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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300兆 투자, 모리스창, 친구는 다다익선 [위클리 모자이크]

삼성전자 300兆 투자, 모리스창, 친구는 다다익선 [위클리 모자이크]

기사승인 2023. 03.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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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조각 뉴스들을 모자이크처럼 붙여봅니다.
반도체, 스마트폰, 조선, 항공 등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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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삼성 창업회장(맨 왼쪽)과 이건희 선대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제공=삼성
1. 올해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지 40년이 되는 해다. 1983년 2월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은 숙고 끝에 '누가 뭐래도 삼성은 반도체 사업을 한다'는 도쿄선언을 발표했다. 1982년 27억원을 들여 반도체연구소를 건립한데 이어 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한 것이다. 삼성이 곧 망할 것이라던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영하 15℃ 혹한 속에서 6개월만에 용인 기흥공장이 완성됐다. 일본이 6년 걸려 개발한 64K D램도 6개월만에 개발했다.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지 20년 만인 1993년 삼성전자는 메모리 분야 세계 1위에 올랐다.

Taiwan US Technology <YONHAP NO-4458> (AP)
모리스창 TSMC 창업주가 지난 16일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린 크리스 밀러 교수와 대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90세를 넘긴 '백전노장'이지만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사진=연합 AP
2. 미국의 반도체 기업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부사장으로 근무하던 50대 모리스창(장중머우, 張忠謀)은 고국 대만의 부름을 받았다. 대만 정부는 모리스창에게 반도체 산업을 일으켜달라고 요청한다. 미국 반도체 기업에서 30년가까이 근무하며 부사장까지 올랐던 모리스창이 볼 때 인텔과 같은 종합반도체기업을 대만 현지에 세울 순 없었다. 모리스창은 미국의 수많은 신생 기업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반도체를 자체 생산할 라인을 갖출 여력이 없었다. 1987년 대만 정부와 네덜란드 필립스가 자금을 댄 TSMC가 설립됐다. 모리스창의 나이 56세에 첨단 반도체 기업을 창업했다. 모리스창은 고객들이 설계도만 가져오면 반도체를 생산해줬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최강자로 자리매김할 동안 TSMC는 파운드리라는 분야를 개척했다.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분야 세계 1위를 목표로 삼기 전까지 두 회사는 '가는 길'이 달랐다.

반도체 국가산단 지정된 용인시 남사읍 일대<YONHAP NO-3586>
지난 15일 대규모 시스템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 일대 모습. /사진=연합
3. 삼성전자가 경기도 용인시 남사읍에 마련되는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에 향후 20년 간 300조원을 투입한다. 정부는 710만㎡ 규모의 산업단지에 오는 2042년까지 첨단 반도체 제조공장 5개와 국내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 등 최대 150개를 유치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삼성전자의 기흥, 화성, 평택 반도체 생산단지와 인근의 소부장기업, 팹리스 밸리인 판교 등을 연계한 세계 최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가 완성될 전망이다.

4. 삼성전자의 이번 투자는 파운드리 1위 추격에 방점이 찍혀있다. 삼성전자는 2017년 파운드리사업부를 공식 출범해 올해 7년째다. 파운드리 사업만 36년째인 TSMC와는 업력부터 생산량까지 격차가 크다. 최근에는 삼성 파운드리사업부의 점유율이 다소 주춤하면서 그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TSMC의 점유율 차이는 생산능력의 차이이기도 하다. 삼성전자가 최소 28나노 이상 첨단 공정에 집중돼있는 반면, TSMC는 2000년대 중반 개발해 둔 레거시(구형) 공정도 여전히 운영한다. 세상의 모든 제품에 최첨단 반도체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완구용 변신로봇에도, 헤어 드라이어기에도 반도체는 필요하다. 이러한 제품들은 감가상각이 모두 끝난 구형 공장에서 찍어내 수익성도 짭짤한 편이다. TSMC에 36년간 쌓여 있는 이러한 구형 공정이, 삼성전자에는 없다. 그러니 점유율 격차가 3배가량 나는 것이다. 7나노미터(㎚) 이상 첨단 공정에서는 삼성전자와 TSMC의 비중이 4대6 수준으로 알려져 있지만 TSMC가 압도적 1위라는 점은 변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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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용인 시스템반도체 산업단지 개요/사진=유튜브 캡처
5. 삼성전자는 화성-기흥 벨트는 메모리·파운드리·R&D(연구개발) 중심으로, 평택-용인은 첨단 메모리와 파운드리의 핵심 기지로 육성할 계획이다. 산업계는 이번 투자로 700조원의 직·간접 생산 유발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부지 조성과 건설, 제조설비 등 직접 투자에 들어가는 300조원에 생산유발 효과 400조원을 더한 예상치다. 지난 2019년 서울대 경제연구소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반도체 라인 1개 건설시 약 128조원의 생산 효과가 유발되고 47조원의 부가가치와 37만명의 고용 창출 효과를 기대된다.

