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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일담] 사회적 책임마저 성적표로…포용금융 평가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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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정 기자

승인 : 2026. 10. 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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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정_증명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에도 성적표가 필요한 걸까요.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포용금융 실적을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금전적 상벌을 부여하기로 하면서 은행권이 술렁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부의 상생·포용금융 확대 기조에 발맞춰 지원을 늘려왔는데, 이제는 이러한 노력마저 다른 은행과 비교해 평가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지요. 포용금융 확대라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평가제도 도입에 따른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입니다.

이번에 금융당국이 꺼내 든 성적표는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은행들이 얼마나 많은 자금을 공급하고 취약차주의 채무조정을 지원했는지 등을 따져 S·A·B·C등급으로 줄을 세우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성적을 공개하는 데 그치지도 않습니다. 평가 결과에 따라 서민금융진흥원 출연금을 최대 20% 감경하거나 가중하는 방안까지 추진합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노력이 은행의 비용 부담과 직결되는 구조인 셈입니다.

그렇다고 은행들이 포용금융에 소극적이었던 것도 아닙니다. 이미 상당한 규모의 자금을 지원해왔습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5대 금융지주는 올해 상반기에만 계열 은행을 주축으로 11조2912억원의 포용금융을 공급했습니다. 오는 2030년까지 5년간 공급하기로 약속한 금액은 총 70조7672억원에 달합니다. 금융당국은 지난 7월 이러한 실적을 소개하면서 금융위원회와 5대 금융지주가 '원팀'으로 포용금융을 실천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불과 3개월여 전까지 함께 포용금융 확대에 힘을 쏟던 은행들이 이제는 서로의 성적을 의식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은 아이러니한 대목입니다.

문제는 이번 평가가 상대평가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점입니다. 개별 은행이 지난해보다 포용금융 공급을 늘리고 채무조정 실적을 개선하더라도 경쟁 은행의 성과에 따라 낮은 등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회적 책임을 얼마나 충실히 수행했는지뿐 아니라 다른 은행보다 얼마나 잘했는지가 중요해진 것이지요. 특히 평가 결과에 따라 출연금 부담까지 달라지는 만큼 은행들이 실적 경쟁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자발적인 사회적 책임이 어느새 성적을 겨루는 경쟁으로 바뀌게 된 셈입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부분은 평가 기준이 은행들의 포용금융 지원 방향까지 좌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 평가에서 자금공급과 채무조정은 각각 35%로 전체 배점의 70%를 차지합니다. 물론 채무조정은 금리 인하와 원금 감면, 연체채권 소각·매각 등 취약차주의 재기를 지원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그러나 은행들이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해 배점이 큰 항목에 역량을 집중하다 보면 상대적으로 다른 지원 분야가 소홀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 은행별 고객 구성과 영업 특성에 맞춰 지원 방식을 결정하기보다 정부가 정한 평가 기준에 맞춰 움직이게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스럽습니다.

은행의 경영 자율성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은행은 국가의 인가를 받아 영업하는 만큼 공공적 책임을 다해야 하지만, 동시에 수익성과 건전성을 관리해야 하는 금융회사이기도 합니다. 이번 평가에는 포용금융 전담조직 운영과 내부 성과평가지표(KPI) 반영 여부 등 은행의 내부 관리체계와 관련된 항목까지 포함됐습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포용금융 실적뿐 아니라 내부 경영 방식까지 평가받는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포용금융의 실효성을 높이려는 금융당국의 취지에는 공감합니다. 은행들이 얼마나 많은 자금을 공급했는지뿐 아니라 실제로 취약차주의 재기에 도움이 됐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지요. 다만 포용금융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평가가 반드시 은행 간 경쟁과 금전적 상벌로 이어져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일 것입니다.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꺼내 든 성적표는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유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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