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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대로] 미국 ‘블루웨이브’, 그 너머 살펴볼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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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11. 0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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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김명호 객원논설위원
미국 중간선거 결과로 나타난 '블루웨이브'의 정치적 함의는 무얼까. 민주당의 상하원 장악은 과연 '보수 완패, 진보적 가치 승리'인가. '블루쓰나미'라고까지 표현되는 이런 현상을 한국의 진보 진영은 손들어 환영할 만한 일인가. 미 중간선거를 단순히 정치적 승패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놓치는 것들이 제법 많다. 블루웨이브는 미국민의 삶을 어렵게 만든 집권 세력에 대한 심판에 가깝다. 중간선거를 관통한 흐름은 전통적인 이념 전쟁과 문화전쟁에서 지갑투표(pocketbook voting)로의 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갑투표는 유권자가 물가, 일자리, 세금 등 경제적으로 자신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쪽으로 투표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유권자의 선택을 좌우한 것은 전통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이나 낙태, 총기 규제, 이민 등을 둘러싼 가치의 대립보다 기름값, 전기요금, 주거비 등 생활비였다. AP가 실시한 전국 유권자 7만9000명 대상 사전조사에서 '국가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경제(39%)가 1위이고, (경제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거나 나쁘다'가 '75%로 압도적이었다. 66%는 '트럼프 정책이 경제를 악화시켰다'고 답했다. 79%는 지난 1년간 물가 상승으로 본인과 가족이 심각 또는 어느 정도의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유권자들은 지난 2년간 삶이 나아졌는지를 따졌고, 결과는 공화당에 대한 불만 폭발로 이어진 것이다.

이란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는 관점도 다르지 않다. 국제 정세와 군사 개입을 둘러싼 논쟁은 늘 워싱턴의 거대 담론이다. 하지만 기름값은 정부의 외교정책을 평가하는 현실적 기준이다. 외교 성패가 주유소 영수증으로 확인되는 순간, 어느 진영이 옳은가는 지지 요소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지난주 세계 주식시장 폭락에 영향을 준 AI 데이터센터 논란을 보자. 트럼프 행정부는 미래 산업과 기술 패권의 핵심으로 내세워 대규모 투자를 독려했다. 그러나 데이터센터 예정 지역 주민에게 먼저 다가온 것은 미래 산업이 아니었다. 막대한 전력 수요와 전기요금 인상 우려, 수자원 부담이었다. NBC 출구조사에서 유권자 56%는 데이터센터가 중요한 투표 요인이었다고 답했다. 무려 76%는 거주 지역 데이터센터 건립을 반대했다. 성장과 개발을 중시하는 일부 보수층도 생활권이 걸린 문제에서는 다른 선택을 했다.

민주당이 이겼다고 미 유권자들이 진보 이념을 선택한 것은 절대 아니다. 공화당 패배와 민주당 노선 동의는 전혀 다른 얘기다. AP 조사에서도 자본주의 호감이 사회주의보다 훨씬 높았다. 블루웨이브를 진보 약진이나 보수 퇴조로 읽는 것은 자기 입맛에 따라 해석하는 것일 뿐이다. 민주주의와 개혁을 외치면서도 물가와 주거 문제, 일자리와 세금 문제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정치적으로 버림받는 게 오늘의 분명한 정치 현실이다.

공화당의 오랜 아성인 텍사스의 변화는 극적이기까지 하다. 민주당의 지나 히노호사는 현직 공화당 주지사 그레그 애벗을 꺾었다. 제임스 탈라리코도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민주당 승리는 각각 36년, 38년 만의 일이다. 탈라리코의 당선 연설과 다음 날 인터뷰는 꽤 상징적이다. 그는 당선 연설에서 '언제나 약자에게 걸어야' '불의한 탁자를 뒤엎을 때' '좌우(정당)가 아니라 위아래(기득권과 시민)의 싸움'이라며 지지자의 감성을 한껏 자극했다. 한국의 진보 진영 지지자들도 명연설이라며 SNS 여기저기에 퍼다 날랐다. 정작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 날 폭스뉴스 인터뷰다. 그는 방송에서 트럼프의 국경 안보와 이민 정책에 긍정적 효과가 있었고, 이민과 주택공급, 에너지 비용 등은 대통령과 협력할 수 있는 이슈 중 하나라고 말했다. 또 정치 보복에는 관심 없으며, 텍사스 주민들이 삶을 더 편하게, 더 여유롭게 하려고 자신을 뽑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택공급의 과도한 규제에 민주당도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자신이 선거 바로 다음 날 폭스뉴스에 나온 이유가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라고 굳이 밝혔다. 잘 알다시피 폭스뉴스는 일부에서 극우 성향이라고까지 비판하는 보수 성향이 짙은 방송사이다. 그는 감성적인 선거 캠페인 구호와 대다수 보통 시민의 정치적 현실감을 정확히 구분한다. 바로 이 점이 블루웨이브를 읽는 핵심이 아닌가 싶다. 탈라리코는 민주당 노선을 이탈한 게 아니고, 상대 주장을 무조건 부정하고 배척하는 것만으로는 정치를 할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 초점은 바로 보통 사람들의 보통 생활인 것이다. 정치가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반대 유권자도 설득해야 하고, 자기 진영의 잘못된 정책이나 판단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블루웨이브가 이념 전쟁을 끝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완전히 끝날 수도 없다. 선거는 매번 결과가 바뀌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념과 구호만 앞세워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정치의 오랜 믿음이 세계 곳곳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유권자는 이제 진영 또는 정치인의 이념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명호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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