6. 삼성전자는 용인을 왜 선택했을까? 정부의 통큰 지원도 있지만, 애초에 삼성전자가 300조원을 투자할 후보지에 미국·유럽은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는 단 한번도 핵심 기술의 연구, 첨단 생산라인을 해외에 둔 적이 없다. 중국에 낸드 공장을 두고 있지만, 낸드는 D램과 달리 6개사가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는 분야다. 미국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도 7나노 이상 첨단라인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D램, 3나노 공정처럼 압도적 기술, 생산능력을 갖춘 분야는 한국 본진을 최대한 활용한다. 인재확보, 기술 보안 유지, 국가로부터 지원, 그동안의 노하우 집적 등 여러모로 따져봐도 한국이 제격이다. 평택에 반도체 공장을 지을 때 건설 노동자도 한국인만 투입할 정도니 말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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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 부지/제공=삼성전자
7. 미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비용은 한국보다 20%가량 비싸다. 요즘은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상황이 더욱 나쁘다. 로이터 통신은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 드는 비용이 80억 달러(약 10조4760억원) 이상 초과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통신은 테일러 공장 건설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 2명의 말을 빌려 "삼성전자가 예상했던 공사비 170억 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250억 달러 이상이 필요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삼성전자의 미국 공장 건설비용 증가는 예견된 결과다. 삼성전자를 포함해 미국에 공장을 짓는 여러 한국 기업들이 비슷한 처지였다. 기업들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인플레이션, 인건비 상승, 인력 부족 문제로 수시로 비용 책정안을 수정해왔다.

8.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미국도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한 편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괜히 로봇 만드는게 아니다. 테슬라는 지난해 10월 공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를 머신러닝(기계학습) 시킨 후 지루하고, 위험하고, 단순한 일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일, 채용이 어려운 일에 로봇을 투입하겠다는 의미다. 삼성전자도 앞으로 미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려면 로봇 도입을 검토해야 할지도 모른다. 로봇은 반도체 공장에서 2교대를 하든, 3교대를 하든 불만이 없고 야간 수당을 줄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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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가 지난해 10월 AI데이에서 공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사진=테슬라
9. 모리스창은 지난 1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와 대담에서 "대만, 일본, 한국의 경쟁력 우세는 제조업에 있다"며 "직장의 작업 문화가 만들어내는 경쟁력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 장비는 너무 비싸 24시간, 연중무휴로 가동한다"며 "만약 새벽 1시에 고장이 났다면 미국에서는 아침 8시에 사람들이 출근해서 수리를 시작할테지만 대만에서는 엔지니어 기술자들이 달려가서 새벽 2시면 수리를 마친다"고 말했다. 모리스창은 미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비용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적으로 언급해왔다. 이날 대담에서는 "중국의 칩 발전을 늦추려는 미국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말했지만. 아, 모리스창과 대담을 나눈 크리스 밀러 교수는 지난 연말 출간된 '칩워'(CHIP WAR, 반도체전쟁)의 저자다. 이 책은 반도체를 둘러싼 국제관계를 다각도로 조명해 주목받았다. 영국 경제신문 파이낸셜타임즈가 선정한 2022년의 경영서적으로 뽑히기도 했다.

