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lip20260911210516 | 0 | | 9월 7일 오전 5시께 가랑비가 내리는 일본 돗토리현 미사사온천. 미사사강 건너 산허리까지 짙은 안개가 내려앉은 가운데 강변과 다리의 가로등이 아직 불을 밝히고 있다. /미사사=최영재 도쿄특파원 |
|
[미사사 = 아시아투데이 최영재 도쿄 특파원]
일본 47개 지자체 가운데 인구가 가장 적은 돗토리현은 지방소멸의 최전선에 있다. 청년 유출과 고령화, 후계자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지만, 지역에 남아 있는 온천문화와 오래된 료칸, 주민 공동체, 관광자원, 만화 콘텐츠 등을 지역 생존의 자산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본지는 5차례의 현장 르포를 통해 지방소멸에 맞서는 돗토리현의 생존 전략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9월 7일 오전 5시가 조금 넘었다. 가랑비가 내렸다. 미사사강 건너 산중턱까지 안개가 내려와 있었다. 산등성이는 보였다가 사라졌다. 강 가운데 풀섬은 비에 젖어 짙어졌고, 물은 그 사이를 갈라 흘렀다. 다리와 강변의 가로등 몇 개가 아직 켜져 있었다. 젖은 난간에는 손을 대면 물기가 묻었다.
 | clip20260911224233 | 0 | | 7일 새벽 5시 무렵의 기아료칸 앞 골목/미사사=최영재 도쿄 특파원 |
|
기야료칸(木屋旅館)의 문을 나왔다. 처마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가랑비가 내린다. 젖은 골목이 이어졌다. 길 양쪽에는 목재와 흰 회벽을 섞은 오래된 건물들이 붙어 있었다. 처마에는 흰 종이등이 매달려 있다. 집 앞 화분과 작은 화단은 밤비를 머금고 있었다. 골목에는 사람이 없었다. 젖은 길바닥만 희미한 새벽빛을 받아 검게 빛났다. 미사사다리로 느릿느릿 걸었다.
 | clip20260911211624 | 0 | | 7일 새벽 미사사다리 아래 공중 노천탕 '가와라부로'에서 주민들이 아침 목욕을 하고 있다. 탕 바로 옆으로 미사사강이 흐른다. /미사사=최영재 도쿄특파원 |
|
다리 아래 강변에는 돌을 둘러 만든 노천탕 '가와라부로(河原風呂)'가 있다. 동네 남자 두 명이 이미 탕 안에 있었다. 한 사람은 물에 몸을 담근 채 강 쪽을 보고 있었다. 옆에는 작은 대야가 놓여 있었다. 강물은 몇 걸음 밖에서 흘렀다.
문도 없고 매표소도 없었다. 새벽이라 행인도 없었지만 목욕하는 남자들은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몸에 물을 끼얹고 비누칠을 한 뒤 천천히 헹궜다. 동작은 경건하고 느리고 익숙했다. 그리고 김이 오르는 노천탕에 들어갔다. 새벽비는 계속 내렸다. 뜨거운 노천탕에 차가운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수면 위로 잔물결이 번졌다. 얕은 강은 물소리를 내며 흘렀다. 남자들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찬비를 맞고 강물 소리를 들었다. 새벽 공기는 서늘했다.
이 길을 처음 걸은 것은 전날 오후였다. 늦여름 햇볕이 골목 안까지 깊게 들어와 있었다. 흰 회벽은 눈이 부셨고, 처마 밑 그늘은 짧고 짙었다. 검은 목재의 결이며 간판 글씨, 집 앞 화분까지 또렷하게 보였다.
 | clip20260911212058 | 0 | | 돗토리현 미사사온천 기야료칸. 1868년 메이지 원년에 문을 열었으며 건물 전체가 국가 등록유형문화재다. /미사사= 최영재 도쿄특파원 |
|
◇바닥이 소리를 내는 집
기야료칸은 온천거리의 다른 집들과 어깨를 붙이고 있었다. 흰 벽과 검은 목재 사이로 '木屋旅館'이라고 새긴 나무판이 걸려 있었다. 입구는 크지 않았다. 문을 열자 돌바닥이 먼저 나왔고 한 단 위로 나무마루가 이어졌다. 신을 벗었다. 바깥의 젖은 공기와 다른 냄새가 났다. 다다미와 오래된 목재의 마른 냄새에 욕장 쪽의 습한 공기가 얹혀 있었다.
