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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마 야요이의 '집적 No. 1'은 그녀의 페미니즘적 성격의 부드러운 조각(soft sculpture) 연작 중 첫 번째 작품이다. 1962년 제작되었다. 스물아홉의 나이였던 1958년 일본에서 뉴욕으로 건너간 지 사 년 때의 일이었다. 'MoMA 하이라이트: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품 375선'(뉴욕: 뉴욕 현대미술관, 2019)에 의하면, 이때 그녀는 이미 '무한 그물(infinity net)'이라는 모티프를 자신만의 독창적인 패턴으로 발전시킨 상태였다. 무한 그물은 세포 모양의 형태들이 서로 맞물려 방 하나를 가득 채울 만한 크기의 캔버스에 그려지곤 했다. 그녀는 무한 그물의 패턴을, 반복되는 도트·점 혹은 남근을 연상시키는 돌기 등의 상징적 형태로 변형시켰다.
특히 '집적 No. 1'은 발견된 팔걸이 안락의자를, 휜색 페인트로 칠해진 부드럽고 박제된 수십 개의 남근의 돌기로 완전히 뒤덮었다. 실을 꼬아 장식으로 만든 술은 조각의 밑부분을 둘러싸 경쾌하고 장식적으로 보인다. 수십 개의 돌기는 구사마가 손수 바느질하고 속을 채우고 채색하였다. 자신의 반복적인 강박을 3차원의 형태로 전환시킨 작품은 돌출된 돌기 형태의 집적으로 인해 위협적이고, 유머러스하다. 위협과 유머라는 양가성을 지닌 '집적 No. 1'은 성적 공포증을 지닌 구사마 야요이의 내면의 강박적 형태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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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구사마는 '집적 No. 1'을 다운타운에 위치한 맨해튼의 로프트에서 제작했다. 이 작업실은 친구이자 동료 예술가인 클래스 올덴버그의 스튜디오와 같은 건물이었다. 이른바, '부드러운 조각'의 초기 사례인 이 작품은 비슷한 시기에 올덴버그가 제작한 거대한 일상 사물 형태의 '속을 채운 캔버스 조각'들과 깊은 연관성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1962년 말 뉴욕 그린 갤러리(Green Gallery)에서 올덴버그 및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전시되었다. 이는 팝 아트에 초점을 맞춘 최초의 그룹전으로 널리 평가받는 전시다.
구사마 야요이는 '집적 No. 1'에서 반복적으로 만들고 있는 돌기 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그것들을 만들고, 또 만들고, 계속해서 만들어 나갑니다. 그 과정속에 나 자신이 파묻힐 때까지 말이죠. 나는 이것을 '소멸(obliteration)'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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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어머니의 학대와 훈육, 아버지의 외도, 보수적인 일본문화 속에서 부모님을 피해 들어갔던 호박창고에서의 위로와 감각은 크고 작은 여러 노란 호박으로 제작되었다. 반면, 1960년대 미국의 젠더를 둘러싼 갈등과 혁명, 그리고 여전히 백인 남성중심주의의 현실 속에서 치료되지 않던 자신의 정신병적 강박과 환각이 예술행위·제작의 반복을 통해 '소멸'되길 원하였다. 어쩌면 그녀가 원했던 소멸은 자신의 눈과 귀에만 보인 환영적 세계와의 하나됨, 근원으로 돌아감이었을까? 그녀의 '소멸'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지를 그녀의 죽음과 함께 생각하게 된다.
/김주원(큐레이터/한빛교육문화재단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