10. 공장 건설은 최소 20년, 길게는 30~40년까지 내다보고 결정할 문제다. 미국 공장은 당장의 비용 상승도 문제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변수가 적지 않다. 일단 미·중 관계가 영원히 악화일로를 걸을지도 미지수다. 한국과 미국은 6·25 전쟁에서 피를 나눈 혈맹이지만, 미국은 과거 동맹국이었던 일본의 반도체 산업을 박살낸 선례가 있다. '2030 반도체 지정학'을 쓴 오타 야스히코 일본경제신문 편집위원(전 닛케이신문 기자)은 지난해 6월 21일과 7월 8일 당시 강유종 SK하이닉스 일본법인장과 만나 나눈 대담에서 "미국의 입장에서 동맹의 가치와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과거 일본은 이것을 착각했다"고 회고했다. 야스히코 위원의 조언은 다음과 같다.

"일본 정부는 미국과는 정치적, 군사적 동맹이기 때문에 경제에 있어서는 시장 논리와 민간기업의 실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안심하고 달리다 보니 자고 있던 호랑이의 꼬리를 밟았고, 놀라 잠에서 깬 호랑이가 일본을 물었던 것이다. 한국은 일본의 교훈을 살려 미국에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동맹국이니 안심해도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현재 호랑이의 꼬리가 어떤 형태로 어디에 위치에 있는지 잘 살펴야 한다. 현재 미·중은 대립하고 있고, 일본과 한국은 미국 동맹 팀에 속해있지만, 과거 미국은 일본에는 비밀로 하고 중국과 협력한 적도 있다. 그 또한 미국의 전략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미국과 중국이 협력을 논의하고 있을 수 있다. 미국이 필요한 시점에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일변해버릴 수 있다. '신뢰관계'의 의미가 동서양에서 다르기 때문에 미국과 관계 유지 방법도 조심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이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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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도쿄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 회관에서 열린 한일 비즈니스라운드 테이블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끝난 뒤 박수치고 있다./사진=연합
11. 미국은 더 많은 반도체 공장을, 유럽연합(EU)은 단 한 개의 반도체 공장이라도 삼성전자가 지어주길 바랐지만 삼성의 선택은 용인이다.(삼성전자도 유럽에 반도체 연구센터가 있긴하다.) 용인을 선택한 이유는 인근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장(평택·화성·기흥·온양 등)과 인접하고 수도권 인재들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자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한 20개국 중 한 곳이니 통상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적다. 중국은 더이상 첨단공정 투자를 할 수 없고, 미국은 너무 비싸고, 유럽은 에너지 비용과 까다로운 환경·노동 규제가 걸림돌이다. 유럽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려면 EU가 절반 이상 비용을 보조해줘도 부족할지 모른다. 첨단 제조강국으로 도약이 꼭 필요한 시기에 한국 투자를 결정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더한다. 첨단 기술의 시작은 한국에 두려는 의지도 엿보인다. TSMC도 이 점은 마찬가지다. TSMC가 미국에서 3나노 공정을 도입한다해도 그건 2025년 이후의 일이다. 2025년이면 3나노는 더이상 최첨단이 아니니 미국 애리조나 공장에서 만들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12.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17일 일본 도쿄 게이단렌회관에서 열린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살아보니 친구는 많을 수록 좋고 적은 적을 수록 좋다"고 말했다. 한 기자가 "미국 반도체 보조금 대비 어떻게 하고 있나? 한일이 함께 협력해서 대응할 수 있냐"고 질문하자 그에 대한 답변이다. 최근 정세를 생각해보면 참 기업인다운 답변이다. 친구가 많아지면 시장이 넓어지고, 적이 많아지면 시장은 좁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친구와 적을 스스로 정할 수 없어서 문제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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