기야료칸은 1868년 1월, 메이지 원년에 여관업을 시작했다. 에도시대에는 '木屋'라는 옥호를 쓰던 집이었다. 지금도 그 이름을 쓴다.
 | clip20260911212531 | 0 | | 기야료칸 8대째 주인 미후네 슈 사장이 관내 온천 지도를 들고 건물의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료칸은 여러 시대에 걸쳐 증축돼 내부가 복잡하게 이어진다. /미사사=최영재 도쿄 특파원 |
|
8대째 주인 미후네 슈 사장이 종이 한 장을 펼쳤다. '관내 온천 지도'였다. 그림 속 건물은 반듯하지 않았다. 복도는 꺾였고, 방 사이로 계단이 들어갔다. 건물 안에 큰 계단만 세 곳이 있다고 했다. "전체를 한꺼번에 디자인하지 않았으니까 안은 미로입니다."
미후네 슈 사장은 메이지, 다이쇼, 쇼와 등 160년의 세월 동안 그때그때 필요한 방과 건물을 덧붙였다고 설명했다. 시대가 달라지면 방의 짜임도 달라졌다. 현존 건물도 메이지·다이쇼·쇼와의 동이 합쳐진 구조다.
 | clip20260911213533 | 0 | | 기야료칸 내부 벽에 남아 있는 옛 흑백사진들. 객실에 모인 사람과 단체사진, 옛 건물 모습 등이 담겨 있다. 일부 사진의 정확한 촬영연도와 인물은 현장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미사사=최영재 도쿄 특파원 |
|
지도에서 눈을 떼면 벽에 시간이 걸려 있었다. 흑백사진이 여러 장이었다. 다다미방에 사람들이 모여 앉은 사진이 있었다. 남녀가 한데 모인 단체사진도 있었다. 지금과 다른 건물과 거리를 찍은 사진도 액자 속에 남아 있었다. 옷과 머리 모양이 사진마다 달랐다. 모든 사진의 연도와 사람 이름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는 없었다. 액자 나무틀은 검게 말라 있었다. 유리 표면에는 지금 켜진 전등이 희미하게 비쳤다. 흑백사진 옆에는 훨씬 뒤에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컬러사진이 붙어 있었다.
 | clip20260911214452 | 0 | | 기아료칸 내부 복도 /미사사=최영재 도쿄 특파원 |
|
사진 앞을 지나 복도로 들어갔다. 발을 옮길 때마다 나무바닥이 짧게 소리를 냈다. 한 계단을 밟으면 삐걱거렸고, 다음 계단에서는 다른 높이의 소리가 났다. 손잡이는 여러 사람의 손이 지나간 자리만 반질거렸다. 한쪽 복도는 검은 자갈을 바닥에 박아놓고 그 위에 넓적한 돌판을 듬성듬성 놓았다.
 | clip20260911214140 | 0 | | 기야료칸 내부 복도. 자갈을 박은 바닥 위로 큰 돌판이 이어지고 머리 위로 오래된 목조 구조가 드러나 있다. /미사사=최영재 도쿄 특파원 |
|
머리 위에는 서까래와 지붕 밑 구조가 그대로 드러났다. 오래된 목재 아래 흰 형광등이 켜져 있었다. 벽에는 소화기가 놓였고 바닥에는 선풍기가 돌아갔다. 오래된 물건들은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일부는 유리장 안에 보관돼 있었지만, 이곳 전체가 박물관처럼 멈춰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사이로 사람들이 걸었고, 지금도 손님을 맞고 있었다.
 | clip20260911214756 | 0 | | 기야료칸 안에 남아 있는 괘종시계와 목가구/미사사=최영재 도쿄 특파원 |
|
복도 끝에는 큰 괘종시계가 서 있었다. 검은 몸체의 나무가 닳아 있었다. 오래된 장롱과 도자기, 책장과 등잔이 방과 복도 사이사이에 놓였다. 그 옆에는 텔레비전과 전화기, 공기청정기가 있었다.
이 집은 옛것을 재현해 놓은 집이 아니었다. 옛집에서 아직 영업을 하고 있었다. 미후네 슈 사장은 남색 홋피를 입었다. 한쪽에는 '三朝溫泉', 다른 쪽에는 '木屋旅館'이라는 흰 글씨가 내려왔다. 목에는 흰 수건을 둘렀다. 그는 료칸이라는 것을 방과 탕으로만 설명하지 않았다.
