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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계성 고분군’ 사적 제547호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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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환 기자

승인 : 2019. 02. 2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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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세기 비화가야의 성립과 발전을 보여주는 계성 고분군 사적 지정
창녕군 국정과제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사업' 첫 성과
0225(계성고분군 사적 지정)계성 3호분 내부전경
창녕군 계성 고분군 3호분 내부 전경. /제공=창녕군
0225(계성고분군 사적 지정)계성, 1, 2, 3호분 전경
창녕군 계성 고분군 1.2.3호분 전경. /제공=창녕군
0225(계성고분군 사적 지정)계성고분군 1호분 출토 그릇받침
창녕군 계성 고분군 1호분에서 출토된 그릇받침./제공=창녕군
경남 창녕군은 계성면 계성리, 사리, 명리 일원에 분포하는 ‘창녕 계성 고분군(昌寧 桂城 古墳群)’이 26일자로 국가지정문화재 사적(史蹟) 제547호로 지정됐다고 밝혔다.

계성 고분군은 영축산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 사면부에 형성된 5~7세기의 대규모 고총 고분군이다.

고분군의 서북쪽으로는 계성천이 흐르고 있으며 주변의 낮은 구릉 여러 갈래에 261기의 봉분이 분포하고 있는데 정상부에는 지름 30m가 넘는 대형분도 5기 정도 있다.

계성 고분군은 1917년 조선총독부의 이마니시 류(今西龍)에 의해 처음 고분 분포도가 작성되면서 알려지게 됐으며 1974년 경상남도 기념물 제3호로 지정 관리돼 오다가 이번에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승격됐다.

고분군에 대한 정식 발굴조사는 1967년 5호분(문화재관리국 발굴조사), 1968년 1호·4호분(영남대학교 박물관 발굴조사), 2013년~2015년 2호분·3호분, 2017년 156호분, 2018년 2-3~5호분(이상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발굴조사) 등 5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발굴조사 결과 계성 고분군 축조집단은 사적 제514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세력 이전의 비화가야 초기 중심세력이었음이 확인됐다.

무덤의 구조는 주부곽식 수혈식 석곽묘로 석곽 상부는 나무로 덮개를 만든 특징을 보이고 있어 목곽에서 석곽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유물로는 창녕양식 뚜껑굽다리접시(有蓋高杯)와 긴목항아리(長頸壺) 원통모양그릇받침(筒形器臺) 등의 토기류, 금동관편, 금제 귀걸이와 은제 허리띠장식 등의 장신구류, 말띠드리개(杏葉) 및 발걸이 말안장 꾸미개(鞍橋) 등의 마구류, 무기류 등이 다량으로 출토됐다.

계성 고분군은 5~7세기라는 긴 시간에 걸쳐 축조됐으며 특히 20m 이상의 큰 무덤들이 5세기에 집중적으로 조성돼 비화가야의 성립과 전개, 신라로 이행해 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창녕양식 토기의 성립과 확산, 아라가야, 다라국, 대가야, 신라 등과의 교류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유적으로 그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아 사적으로 승격하게 됐다.

계성 고분군 사적 지정은 국정과제인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사업’ 창녕군 추진과제의 핵심 사업으로 사적 지정이라는 큰 성과를 얻게 돼 비화가야 역사성 규명의 중요한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한정우 군수는 “계성 고분군의 사적 지정은 비화가야를 대외에 알리고 역사적 중요성을 확인하는 큰 성과로 앞으로 문화재청, 경남도와 협의를 통해 고분군에 대한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를 진행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 군수는 “군은 비화가야 산성과 토기가마, 영산 고분군 등에 대한 조사도 계획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비화가야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기 바라며 숨어 있는 가야유적을 찾고 보존 관리하는데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오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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