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토속지명과 지역 자본이 발굴해 낸 중산간의 새로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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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중산간 웃드르에 들어선 카페 '진쟁이모루'(제주의 자연을 담는다는 뜻)는 바로 그 찰나의 제주를 담고 있는 공간이다.
구좌의 오름과 바다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어린 시절 용눈이오름을 오르내렸고, '말도 쉬어 간다'는 몰세운동산의 가파른 고갯길을 넘으며 자랐다. 숨을 고르려 동산에 서면 멀리 바다가 펄쳐지곤 했다. 그러나 수십 년간 바라본 고향에서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앵글이 있었다. "세화에 새로운 풍경 명소가 생겼다"는 말을 따라 찾아간 진쟁이모루에서 익숙하던 제주는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한 발 물러선 자리에서 비로소 펼쳐진 새로운 제주의 전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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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쉬오름에서 우도까지… 겹겹이 층을 이룬 동부의 굴곡
진쟁이모루 통창 앞에 서면 다랑쉬오름이 정면을 채운다. 묵직하게 솟은 능선이 푸른 하늘과 맞닿아 있고, 좌우로 크고 작은 오름들이 어깨를 맞대며 제주 동부 특유의 굴곡을 그린다. 단 하나의 오름을 감상하는 평면적 시선이 아닌, 동부의 수많은 오름이 거대한 병풍처럼 포개진다.
2층과 3층 옥상으로 올라서면 시야는 경계를 넘어 바다로 확장된다. 가까운 밭과 돌담, 숲을 지나 시선이 미치는 끝에서 우도와 성산일출봉을 마주한다. 제주올레 1코스의 시작점인 말미오름(두산봉)과 그 곁의 지미봉, 낮고 부드러운 알오름, 식산봉이 저마다의 높이로 풍경 속에 자리를 잡는다. 특히 말미오름과 알오름 사이로 비껴 보이는 성산일출봉은 해안가에서 볼 때와는 사뭇 다르다. 숲과 오름 뒤로 몸을 반쯤 감춘 채 구름의 움직임에 따라 모습을 드러냈다가 숨기기를 반복하며 묘한 여운을 남긴다.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던 우도 역시 오름과 들판을 지나 만나는 지점에서 제주 동부 풍경을 완결 짓는다.
도화지가 되는 바다, 붓이 되는 구름
이곳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빛과 바람에 따라 표정을 바꾸는 도화지다. 바람이 구름을 실어 오면 바다의 톤이 코발트빛에서 은빛 물결로 다시 바뀐다. 짙은 먹구름 아래서는 묵직한 수묵화가 되고, 햇살이 쏟아지는 날에는 화려한 유화로 채색된다. 같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동일한 장면은 다시 오지 않는다.
바다를 바짝 곁에 두고 파도 소리와 짠내음을 맡는 것이 제주 여행의 고전적인 낭만이었다면, 웃드르 중산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제주의 공간감을 확장해 준다. 오름 뒤로 숨어들었던 성산일출봉이 구름 사이로 다시 얼굴을 내밀 때, 멀리서 밀려드는 수평선의 잔물결은 방문객에게 조용한 안부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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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괴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정원, 토속 지명의 부활
진쟁이모루의 풍경은 멀리 있는 시선에만 그치지 않는다. 건물 밖으로 거친 현무암 용암괴와 섬세한 분재, 소나무가 어우러진 정원이 나타난다. 거친 불의 흔적인 용암괴 홈에는 물이 고이고 수생식물이 자라난다. 돌과 물, 나무와 생명이 빚어내는 근경(近景)은 창밖의 원경(遠景)과 이어지며 풍경의 입체감을 완성한다.
'진쟁이모루'라는 이름 자체도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제주어로 '모루'는 언덕이나 산마루를, '진'은 '길다'는 의미나 과거 군사 진지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세화리 해안에서 웃드르 방향으로 길게 이어진 이 완만한 언덕의 옛 지명이 잊히지 않고 새로운 공간의 이름으로 되살아난 셈이다. 육지의 대형자본이 아닌 제주 토종 자본이 조성을 맡아 제주의 옛 지형과 이름을 주요 자산으로 삼았다는 점도 돋보인다.
바다 가까이서 바라보던 시선을 넘어 중산간에서 오름과 들판, 섬과 구름을 한눈에 담는 일. 진쟁이모루 창가에 서서 멀리 바다를 다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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