"식사도, 지내는 방법도, 목욕하는 방법도, 손님을 맞는 것도 일본다운 문화가 남아 있는 것이 온천료칸이라고 생각합니다." 건물과 음식과 목욕과 접객을 함께 남겨야 한다는 얘기였다. 아들 미후네 도시히로 전무도 료칸 일을 맡고 있었다. 그는 료칸을 잇게 되면 자신이 9대째가 된다고 소개했다.
 | clip20260911215141 | 0 | | 기자가 묵은 기야료칸의 다다미 객실. 창가의 두 의자 앞으로 미사사강이 바로 내려다보인다. /미사사=최영재 도쿄 특파원 |
|
기자가 묵은 객실은 다다미방이었다. 다다미의 선은 반듯했고 가운데 낮은 나무탁자가 있었다. 장지문과 짙은 나무기둥이 방을 나눴다. 창가에는 의자 두 개가 나란히 놓였다. 의자 앞으로 가면 강이 바로 아래였다. 유리창 아래로 미사사강의 풀이 보였다. 건너편 료칸의 벽과 창문이 강 너머에 있었다.
◇그릇이 들어오고, 밤이 왔다
 | clip20260911215804 | 0 | | 기야료칸의 저녁상. 계절 전채와 현지 생선 회, 돗토리 와규 등 여러 음식이 차례로 나왔다. /미사사=최영재 도쿄 특파원 |
|
저녁에는 검은 상 위로 그릇이 들어왔다. 한꺼번에 차리지 않았다. 한 그릇이 나가면 다른 그릇이 들어왔다. 달맞이를 주제로 꾸민 전채에는 노랑과 초록, 붉은색이 작은 접시 안에 나뉘어 있었다. 현지 생선을 담은 회가 뒤따랐다. 무화과를 넣은 국, 차완무시, 돗토리 와규, 장어죽이 차례로 나왔다. 큰 접시 하나보다 작은 그릇들이 오래 식탁을 점유했다. 따뜻한 음식에서는 김이 올랐고, 차가운 회와 채소는 막 차려낸 듯 윤기가 남아 있었다.
식사가 끝난 뒤 골목으로 나왔다. 낮에 지나온 길이었다. 이발소는 불을 낮췄고 다른 가게들에는 간판 불이 들어왔다. 좁은 길 위로 전선이 여러 겹 지나갔다. 조금 내려가니 파란 네온이 보였다.
 | clip20260911220100 | 0 | | 6일 밤 미사사온천의 오래된 유희시설 이즈미고라쿠조. 파란색 '射的' 네온 아래로 불을 밝히고 있다. /미사사=최영재 도쿄 특파원 |
|
'射的'. 오래된 유희시설 이즈미고라쿠조였다. 바깥은 어두웠지만 문 안쪽은 붉고 밝았다. 선반에는 과자와 작은 장난감이 빼곡했다. 낡은 오락기계가 벽을 따라 서 있었다. 손님들이 카운터 앞에서 놀이를 하고 있었다.
가게를 나와 다시 걸었다. 가로등 사이가 어두웠다. 불빛이 닿은 곳과 닿지 않는 곳이 골목에서 번갈아 나왔다. 강으로 나오자 다리가 있었다.
 | clip20260911220543 | 0 | | 6일 밤 미사사강의 다리. 석등의 불빛과 강 건너 온천마을의 객실 불빛이 남아 있다. /미사사=최영재 도쿄 특파원 |
|
석등의 붉은빛이 난간 위에 걸렸다. 강 건너 숙박시설의 창문 몇 개만 켜져 있었다. 한 바퀴를 돌아 기야료칸으로 들어왔다.
 | clip20260911220827 | 0 | | 미후네 슈 사장이 밤 산책을 마치고 료칸으로 돌아온 손님들의 얼굴을 그리고 있다. /미사사=최영재 도쿄 특파원 |
|
미후네 슈 사장이 종이와 붓펜을 가져왔다. 둥근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그는 종이를 보다 내 얼굴을 보고, 다시 종이를 내려다봤다. 몇 번 선을 긋고 색을 얹었다. 그의 뒤 벽에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 그림이 여러 장 붙어 있었다. 얼마 뒤 안경을 쓴 얼굴 하나가 종이 위에 생겼다. 기자의 얼굴그림이었다. 윗부분에 날짜가 적혔다. '06.09.2026.'
 | clip20260911221200 | 0 | | 자연석으로 둘러싸인 기야료칸 내부 온천탕, 여러 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욕장이 건물 곳곳에 남아 있다. /미사사=최영재 도쿄 특파원 |
|
그림을 받아 들고 방으로 올라가기 전에 료칸 내부의 온천탕으로 갔다. 기야의 욕장은 새로 지은 대형 온천시설과 달랐다. 돌을 그대로 둘러 만든 작은 탕이 있었다. 물에 젖은 돌은 색이 더 짙었다. 벽과 바닥에는 오랫동안 물이 지나간 자국이 남았다. 습한 공기가 얼굴에 붙었다. 욕장 밖에서 따라오던 마른 목재 냄새는 문 안에서 약해졌다. 탕에서 몸을 녹인 뒤 다시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 방으로 갔다. 불을 끄자 방의 나무기둥이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창 아래 강은 밤에도 흘렀다.
