비롯한 키이우 북쪽 외곽지역 주민들의 목숨을 건 피란길은 현지 취재진과 주민들이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이 각국의 언론매체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널리 퍼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분노와 슬픔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정교회 기독교인들에게 ‘용서의 주일’로 알려진 전날 동영상 메시지에서 “우리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 비극을 맹렬히 비난했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전했다.
우크라이나 제2 도시 하르키우(하르코프)에서는 러 침략군이 식료품점 밖에서 줄을 서 기다리는 민간인들을 다연장 로켓으로 공격해 최소 5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
러 침략군은 키이우와 하르키우, 그리고 남동부 마리우폴과 볼노바하 등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감행해 수십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마리우폴에서는 러시아가 ‘인도주의 통로’ 제공 합의를 깨면서 이틀 연속으로 주민 대피가 무산됐다.
올하 스테파니쉬나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전날 영국 BBC방송에 러 침략군이 병원과 유치원·학교마저 무차별로 공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정보당국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각지의 ‘인구 밀집 지역’을 겨냥해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면서 “러시아군은 1999년 체첸과 2016년 시리아에서도 유사한 전술을 사용했다”고 분석했다.
유엔 인권사무소는 전날 러시아 침공 이후 364명의 민간인이 사망했고, 759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다만 파악되지 않는 사례도 많아 인명피해는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전날까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주변국으로 피난한 주민의 수가 150만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NYT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난민 위기라고 평가했다.
|
러 침략군은 이날 오전 우크라이나 남부 전략적 항구도시 미콜라이프에 대한 중포(重砲) 공격을 시작했다고 NYT는 전했다. 이는 ‘침략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의도한 것처럼 러시아가 미콜라이프 등 다른 도시들을 신속하게 점령하지 못한 것을 만회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전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외교적 수단이든, 군사적 수단을 이용하든 우크라이나에서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고 엘리제궁 관계자 밝혔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탈(脫)나치화’와 ‘중립화’라고 부르는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의지가 결연하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 정부들이 키이우가 함락될 가능성에 대비해 우크라이나 서부 리비우나 폴란드에 젤렌스키 대통령의 망명 정부 수립과 이 망명 정부의 장기간에 걸친 게릴라 작전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WP와 CNN방송 등이 보도했다.
러 침략군이 침공 시작 초반에 우크라이나군의 거센 저항에 주춤했지만 전세를 뒤집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이 같은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WP는 설명했다.
유럽의 고위외교관은 유엔이 지난 2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러시아군의 즉각적인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것이 젤렌스키 정부를 우크라이나의 합법 정부로 인정하고, 더 이상 영토를 통제하지 않더라도 존속하도록 하는 토대 마련의 한 요소라고 설명했다고 WP는 전했다.
유엔은 그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한 긴급특별총회를 열어 이런 내용의 결의안을 찬성 141표·반대 5표·기권 35표로 채택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여야는 모두 도피와 망명 정부 수립안에 반대하고 있다.
미하일 포돌략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러 침략군이 키이우를 점령할 경우에 대비한 비상계획에 관해 설명을 거부했다고 WP는 밝혔다.
포돌략 고문은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국민의 전쟁이 됐다”며 “우리는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야당 ‘유럽연대당’ 소속 볼로디미르 아리예프 의원은 “우리는 포기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당에서 대피 계획에 관해 논의하지 않았다”며 “우리는 여당이 아니지만 무기를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서 국민과 함께 침략자들과 싸울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것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계획”이라며 “대피도, 아무것도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