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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간의 낫을 피할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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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8. 1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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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지난달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아시아나 항공기 기내에서 영화 햄넷(Hamnet)을 다시 봤다. 2020년 출간된 매기 오패럴(Maggie O'Farrell)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으로, 클로이 자오(Chloe Zhao) 감독 작품이다. 시공간적 배경은 16세기 말, 흑사병(페스트)이 창궐하던 영국의 전원마을 스트랫퍼드(Stratford)와 런던 극장가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는 각자의 해석에 맡길 일이지만, 정치인도 아닌 내가 정치 과잉일까, 엉뚱하게도 한국 정치가 연상됐다. 주요 등장인물은 윌리엄 셰익스피어, 그의 부인 아녜스, 그의 어머니 메리, 첫째 딸 수재너, 아들 햄넷, 햄넷의 쌍둥이 동생 주디스다. 특히 세 장면이 인상에 남았다.

#장면 1: 주어진 건 언제든 빼앗길 수 있다.

쌍둥이가 어린이로 성장했을 때 막내 주디스가 그만 역병에 걸리고 만다. 장남 햄넷은 아픈 주디스와 마주 누워, 동생을 대신하겠다는 마음으로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이듯 목숨을 잃고, 주디스는 회복된다.

아들을 잃은 아녜스는 울부짖고, 시어머니 메리는 맞손녀 수재너에게 말한다. 아녜스가 죽은 아들을 붙잡으려고 애쓰는 것은 소용이 없을 것이라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건 언제든 빼앗길 수 있단다. 항상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해. 당연하게 여기지도 말아야지. 아이들의 심장이 뛰고 아이들이 숨을 쉬고 걷고 말하고 웃고 싸우고 노는 걸. 언제고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해."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덧없고 연약한지. 사랑도, 건강도, 평온한 일상도 영원히 보장되는 건 없다. 인간은 언제든 다양한 상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동시에, 이 장면이 경고하는 불확실성은 오늘날 보통 사람의 일상에서 체감하는 생존의 불안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법치와 제도가 국민의 재산과 삶을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는 신뢰는 무너진 지 오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은 극단으로 출렁이고, 국민이 어렵게 일군 삶의 터전과 재산권, 직장, 경제적 안정은 정치적 계산과 입법 폭주 앞에 언제든 흔들린다. 국가가 나를 보호하기보다 언제든 나의 일상을 위협할 수 있다는 불신은 국민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경계심의 고삐를 죄게 만드는 사회적 피로감을 낳는다. 한국의 과거를 만든 현재의 노인들은 그 어느 세대보다 험난한 시절을 견뎌냈건만, 노인들이 가진 집 한 채를 팔면 양도세, 보유하면 보유세, 죽으면 상속세를 가혹하게 뜯길 처지에 놓여 있다.

#장면 2: 시간의 낫을 피할 방법은 아무것도 없다.

죽은 햄넷을 묻은 후 수재너가 주디스에게 세 번이나 읽어주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2번(Sonnet 12)은 애절한 진실로 가득하다. 영화 자막을 옮겨 본다. "시간을 알리는 시계의 울림을 헤아리고, 찬란한 낮이 흉측한 밤으로 가라앉는 것을 볼 때. 제비꽃이 한창때를 지나 시들고, 검은 머리카락이 하얗게 물드는 것을 볼 때. 가축 떼에 그늘을 선사하던 커다란 나무가 헐벗은 것을 볼 때. 풍성한 여름작물이 다발로 묶여 억센 수의를 입고 상여에 실려 가는 것을 볼 때, 그대의 아름다움도 유한함을 깨닫는다.

그대 또한 시간의 폐허로 저물 운명. 곱고 아름다운 것들은 제 모습을 저버리며 새것이 돋아나는 속도만큼 빠르게 죽어간다. 시간의 낫을 피할 방법은 아무것도 없다."

시간은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 젊음도, 명예도, 권력도, 아름다움도 모두 시간 앞에서는 사라진다. 자연과 생명의 순환을 묘사한 이 장면은 동시에 권력의 무상함과 도덕적 풍화 작용을 침통하게 일깨운다. 그러나 국민의 삶을 위협하는 것은 시간만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이 만든 제도가, 그리고 그 제도를 운영하는 권력이 국민의 삶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권력은 유한하며, 영원한 정권도 영원한 다수당도 존재하지 않지만, 한국 정치는 이처럼 단순한 '시간의 낫'을 잊은 채, 영원한 권력을 쥔 것처럼 도취돼 있다. 국회는 협치와 의회주의의 오랜 유산을 버리고 거대 의석을 무기로 삼아 입법 폭주를 거듭하고, 관료 집단은 영혼을 잃은 채 정권의 입맛에 맞춘 아부와 안위에 몰두해 있지 않은가.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행정·사법·입법의 축이 공공성이라는 '곱고 아름다운 가치'를 스스로 저버린 채, 권력의 눈치 보기와 사익 추구라는 폐허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 것 같다. 정치와 제도의 폭주가 안겨주는 비극적 비용은 온전히 국민의 몫으로 귀결될 것이다.

#장면 3: 햄릿의 독백

"통치자의 억압, 교만한 자의 모욕, 외사랑의 고통, 정의의 지연, 공직자의 무례, 선한 자가 받는 모멸까지. 이 모든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삶이다." 400여 년 전 쓰인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독백은 오늘날 한국 국민이 처한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정책 파행과 사법의 정치화로 인한 '정의의 지연',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공직자들의 '무례'와 '교만', 그리고 '통치자의 억압'에 이르기까지. 불완전한 제도가 만든 파편은 국민 개개인의 삶을 파고든다.

민주사회에서 정치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어떤 이는 현재의 정치 운영을 긍정적으로 볼 것이고, 다른 이는 깊은 우려를 가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특정 정파의 이해가 아니라, 어떤 정부와 어떤 국회 아래에서도 국민의 삶을 안정적으로 지켜 줄 제도가 작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묵묵히 법을 지키고 세금을 내며 살아가는 선한 시민들은 시간 앞에서 늙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짐을 지고 살아간다. 좋은 정치는 국민에게 새로운 불안을 만드는 권력이 아니라, 이미 피할 수 없는 삶의 불안을 함께 견디게 하는 제도를 지켜주는 정치가 아니겠는가.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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