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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 죽산재는 1933년 죽파 서화일(1860~1933)선생이 서재로 쓰고자 건물을 짓기 시작했던 곳이었으나 죽파선생이 준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월파 서민호(1903~1974)선생이 완공해 아버지인 죽파선생의 제실과 자신의 서재로 사용했다.
죽산재 건립연대는 2013년 수리공사 당시 발견된 상량문(송병섭 찬)을 통해 1933년에 상량했음을 알 수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3칸, ‘ㄷ’자형 구조를 갖춘 기단이나 초석을 잘 다듬어 품격을 높인 근대기의 목조건축물이다.
건축적으로 부재의 기법이 정교하고 화려하며 불교적 요소와 근대기의 풍물이나 경관이 잘 표현된 민화풍의 해학적인 단청은 여러 문화가 혼합돼 나타나는 사례로 문화재로서 가치가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흥 49번째 도 지정 문화재 죽산재는 지역의 문화유산이 소실돼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지역민들과 서민호선생의 후손에 의해 2010년 8월 자연환경 국민신탁에 기증돼 관리되고 있다.
군 관계자는 “국민신탁에 기증된 죽산재를 문화재로 지정받기 위해 2017년부터 분주히 뛰어다녔다”며 “죽산재의 건축적인 가치뿐 아니라 인물, 역사, 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 보존 관리하는 데 힘쓰겠다”고 밝혔다.
한편 월파 서민호(1903~1974)선생은 고흥 출신으로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1년 복역, 1946년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 1952년 거창양민학살사건 국회조사단장, 1961년 UN총회 한국대표, 1965년 한일협정 반대하며 의원직 사퇴, 1971년 통일문제연구소 개설, 1973년 정계를 떠났고 1974년 사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