 | clip20260911221451 | 0 | | 7일 이른 아침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미사사온천의 이발소. 유리창에 'SINCE 1917'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다. /미사사=최영재 도쿄 특파원 |
|
◇새벽, 같은 마을을 다시 걷다
잠을 자고 다시 현관문을 열었다. 혼자서 새벽 동네 한바퀴를 나선다. 새벽 5시였다. 비는 가늘었다. 골목은 밤보다 밝았지만 가로등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밤에 파랗게 빛나던 유희장은 문을 닫았다. '射的' 네온도 꺼졌다.도로 가장자리에 얇게 물이 고였다. 'SINCE 1917'이라고 적힌 이발소도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붉고 흰 줄무늬 차양 아래 잎이 젖어 있었다. 유리창 안에는 오래된 이발소 의자와 장식물이 보였다. 미사사다리를 넘어 강의 반대편으로 건너가 상류 쪽으로 걸었다.
 | clip20260911122820 | 0 | | 7일 오전 5시께 돗토리현 미사사온천.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미사사강 건너 산허리에 안개가 내려앉아 있다. /미사사=최영재 도쿄 특파원 |
|
안개는 낮게 내려왔다. 산의 나무는 가까운 곳부터 보였고 조금 위에서는 흰색 속으로 사라졌다. 고이타니다리까지 올라갔다. 기야료칸에서 미사사다리를 건너 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와 고이타니다리를 건너 다시 숙소 쪽으로 걸었다. 시계 반대 방향의 한 바퀴였다. 강을 두 번째로 건너서 골목으로 돌아왔다.
 | clip20260911221957 | 0 | | 7일 새벽 미사사온천 골목에서 한 할머니가 가랑비를 맞으며 보도 사이로 삐져나온 잡초를 뽑아내고 있다. /미사사=최영재 도쿄 특파원 |
|
료칸 쪽으로 접어드는 골목에서 파란 우산 하나가 보였다. 백발의 할머니가 허리를 깊이 굽히고 있었다.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다른 손에는 작은 호미를 쥐었다. 보도 가장자리 틈으로 잡초가 올라와 있었다. 호미 끝을 틈에 넣어 한 번 긁고 잡초를 걷어냈다. 몇 걸음 옆으로 옮겨 다시 허리를 굽혔다. 지나는 사람은 없었다. 차도 오지 않았다. 가랑비만 파란 우산 위로 떨어졌다. 할머니는 잡초를 뽑으며 골목 가장자리를 따라 조금씩 앞으로 갔다. 료칸으로 돌아왔다. 현관의 나무문을 지나 실내화를 벗었다. 계단은 다시 삐걱거렸다.
 | clip20260911222625 | 0 | | 기아료칸의 현관 /미사사=최영재 도쿄 특파원 |
|
아침상이 놓여 있었다. 미사사 지역 계약농가에서 받은 고시히카리로 지은 흰밥이었다. 료칸은 지하수로 밥을 짓는다고 메뉴판에 적었다. 된장국과 돗토리 향토음식 두부치쿠와, 달걀말이, 고등어 소금구이와 절임채소가 작은 그릇에 나뉘어 있었다.
밤의 식탁보다 단순했다. 흰밥에서 김이 올라왔다. 미사사는 미토쿠산의 수행문화에서 '육근청정(六根淸淨)'이라는 말을 가져온다.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 그리고 마음을 씻는다는 뜻이다. 온천마을에서는 이를 '육감치유(六感治癒)'라고 부른다. 관(觀), 청(聽), 향(香), 미(味), 촉(觸), 심(心).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여섯 가지다. 현지 자료는 온천수를 마시고, 몸을 담그고, 증기를 들이마시는 것뿐 아니라 마을의 풍경과 소리, 음식과 냄새와 촉감까지 온천 체험에 넣는다.
전날 저녁에는 그 말을 몰라도 됐다. 낡은 계단은 발밑에서 소리를 냈고, 벽의 흑백사진에는 오래전에 이 집을 지나간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밤에는 골목의 불이 켜졌고, 새벽에는 강 아래 탕에 주민들이 들어가 있었다. 파란 우산 아래에서는 한 사람이 잡초를 뽑아냈다.
아침밥은 쌀 한 톨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함께 아침을 먹던 영국 여기자가 웃었다. "배가 고팠나 봐요." 창밖으로 미사사강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